2024.12.21 (토)

  • 구름많음동두천 -1.3℃
  • 구름조금강릉 2.4℃
  • 서울 0.7℃
  • 흐림대전 1.1℃
  • 대구 2.7℃
  • 구름많음울산 3.5℃
  • 구름많음광주 4.7℃
  • 구름많음부산 6.8℃
  • 흐림고창 2.8℃
  • 제주 8.9℃
  • 맑음강화 -0.6℃
  • 흐림보은 0.8℃
  • 흐림금산 2.3℃
  • 흐림강진군 5.8℃
  • 흐림경주시 -1.4℃
  • 흐림거제 7.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5)

5. 꿈의 대화

 

우리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어느 것 하나 수월한 일이 없었다. 사람이 몇 해 몸을 들이지 않던 집이라 전기도 끊기고 물도 나오지 않았다. 전기는 전화국에 신청하기만 하면 곧 설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문제는 물이었다. 시내와 같은 수도는 상상할 수도 없다. 언덕 아랫마을 사람들도 지하수를 이용하는데 이곳은 아랫마을보다도 더 오지였다. 주인이 살던 몇 년 전만 해도 지하에서 전기모터로 물을 끌어 썼다 했다. 벌써 세월이 지나 지하 웅덩이는 이미 오염돼 썩어 있었다. 그나마도 불법이었다. 그러나 물은 절대로 필요했다. 지하를 파려니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지대가 높아 깊이 파야 할 것이라며 지하수개발업자는 양손에 은색빛이 반짝이는 젓가락 같은 쇠붙이를 들고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물길을 찾기가 힘들겠다고 했다. 마당의 이곳저곳을 그 쇠막대를 앞세워 돌아다니더니 물은 있긴 한데 깊이 파야겠다고 했다. 그가 멈춰 선 곳에서 손에 들고 있던 은빛 쇠막대기가 핑그르르 돌았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을 파면 된다고 하면서 또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30m 깊이까지 파서 나오면 다행이지만 나오지 않을 경우 대공, 즉 더 굵은 파이프를 심어야 하고 땅 속 100m까지도 파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역시 문제는 비용이었다. 땅 속 30m 이내에서 물이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 비용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약 2백2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30m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며,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는 업자처럼 얘기했다. 불법을 가르쳐주면서 보너스 같이 약 60만 원에서 7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불법을 자진해서 일러주는데, 그 방법이래야 시청에 신고 없이 몰래 땅을 파는 거였다. 무려 20만 원대의 수질검사비도 들지 않으니 경비절감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불법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좁지만 차가 오가는 엄연한 길가 도로이기에 우선 안 된다고 했다. 눈에 띄기 쉬워 당국의 눈을 피하기 힘들 것이며, 더욱이 가정집이 아니어서 더 감시대상으로 주목 받을 거라는 정보인지 첩보인지 아님 귀띔인지 헷갈리는 엉뚱한 말만 업자는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전문가로 알아줄 줄 알고 말하는 것 같았다. 불법은 안 된다면서 왜 일러주는 거야, 그러나 아버지 귀에는 그 수법이 애시당초 들어오질 않았다. 아버지는 원래가 타협할 줄을 모르는 융통성 콕 막힌 사람이라 나서 불법을 저지를 위인은 절대 못 되기에 그런 따위의 수작은 쇠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다. 업자가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물을 매일 받아 싣고 온다? 설거지는 몰아서 집에서 한다?

 

업자는 대공, 그러니까 땅 속 100m까지 파게 되면 7백만 원에서 8백만 원까지도 든다고 하고는 떠났다. 아버지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으레 오줌을 누는 버릇이 있는데 누는 사이에 떠오른 방법이 더러 유효할 때도 있었다. 오줌이 마려워왔다. 오줌이 아랫배에서 빠져나가자 무의식적으로 찔끔 진저리를 쳤지만 ‘뭐? 8백만 원?’과 동시에 오금마저 저리며 한 번 더 진저리를 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주인과 상의해 봤자 소용없는 일, 아버지는 결국 큰 물통을 댓 개 사는 것으로 지하수개발 경비 일금 8백만 원을 대신했다. 일단 집에서 실어 나르기로 했다.

 

‘팔뚝도 굵어지고 좋지, 뭐!’

 

이렇게 위안을 삼으려다가도,

 

‘니 팔뚝 굵어 뭐에 쓸 건데?’

 

어깨가 옴치러들었다. 여기까지 읽고 있는 독자분들은 다른 걱정 한 가지를 더 하고 있을 걸로 안다. 화장실 물은? 작은 건 실어온 물로 해결한다 치고 큰 건? 답이 안 나온다. 아버지는 이것까지는 생각 못하고 커피 끓일 물만을 계산했을 뿐이다. 그 쪼끔!

 

쓰레기 같은 나무들을 마치 생선 다루듯 손질할 때부터 엄청 물은 필요했고 당신이 나중에 큰 것을 보러 가야 했을 때야 비로소 ‘길어 와서는 안 되겠구나’했다. 내 아버지가 이런 아버지다.

 

 

주인을 만났다. 어차피 빈집으로 비워둔 데다가 임자 나타나면 땅으로나 팔 작정을 하고 있으니 그만 두든 말든 알아서 하라 했다. 1년을 예상했던 라이브카페는 5년으로 길게 잡아야 했다. 알아보니 수도를 끌어올 수가 있었다. 비용은 지하수를 불법으로 파는 것보다 훨씬 많이 들었다. 수도를 끌어들일 테니 5년은 쓸 수 있도록 보장하라, 약조하라 했고 주인은 별 계산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5년 후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고 나가야 한다며 약삭빠르게 다짐을 받아냈다. 이럭저럭 라이브카페 개업경비는 더 늘어만 가고 있었다. 예상보다 엄청 더.

 

시작 무렵의 아버지 계획은 무산되어갔다. 1년 계획은 적어도 5년으로 늘어나야 했고 1년 뒤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살자던 야무진 미래설계마저 부득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상 밖 경비가 불어나자 아버지는 평소 않던 계산을 뽑아보고 또 뽑아보곤 했다. 천문학적 숫자의 비용을 보충하려면 수입이? 1년에 순수입이...... 7백 나누기 5는? 1년에 140만 원? 한 달에 그럼 12만 원? 뭐 해서 벌어들인담? 하루에 커피를 도대체 몇 잔 팔아야 하나?

 

아버지는 종이 위에선 계산이 안 돼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곤 지나가는 차들이며 걸어 올라오는 길손의 숫자를 세어보기로 했다.

 

내가 몇을 셌었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어서 셀 수가 없었다. 사람은 더 없었다. 어쩌다 앞을 지나는 사람의 면면을 보면 커피를, 그것도 3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러 들어올 행색이 아니었다. 모두가 제 본연의 일로 바쁜 농부들이었다. 커피, 프림, 설탕 다 섞은 믹싱비닐봉지, 다방커피를 종이컵에 탁 털어 후다닥 마시고 또 흙으로 향해 서두를 사람들뿐이었다. 더욱이 농협이나 수협, 시골 우체국에서도 공짜 커피를 내놓았다. 누가 이 높은 골짜기에 들어와서 커피 마시고 가겠냐고 이제라도 허튼 데 돈 들이지 말라며 쯧쯧 충고하고 가는 노인도 있었다. 머리도 벗겨진 사람이 뭐 그리 야물딱지질 못하노 하며. 낭패였다. 괜히 시작했구나, 1년만 하고 싶은 일, 딱 한번만 해보자구? 오십을 살았어도 헛 살았다니까. 그 놈, 은행원 오래 한, 그래도 전문가 놈 말 듣고 동업을 하든가 할 것을...... 잘 못했다 잘 못했어. 이거 꿰여도 아주 괴상하게 엮이기 시작하는데... 그래, 여기서 그만 두는 게 낫지, 그래 그게 나은 거구 돈 버는 거지? 더 요상하게 얽히기 전에...

 

그러나 이미 7백만 원은 지불한 뒤였다. 늘 같은 이런저런 고민과 계산을 하고 또 되풀이하느라 며칠 동안 기타도 잡지 못했다. 그 무렵, 심기가 온전히 불편할 즈음, 느티나무가 트럭에 실려 왔고 느티나무가 들어앉은 마당은 제법 라이브카페답게 그럴 듯해 보였다. 느티나무 덕분에, 느티나무를 보내온 아주머니 덕택에 기타를 다시 가슴에 쥘 수 있었다.

 

“아주머니. 아니지, 이름이 계셨지요? 상화......씨, 들어보세요. 요즘 신이 날 일이 전혀 없이 머리 복잡하게 숫자 계산만 했더니 노래가 제대로 나올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느티나무 식수기념공연은 해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제가 고맙군요.”

 

느티나무가 올라오던 그 날도 새터 치킨가게의 전화는 벨소리만 울릴 뿐 그 여자의 목소리는 없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먼저 부르고 노래책 앞에서부터 아는 노래만 골라 불러나갔다.

「너의 마음 나를 주고
나의 그것 너 받으리
우리의 세상을 둘이서 만들자」

 

제일 좋아하는 석양이 지고 있었고, 제일 좋아하는 별들이 하나씩 불 밝히고 있었다.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벨소리가 울리는 대로 핸드폰을 제켜 놓고 아버지는 그것이 마이크인 양 허리 굽혀 입을 가까이 대고 거기에다 노래를 불렀다. 기타 앞에선 늘 느긋했듯이 다시 아버지는 그 뒤로 며칠간 내내 하던, 어차피 정산 안 될 계산으로 끙끙대지는 않았다.

 

 

“그래요. 수호신 느티나무가 지켜줄 겁니다, 그죠? 그리고 내가 언제 이 카페로 떼돈 벌 심산이었나요? 적자를 좀 봤다고 치죠, 뭐. 손님에게 물은 맘껏 제공해야 할 거 아녜요? 물로 야박해서야 되겠어요? 무엇보다도 매일 이 수호신 느티나무에다 물로 정성을 부어야지요. 땅은 이미 봄이어서 바닥에 앉아 있으려니 흙에서 물이 배어 엉덩이가 축축하군요. 여기 매일 자주 나와 봐야 할 텐데... 내일부턴 이 외로운 느티나무에게 단짝을 하나 맺어줘야겠어요.”

 

그 후 아버지가 만든 긴 의자는 아버지의 기대처럼 되진 않았다. 그 아주머니와 한번이라도 나란히 앉아 앞 느티나무를 함께 바라볼 수 있길 바랐다. 그 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계산서였던 메모지에 숫자 대신 ‘꿈’이란 글자를 썼다.

 

꿈, 꿈, 꿈

 

“이 나이에 무슨 꿈이냐 하겠지만 어찌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꿈을 잊을 수가 있겠어요. 나이가 많다고, 늙었다고 꿈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일선에서 물러나듯이 꿈도 뒤로 밀려날 뿐일 뿐. 그래요, 모르겠네요. 니 꿈이 그럼 뭔데? 하고 내게 물어오면 족히 대답할 꿈은 없지만, 그래도 ‘꿈’이란 말조차 입에서든 가슴에서든 내려놓을 순 없잖겠어요? 뭐 굳이 이룰 수 있는 꿈은 없어도 꿈하고 얘기는 나눌 수 있는 거잖아요. 내 아들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이루고 이뤄내야 할 꿈이 있지만, 우리에겐 꿈하고의 대화만으로도 흐뭇할 수 있잖은가요? 젊은이들은 이뤄야 하니 어쩌면 그 꿈이 절박하고 우리네들은 이루고자 그리 애쓸 것도 없으니 이 꿈이 질박하고. 오래 전 내 꿈이 뭐였더라? 상화......씨는, 꿈이 뭐였어요? 전화도 안 받고 무척 바쁜 일이 있나 봐요. 좋은 일로 바쁘시길 빌게요. 좋은 일이라도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요.”

 

뒤늦게 아주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느티나무가 그 아주머니인 양 어루만지며,

 

‘뭐가 그리도 급하셨어요.’

 

끝내 아버지는 느티나무 아래 주저앉고 말았다. 글ㆍ그림=오동명 (다음 편으로 계속)
 

 

오동명은?=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16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