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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10)

10. 타타타

삶의
의외성
더 신날 수 있지

 

이래서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구나 하며 아버지의 가게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풀려간다. 다른 유능한 사업가들처럼, 굳이 유능하지 않더라도 사업을 시작하는 누구에게나 해당사항이 되겠지만, 철저한 사전 계획을 세우고 냉정한 시장조사를 끝내고 이에 적절한 구체적 사업구상으로 이어지는 마케팅전략과 같은 비스무리한 것조차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가 아니던가. 전단지를 뿌린다거나 하다못해 동네 생활정보지에다가 광고를 내며 홍보하는 일조차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역시 내 아버지가 아니던가. 비즈니스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다. 하지만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어떤 일이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며 방심하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없다. 곁에서 보면 성실하다, 솔직하다, 우직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꾸밈이 없다고 할까 가식이 없다고나 할까, 하여튼 거짓은 없는 것 같다. 이래서 남들에게 말짱말짱하게 보여 손해를 보는 일도 종종 있지만, 이를 테면 이사할 때마다 복덕방 말을 너무 믿어 늘 복잡한 일에 엮이곤 했다. 아버지는 이럴 때마다,

 

“이 아빠가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 같아도 무턱 대고 손해만 입진 않는다. 그러나 사람을 믿지 않을 순 없잖아. 그래도 언제나 한계라는 걸 그어놓고 욕심을 접든가 양보를 하거든. 이러지 않고 산다면 정말 바보게?”

 

 

이런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더 약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손해 볼만큼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계산적이라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카페를 1년간 해보겠다던 계획도, 그리고 실제경비가 더 늘면서 부득이 5년으로 연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의 이유나 동기를 짐작해보면 아버지 말대로 무턱 대고 손해 보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이해할 수가 있다. 양보든 욕심이든 그 한계를 그어놓고 시작하는 것부터가 남들보다 더 이해타산적인 것처럼 보인다. 한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어놓고 사는 것은 아버지의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비록 우연의 발상이긴 하지만 최고소비지출을 1인당 만원으로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즉 나서고존법을 만들어 놓은 것도 그렇다. 술로 인해, 과음으로 인해 벌어질 불상사를 미연에 막아보겠다는 저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입을 정신적 피해나 물질적 폐해를 사전에 고려한 조치이기에 아버지에게 없을 것 같던 용의주도를 이런 데에서 엿보게 된다. 이나마 가진 용의주도라, 아들로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기서 더 말아먹었다가 내 아들 공부는 어떻게 시키려고!”

 

이런 아버지였다. 그런데 열거한 이런 점들은 사전의도가 아니라 지나친 조심성 또는 소심이라고 할까, 아버지의 성격탓이라고 봐야 더 옳을 텐데 어수룩함이나 어눌함, 이것이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고 따라서 단골도 생기게 되었고 또 단골의 입에서 입으로 자연스럽게 소문이 났던 게다. 서툰 것도 비즈니스행위에 드나?

 

“나도 이렇게들 좋아할 줄 몰랐지. 난들 이 중산간 골짜기로 사람들이 이토록 많이 찾아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니? 그저 손해만 안 보면 되지, 하며 이게 내 지상최고의 목표였는데. 봐라. 저 방에 책 쌓아둔 거. 손님이 없을 줄 알고 책으로 시간 때우겠다고 잔뜩 갖다놓지 않았겠냐. 읽을라구. 그런데... 고마운 거지, 뭐.”

 

오늘은 더 신나는 날이었다. 한 손님이 김국환의 <타타타>를 불러달라고 신청했다. 아버지는 조금 당황했다.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노래를, 그것도 기타를 쳐본 적이 없는 노래이기 때문이었다. 노래책을 뒤지니 책 끝부분에 들어있었고, 기타 코드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Am-Dm-G7-C-F-C-E7

 

중간에 아직 집지 못하는 Bm과 Bb가 들어있긴 하지만, 짧은 대목이니 얼렁뚱땅 앞 코드를 늘리고 뒤 코드를 앞 당겨 부르면 별 문제가 없을 터였다. 이제 이 정도의 요령은 생겼다. 어언 4년이란 세월을 비록 무명이지만 라이브카페 가수로 몸담아 왔거늘... 일단 기타줄을 퉁겨보았다. 슬로우 고고란다. 줄을 뜯지 않고 포크로 퉁기면 될 노래였다. 하지만 들어는 봤는데 처음부터 어떻게 불러야 할지 음은 물론 감도 잡히질 않았다. 음감엉망!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따라 갈 순 있었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뭐가 이리도 빠르고 긴가 싶었다. 김국환이 랩가수? 아버지 수준에 이 정도 빠르기면 랩이었다. 아버지는 노래 신청자를 보며 노래 대신 피식 웃음을 보냈다. 마음이 어설프다 싶으면 이랬다. 마음을 편케 하기 위해서였다. 곧 부르기는 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 안다면 재미없지」

 

‘모두 몰라 다 안다면’을 놓치자 얼버무렸고, 그 다음 ‘재미없지’에선 방금 전의 설왕설래, 우왕좌왕을 만회하고자 자신 있는 듯 더 큰 소리로 불러재꼈다. 다음,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여기까진 또 그럭저럭 구렁이가 넘어가듯 가능했다. 허나, 이거 왠 걸,

 

‘음~ 아하하’

 

라니? 이것도 가사? 여하튼 우여곡절 잘 넘어온 아버지는 이 대목에서 좌중을 결국 웃기게 하고 말았다. 호탕하게 웃어야 하는데 화장실 안에서나 하던 식으로 으으음 만하고 있으니... 손님들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고 아버지의 귀엔 폭음처럼 터져 들어왔다. 나도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난처함을 고려하면 아들 이전에 종업원으로서 웃어서는 안 되는 줄은 알지만, 사장님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아버지의 난감한 그러나 겸연쩍어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보자 웃음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혼자만 웃지 못하던 아버지는 끝내, 다음,

 

‘산다는 건 좋은 거지’

 

를 놓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난생 처음 보는 가사를 내려다보며,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좋은 거 좋아하시네, 산다는 건 고역이다, 고역! 아마 이러고 있을 때 폭소관중 속에서 한 지원병이 다행히 나타났다.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은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김국환답지 않게 덩치가 소만한 지원병은 당연히 무대 앞으로 끌려 나왔고 따라서 아버지는 당연히 밀려났다. 가수가 새로 등장했다며 ‘다시 처음부터, 다시 다시 다시’를 외쳐댔고 그는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쫓겨 무대 옆에 물러나 있던 아버지는 기타 반주나 하라며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아버지는 고마웠다. 미안하기도 하고 굽실굽실 수차례 꾸벅 큰 절을 하곤 그의 뒤 반주자 자리로 슬그머니 숨었다.

 

“이제부터「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전속가수를 바꿔야겠구만.”

 

아버지는 쫓아낸다는 소리에도 피식 웃으며 그저 좋아했다. 기타는 더 자신이 붙었고 리듬도 더 쾌활해졌다. 물론 아버지가 신이 났기 때문이었다. 같은 악기라도 연주자의 기분에 따라 악기의 반응도 달라진다. 기타가 들썩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슬로우 고고여야 하는 <타타타>는 아버지의 손에선 고고로도, 탱고로도, 왈츠로도... 제멋대로였다. 아버지 멋대로였다. 기타는 때론 드럼이 되어주었다. 투당탕탕!「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카페에서만은 노래도 달리 법칙이 없다. <타타타>의 마무리, 크게 웃어재껴야 하는 부분이 남았다.

 

‘아 하하 아 하하하하’

 

새 가수가 몸통마냥 통 큰 호쾌한 웃음으로 선창을 하자, 다들 따라 웃어보려 했지만 뜻대로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뭐, 그렇게 웃고 살아봤어야 웃을 수나 있지. 이거야 젠장. 노래는 못 쫓아하더라도 웃는 것쯤이야 따라 해야 하는데 웃는 것도 따라 못하니 이거야, 원!”

 

한 명씩 불려나왔고, 몸통 큰 가수가 노래를 다 부르고나면 마지막 호걸웃음은 손님들이 돌아가며 책임지기로 했다. 호쾌하게 웃는 것, <타타타>의 후렴구이자 ‘하하하’ 돌림노래로도 적격이었다.

「 ...... ......
우리네 헛짚은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가 끝나자, 어색하게, 또는 웃다말고, 또는 하하하 해야 할 웃음이 호호호로......
좌중에선 동시에 깔깔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웃음으로 떠지껄하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사연이 카페를 가득 메웠다. 한편의 연극이 끝난 뒤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뒤섞이는 광경이었다. 그 순간, 슬픔도 고통도, 괴로움도 걱정도, 두려움이나 불안의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카페 문을 닫고 남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버지와 나는 내내 웃고 있었다.

 

“아빠, 그 손님들도 우리처럼 지금도 웃고 있을 거야, 그치?”

 

허파에 충전된 웃음은 아마도 집으로 각자 돌아가고 있는 지금쯤에도 충전된 웃음을 방전시키느라 더 웃고 있을 것이었다. 부풀었던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아빠. 오늘 손님 중 대부분이 조만간 곧 또 올 거 같은데? 분명해. 아빠, 근데 그 노래 진짜 처음 불러보는 거야? 어딘지 계획적인 꿍꿍이가 감지되는데?”

 

아버지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게 아버지의 매력, 아니 마력? 아님, 음모? 그 눌한 마력인지, 모를 능한 음모인지에 취해 나도 따라 웃는다.

 

“우리 다시 한 번 <타타타> 부르면서 집으로 갈까나?”

 

아버지가 선창하고 나도 따라 부르다 보니 이미 좁은 남조로를 벗어나 있었다. 어느새 집.

 

이를 닦느라 입안에 치약거품을 그득 물었건만 나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끝내 입에 물고 있던 거품을 거울에 토해내고 말았다. 으하하하~~~ 튀긴 거울마저 내 앞에서 웃음을 흘리고 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음~~ 아하하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안방에서 아버지도 흥얼거리고 있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
한 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아 하하하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

 

‘수지맞는 장사잖소’만 되풀이로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안방은 조용해졌다. 나는 안방에다 대고 소리를 쳤다.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빠에겐 덤이네, 삶의 덤! 덤이란 공짜, 예상 외 수익이고 보면 수지맞는다는 거 아냐? 그럼 그럼!” <글, 그림=오동명/ 다음 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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