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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15)

15. 모두가 사랑이예요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손님이 들기 전에 청소 등 손님맞이를 일찍 끝내 놓고 난 날은 종종 마당으로 나와 기타를 연습하는 때도 있다. 그리고 노래도 부를라치면 느티나무로 새들이 모여든다. 비록 가까이로 내려오지는 않지만 느티나무 위 가지에 앉아 그들도 지저귀곤 하는데, 음악이란 것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연을 따로 구분 짓지 않는가 보다. 새들이 어쩜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소릴 내는 사람을 자기와 같은 새인 줄로 알고. 휘파람새의 휘파람 소리를 따라 불러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또 휘파람으로 화답해온다. 이런 것이다. ‘노래하고 있으면 새들이 모여든단다’ 아버지한테 말로만 들을 때는 아무리 하늘같은 아버지의 말이라 해도 믿겨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기타와 노래 소리에 모여 드는 것을 보니 나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렇게 새들에게 노래모이를 나눠주며 마당에서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승합차 한 대가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교회차였다. 목사와 한 아주머니가 내렸다. 이웃동네의 교회에서 나왔다며 자기 교회에 나와 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들은 전도 중이었다. 기타를 안고 있는 아버지 대신 내가 교회를 소개하는 작은 팸플릿을 받았다. 목사 일행이 돌아가다 멈춰서더니 몸을 우리에게로 돌렸다.

 

“인기가 많으시던데, 사장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신다면 하나님도 우리 교인들도 모두 대환영할 겁니다. 이번 주일엔 꼭 한번 교회에서 뵙게 되길 하나님께 빌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갔다. 나는,

 

“하나님이 저 목사님의 소원을 이번엔 못 들어주실 걸? 아빠, 교회에 안 갈 거지? 할머니 다니시는 성당도 안 나가는데......”

 

아버지는 끊긴 노래를 이어 붙였다.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그 때의 눈물 자위 사라져버리고
흐르는 내 눈물이 그 위를 적시네」

 

“새가 다 달아나겠다. 신나는 노래로 부르자, 우리.”
“그럼, 이 노래 부르면 새들이 더 모일까?”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청승맞긴 하지만 즐겨 부르는 노래라 나도 따라 불렀다.

「별을 따다가 그 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밤 문득 드릴 게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분위기 좀 바꾸자니깐. 새들 버전에 맞춰주자고! 아빠, <행복의 나라>는 어때? <시인의 마을>도 좋을 것 같고. 참새와 허수아비? 제비? 내가 악보 찾아봐?”

 

이 날 첫 손님이 찾아오자 우리의 마당놀이는 끝이 났다. 아마 일 주일이 더 지난 어느 평일, 역시 그 목사가 이번엔 혼자 찾아왔다. 차도 없이 걸어서 올라온 것 같다.

 

“지난주에도 이랬었나요? 새들이 꽤 많군요. 차를 타고 다니면 새들도 못 보고 새소리도 듣질 못하니까요. 제가 차를 두고 나온 거, 아주 잘 했는데요. 아드님이신가요?”

 

나는 지난주, 목사를 처음 만날 때와 기분이 달랐다. 미안하다고 할까. 그런데 내가 왜 미안해야지? 교회를 꼭 가야 했나? 뭐 이런 것이었다. 아버지도 이랬을까?

 

“어서 오십시요. 하지만 지난번처럼 오신 거라면 이 높은 데까지 자주 오실 필요 없으실 것 같은데요. 저흰 주말이나 주일이 더 바쁘거든요.”

 

목사는 손부터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만큼은. 이곳을 가끔 걸어서 넘어가곤 하는데, 꼭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들곤 했었거든요. 꽤나 됐지요. 그러나 목사 발길이라서... 용기를 못 내다가 오늘에야......”

 

“용기라뇨? 편히 들어오시면 됐을 것을. 들어가실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두 분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을 순 없을까요? 전, 저녁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거의 낼 수가 없기 때문에 노래를 들으러 올 수가 없거든요, 당분간은. 괜찮으시다면.”

 

“아시는 노래 있으시면, 제가 또 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으로 할게요.”
목사라서 그런지 하여튼 우리네와 달리 머뭇거리는 게 없었다.

 

“<모두가 사랑이예요>는 어떠세요? ‘해바라기’노래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마침 아는 노래군요. 다행입니다.”

 

노래 듣고 커피 마시고, 목사는 다시 걸어 언덕을 넘었다. 그런 후 몇 달 뒤 전화가 걸려왔다. 시낭송이나 아님 이야기 들려주기 같은 시간을 따로 마련할 수는 없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흔쾌히 좋다고 했고 며칠 뒤 목사는 몇 사람과 함께 카페를 다시 찾았다.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오늘 더 특별한 날’이라며 ‘노래 대신 낭송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떻냐’고 물었다. 손님들 역시 박수로 환영했다. 목사가 나왔다.

 

“저희 교회에”

 

이 말이 나오자 아버지와 나는 맞춘 듯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교회선전을 하려는 건 아닌가 해서였다. 더 들어보기로 했다.

 

“다니시던 두 분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분들의 이야기를 설교 중에나 어느 사석에서도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귀한 이 분들의 삶을 주제넘게 글로 적어두었습니다. 제가 여기「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카페에서 노래를 처음 듣던 날, 이곳 손님들에게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들었고 다행히도 주인어른께서 허락을 해주시어 오늘 이렇게 여기 나오게 되었습니다. 소설형식을 빌어 쓰긴 했지만 이야기, 그래요, 이야기로 들어주시면 될 겁니다. 미천하지만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무대를 양보한 아버지를 부르며 기타와 노래로 분위기를 깔아줄 것을 요청하고 목사는 어느 개그맨을 흉내내기까지 했다.

 

“낭송이 낭송다워야 낭송이지!”

 

낭송엔 음악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농담이었다.

 

목사는 그날처럼 <모두가 사랑이예요>를 부탁했다. 아버지는 음을 하나하나 끊어 칠 수 있는 기타실력이 전혀 못되는 관계로, ‘으으음음’ 신음 같은 콧소리로 기타와 곁들였고 또 하모니카 대신 휘파람을 부르며 낭송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뒤에서 애써보았다. 뒷 배경에서 소리를 내주니 배경음악이긴 하다.
“「평양댁」이라고 제목은 붙여놨긴 했습니다만......”

 

 

평양댁,

 

1.
걸룩 컬룩 거억
그러면서도 심 씨는 담배를 또 꺼내 문다. 발이라도 디딜 만큼 여유가 없는 방에는 언제 비웠을지 모르는 빈 밥공기와 김치 몇 쪼가리 남겨 놓은 사기그릇이 신문지에 대충 덮여 있었고, 꾀죄죄한 이부자리 옆 머리 맡에는 요강이 가래를 받기 위해 놓여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방세를 받아내지 못하는 중에도 남정네 혼자 저러고 궁상을 떨고 사는 걸 보니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츳츳 애꿎은 담배만 축내지 말고 도망갔다는 여편네나 찾아보우. 혼자 그 꼴...”
방안을 들여 보다 말고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에 말을 더 잊지 못했다. 문지방에 들고 온 김치 한 접시를 넣어두고는 또 ‘츳츳’하며 달아났다.

 

여느 때처럼, 청소차에서 울리는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마을 노래 같은 소리에 깨 무엇인가를 생각 짓는 듯 천장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바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섰다. 질서 없이 벽에 걸어둔 옷 중 하나를 골라 두어 번 털어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어데 가오?”

 

뒤에서 주인이 묻는 데도 뒤돌아 인사만 꾸벅 하고는 목적지가 있다는 듯이 앞길을 재촉했다. 동네를 나와 큰길로 접어들 때는 머리도 한번 쓸었다.

 

버스 정류장은 한산했다. 지나는 버스는 텅 빈 채로 달렸고 심 씨는 전봇대를 살피더니 마침 오래 전에 일별해두었던 청소인부를 구한다는 광고에 눈을 멈췄다. 적힌 전화번호를 암기하려는 듯 입을 몇 번 오물조물 해보더니 이내 쪽지를 꺼내 적었다. 공중전화부스로 걸어가면서 동전을 꺼냈지만 전화기 앞에선 주저하고 전화를 걸지는 못하고 있었다. 직장인으로 여겨지는 한 여자가 전화 걸 거냐고 짜증스럽게 묻자 그제야 전화기 앞에 다가갔다. 방금 적은 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통화를 짧게 끝내고 돌아서면서도 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외투를 다시 털어보며 새끼손가락으론 얼굴의 눈곱을 떼 내었다. 버스 몇 대를 보내고 난 뒤 버스에 올라탔다.

 

2.
“내일은 일찍 좀 깨주시겠어요?”
“어제도 일찍 나가더니 어데 가오?”

 

아주머니가 반갑다면서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창식 어머니, 내달부턴 밀린 방세도 신세도 모두 갚아드리갔소. 새벽 4시엔 깨얄 것 같으니 그리 좀 알아주소.”
“하면, 깨워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잘 됐구려. 돈벌이를 구했어, 그죠? 돈벌이를. 츳츳”
주인네에게 청소부 자리 하나 얻었다고 일러주려다가, ‘잊지 말고 꼭 깨워나 주소’하고 말았다.
방청소도, 세수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코에선 콧노래가 나올 만큼 마음이 환해졌다. ‘자알 됐구만. 저 나이 먹도록... 혼자이... 츳츳’

 

3.
날은 쌀쌀했다. 밖은 어두웠고 조용했다. 주인이 깨우려 할 때는 이미 심 씨는 이불 안에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첫 출근인 것을. 이래서인지 밤새 거의 뜬눈으로 지냈다. 그 전에도 막노동벌이야 하려 든다면 일이 없진 않았지만 해보자는 결심을 갖는 데는 심 씨에겐 무진한 용기가 필요했다. 인적 없는 깜깜한 길이라 두렵긴 했지만 심 씨는 일어나면 정오였던 엊그제까지의 기분과는 전혀 달랐다. 두려움은 다른 데에 있었다. 구청의 한 청소대행업체에 취직은 했다지만 늘 놀고먹고 한 버릇에 일에 대한 공포감, 내가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때문에 취직의 흥분보다는 이런저런 걱정으로 더 심란했고 몸을 뒤척이며 밤을 새워야 했다.

 

제 나이쯤 돼 보이는 동료는 눈에 띄질 않고 거개가 적으면 댓 살, 이들 중 여남은 해는 족히 차이 나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의 차도 있지만 워낙 여윈 형틀에 심 씨는 남들보다도 나이가 더 들어보였다. 동료들이 위아래 훑어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그 몸으로’ ‘우리 몫이 더 많아질 것 같은데’ 동정과 불평이 겹친 소리가 들려왔다. 심 씨는 눈치를 차리고, ‘이래 봬도’ 하며 솔선하여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청소가 쉬워보여도 일의 순서가 있고 요령이 있는 법. 뒤에서 마무리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하루 내내 청소차를 뒤쫓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첫 날이라 더 힘들었을 거요. 하지만 이력이 붙을 때까지만 견디면 일은 그렇게 어려울 건 없지요. 피로한 건 쓰레기나 만진다고, 연탄재나 나른다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거라우.”

 

술 한 잔을 거절하고 오후 두 시경 돌아오면서 슈퍼에서 소주 한 병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4.
말대로 이력이 몸에 붙었다. 일은 한결 수월했다. 이층 양옥집에서 집어준 수고비로 동료들과 거나하게 술에 취해보기도 했다. 사람과도 이젠 이력을 붙여갔다. 모든 것을 체념한 것 같이 살았지만 이해나 관용으로 여겨지는 말로 그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몸이며 냄새며 씻어낸다 한들 그것은 겉일 뿐 마음까지 씻어낼 수는 없었다. 제가 보기에도 볼꼴 사나울 터인데 남들이야 오죽 어찌 보겠는가. 남이 먹고 쓰고 남은 찌꺼기들을 다 치워주고 나면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제 집 더러운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듯 보는 눈총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럴 때마다 ‘별 수 있남. 내 주제에 무슨 사람대접 받길 바란담.’ 하며 자책으로 위로했고, ‘나 아니면 누가 이것을 치운담’ 하며 자위로 위안했다. 이렇게 그들과 진짜 동료가 되어갔다. 더욱이 사람노릇도 하게 되어 만족했다. 일부지만 우선 밀린 방세를 지불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네 막내아들 창식에게도 선물용 과자도 사다줄 줄 아는 사람으로 신세를 갚게도 되었다. 주인은 이런 그가 더 측은했다.

 

“빨래감 내놓으시오. 내 좀 거들어드리리다. 거어, 여편네 거소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했소?”

 

제 일인 양 심 씨를 신경써주는 마음이 고마웠지만 아내 얘기는 그만 좀 했으면 싶었다. 아내는 이미 남의 여자가 돼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고 낮에 집에 들어오는데 창식 어머니가 손매를 잡아끌었다.
“이보오, 심 씨. 겡기찮으면 이럴 때 홀애비 신세나 면해보시구랴. 소식도 없고 죽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무작정 기다린다고 누군들 그 갸륵한 뜻을 알아나주겠소? 또 알아주면 심 씨에게 무신 이익이 되겠소. 한번 여자 만나볼라요? 마침 내가 나가는 교회에 야물딱진 아줌마가 있는데. 사람이 여간만 신실한 게 아니라고 교회서도 소문이 자자합디다. 이 기회에 신세를 바꿔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내 말이 그 말이지요. 뚝 눈 감고 한번 만나봅시다. 내가 중신 한번 서 보일 테니.”

 

심 씨는 빈 도시락을 문턱에 내려놓았다. 걸터앉아 벗은 양말을 툭툭 두어 번 털어내더니 방 안으로 던져 넣었다.

 

“또 신게? 내놓으라니까. 저리 언제까지 궁상을 떨고 살거유? 츳츳, 생각 한번 후련히 바꿔보면 신상이 훤해질 텐데 그러네. 싫진 않은가 보네.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내가 날 잡아보리다. 항상 낮엔 시간이 비는 거지요?”

 

“창식이 어머님, 고맙지만 내 이 꼴로 살면서 남 데려다 놓고 내 영화만 구하겠는 건 안 되는 거지요.”
“사는 게 다 그렇지 어데 더 수 나은 사람있답디까? 생각이 그러하다니 내가 정말 발 벗고 나서 봅니다. 알아서 시간만 맞춰 놓으시오. 측은해서 내 더 못 보겠기에 하는 수작이요.”
“창식 어머니도, 사는 게 다 그렇다면서요? 없이도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버려두시라요.”

 

5.
창식 어머니는 평양댁이라 불리는 교회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심 씨를 마주 앉혀 놓고는 평양댁 칭찬을 늘어놓았다. 독실한 교인이며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더없이 착한 사람이며 지금 장로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근면한 여자라고 했다. 적적했던 지나간 시간이 그 여자를 보니 다시 더듬어졌다. 새 여자를 만나면 과거 여자를 보게 되는가. 잊고 산 아내가 한 말이 심 씨와 헤어지며 떠올랐다.

 

‘나는 버려도 좋으니 이 어린 자식들은 꼭 거둬 달라’ 던.

 

하지만 아내가 이렇게 떠난 뒤 술에 절어 살던 심 씨는 결국 두 아들마저 놓치고 말았다. 가출 그 뒤로 소식을 모르고 있었지만 아내가 재혼을 하며 아이들도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절대 아이들을 만나보게 하지 않았다.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고 했다.

 

창식 어머니는 심 씨 칭찬으로 입을 바꿨다.

 

“서로 긴 세월, 외로웠을 것 아니유. 얘기하구려. 나는 바깥 일을 남겨두고 들어왔으니 이만......”“창식 어머니, 고맙지만 그만 하시지요. 내 어찌 감히 편한 길을 욕심이나 낼 수 있겠는지요. 그건 그렇고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 일은 다 용서해주는 건 맞나요? 누구나 용서해줍니까?”

 

“아니, 심 씨가 그런 말을 다하고. 그러믄요. 그럼요. 이번 주일에 우리 같이 나갑시다. 그 때 다시 평양댁 하고의 얘기도 재고해보시구요. 잘 됐네. 잘 돼가는 거야요.”

 

하도 마다 하여 창식 어머니는 평양댁과 함께 집밖으로 나가고 심 씨는 교회에 나갈 마음만은 새기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면 다 용서해준다는데. 지금 어디서 무엇들 하고 사나? 지애비가 아무리 못났어도 그렇지, 망할 것들.’

 

넋을 놓고 말았다.

 

그 날 저녁, 심 씨는 창식 어머니로부터 성경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교회도 나오고 같이 하나님 믿고 살면 더 의지 되고 좋을 거지요. 잘 됐어. 아주 잘 됐다니깐. 츳츳 이제야 제대로 사람구실하고 사는가 봅니다.”

 

놓고 간 성경책을 들춰보았다. 난생 처음이었다.
‘우리가 저에게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 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자주 교회는 나가지 못하여도 심 씨에겐 성경을 읽는 일이 점점 즐거워져 갔다. 무엇보다도 늘 지고 있던 죄를 고백함으로써 덜어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교회에서 배운 성가는 귀에도 입에도 익어갔다.
‘내 주를 멀리 떠나서 이제 옵니다.’

 

“심 씨, 요즘 교회 나가는가 봐? 교회쟁이가 다 됐는 걸. 교회노랠 흥얼거리지 않나. 그거 교회노래 맞지?”

 

그러나 심 씨는 미화원 동료들이 이럴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망할 것들, 지금 무얼 하는지. 이 애비 원망 많이 하겄지.’

 

더 성경에 빠져들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6.
심 씨가 제 구역도 맡게 되자 담당 동네골목에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자주 만나 인사를 주고받는 이들도 늘어났고 그 중 한 사람에 평양댁도 있었다. 교회에서나 마주칠 뿐 따로 시간을 낸 적이 없었다. 창식 어머니도 심 씨의 완고함에 손을 들고 말았기에 운만 가끔 떼볼 뿐 두 사람을 더 가깝게 만들진 못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교회 말고 골목에서 종종 만나게 되었는데 만남은 좋다고 만나지는 것만은 아니다.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날은 그냥 지나쳐지질 않았다. 하지만 처음엔 평양댁이 늘 가지고 나왔던 쓰레기봉투가 문 앞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고 점점 이런 날이 길어지자 심 씨는 평양댁이 더 궁금했고 놀랍게도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람이 아닌 물건, 그것도 쓰레기봉지로도 사람을 생각나게 하다니...’ 묘했다. 이런 감정은 살아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집 안에 있을 그녀는 밖으로 나타나 주질 않았다. 그녀의 분신인 20리터짜리 초록봉지만이 그를 맞았다.

 

여느 날보다 서둘렀다. 일을 앞당기면 그녀를 우연으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였다. 역시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가 두고 갔을 그녀의 손길만이 문 밖에 놓여 있었다. 조금씩 그 시간은 당겨졌다.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시간이 좁혀지고 있었다.

 

“주님은 모든 이를 정말 다 사랑하십니까?”

 

기대의 시간이 맞닿던 날, 평양댁에게 심 씨가 물었다.

 

“그렇지 않구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전히 주님을 마음 속에 모시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모두 다 말이지요? 모두 다 용서한단 말이지요?”
“주님은 당신을 믿고 죄를 용서 받기 원하는 자 누구나 구원하십니다. 우리 주를 믿으세요. 그럼 구원 받습니다.”
“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내 아내만이 아니라 두 아들까지도 버렸습니다. 이런 죄도 용서를 해주신다는 건가요?”

 

평양댁도 심 씨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주는 죄인인 우리 모두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했어요. 죄인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는 인간 모두가 죄인이라고 하셨지요. 마음으로 구원 받으세요.”

 

평양댁은 조금 전과 같이 확신에 찬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무 오래 밖에 있었다며 그녀는,
“목적으로 주를 섬기지 말라 했어요. 주는 처음이며 끝이라고 했어요. 주의 힘을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 주께 가장 큰 죄악이라고 들었습니다. 믿고 따라야 합니다.”
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문을 닫았다. 돌아서는 심 씨의 눈으로 아침 햇살이 부시게 빨려 들어왔다.

 

7.
주일이 되자 심 씨는 교회를 찾았다. 평양댁은 식당에서 봉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교회 마당에서 창식 어머니가 심 씨를 보자 유난한 마중을 해주었다.

 

“얼마만이야, 이게. 잘 됐어요. 잘 됐어. 예배 끝나면 점심 꼭 함께 들고 같이 내려가는 거유.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부터 같이 올 걸 그랬잖수. 같이 오면 더 좋았을 걸. 츳츳. 담 주부턴 이러지 말고 집에서부터 같이 오기로 하기유!”

 

창식 어머니는 중년의 한 여자를 소개했다.
“평양댁은 권사님 댁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 분은 우리 집에... 심 씨라고 부르면 되나요?”

 

권사는 아는 듯이,
“평양댁에게서 대충 사정을 들었어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에 주저하면 안 돼요. 어떻게 주저할 수가 있겠어요.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사하여 줌으로서 위안이 돼주시는 것을요. 평양댁도 처음 우리 집에 와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더라구요. 하나님이 어떤 죄도 용서해 주냐고 하면서요.”

 

그리고 평양댁이 없는 자리에서 그녀를 소개했다. 이북이 고향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이미 돌아가신 부모 얘기를 하도 많이 하기에 평양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며, 평양댁의 말에 의하면 결혼했지만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집을 나왔다는 것이며 후에 그 죄를 용서 받고 싶어 절에도 교회에도 다녀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런 중에 자기 집에 들어오게 되었고 권사는 그녀에게 성경 한 구절을 읽어주었다고 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 이후 지금까지 교회봉사활동에 남보다 더 성실했다고 했다.
“신실한 자매지요. 주일이면 빠짐없이 노인정에 들러 빨래도 해주고 거기 있는 테레비도 저 자매가 사다준 거구요. 식모 일로 벌이가 형편없는데도 먹고 자기만 하면 더 이상 쓸 것이 없다면서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은 죄라 여길 정도니까요. 자기보다 못 먹고 사는 사람이나 늙어 힘없는 노인도 많다는 거지요. 작은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내려주신 건 아닌가 할 정도의 그런 자매지요.”

 

이 날 이후로 심 씨는 주일예배에 빠지는 일이 없었고 평양댁과 함께 교회 일을 돕는 등 하는 일도 겹치다 보니 만나는 일도 잦았다. 또 이 날 이후로 창식 어머니는 이들에게 그전과 같이 다시 관심을 보였다.
‘둘이 부부의 인연으로 맺어진다면 남들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될 텐데. 보니 잘 됐어. 잘 될 것 같여.’

 

8.
“권사님이 차 좀 드시고 가시라는데요. 들어오시지요.”
막 쓰레기를 비우고 떠나려는데 평양댁이 심 씨를 불렀다. 심 씨가 냄새 지독한 제 옷을 내려 보고는 멈칫하고 있자, 현관 안에서 권사가 나왔다. 잔디가 곱게 깔린 정원엔 파라솔 의자도 있었다. 거기로 안내를 받았다. 차를 내온 평양댁에게도 앉아보라고 했다.

 

“두 사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고집이 두 분 다 그렇게 셉니까? 과거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리고 두 분은 분명 우리 주님이 이미 용서하셨을 거구요. 하나님이 맺어주신 인연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하는 대로 따라주면 되어요. 두 분의 일은 우리 교회의 큰 기쁨이요 축복이 될 겁니다. 목사님도 두 분의 장래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계시거든요. 진행시키는 걸로 알고...... 그럼 그렇게 알고 계세요.”
심 씨도 평양댁도 고개를 저으며 극구 사양하긴 했지만 그전과는 달랐다. 외로움을 현실이 극복해 주고 있었다. 죄스러움도 만남으로서 가려지거나 누그러트릴 수가 있었다.

 

“고맙지만 제게 평안은 죄악입니다. 고맙지만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축복을......”
고맙지만 받을 수 없다는 마음은 심 씨도 평양댁도 같았다. 권사는 눈치를 채고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하며 그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안에서 주인집 장로가 아내를 불러들였다.

 

“평양댁 아주머니, 오랫동안 저는 정이란 걸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내 아내에게도,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그 흔한 따스한 정 한번 주질 못했지요. 이러니 나 또한 정을 받고 살 처지가 못 되었고 사는 게 지옥이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니 조금은 이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생각하니 사는 게 이젠 축복 같더군요. 이래서 지금이 제겐 너무나 행복합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야 나도 정을 나누고 오순도순 살고 싶기도 하구요. 이게 저에겐 당치도 않은 욕심이고 사치라고 여겨지긴 합니다만. 아주머니는 어떠신지요?”

 

평양댁이 심 씨를 처음으로 얼굴을 대하며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저 역시 죄 많은 여자예요. 제가 앞으로 더없이 주님을 섬긴다 해도 다 용서 받진 못할 거지요. 이런데 누굴 만난다는 게 더 죄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그 죄를 사하는 길이라고만 생각하고 오로지 삽니다.”

 

심 씨가 끄덕이며,
“그렇지요? 그렇지요?”
하며 동감했다. 이런 심 씨로부터 평양댁은 마음 한편에 의탁심이 생기고 있었다. 기대보고 싶었다. 들어가 봐야겠다며 등을 돌려야 했던 것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삶이 눈물도 없게 만들었었다. 생활이 울음도 참게 해주었었다.

 

 

9.
두 사람은 장로 집 문 앞이나 교회에서 이따금 만나곤 했지만 마음의 진전을 가져올 어떤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오히려 피했다. ‘또 후에 뵙지요’ 고작 이런 말만 심 씨가 했을 뿐이고 평양댁의 얼굴은 더욱 울적해져 갔다. 그녀는 혼란했다. 그 전과는 다르게 심 씨가 더 그리웠고 때로는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삶도 문득 그려보기도 했다. 미래가 없던 그녀에게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혁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당장의 것에 충실하게 살아야만 했었다. 심 씨 또한 그녀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지만 이럴 때마다 마음은 더 우울해졌다. 어느 누굴 마음에 두고 산다는 것이 사랑이란 것인가. 그는 답답했다. 가슴이 콱 막혀오는 답답증에 매일 밤을 시달려야 했다. 성경을 꺼내 읽어보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글씨 위로 나타나는 그녀를 성경도 지울 수가 없었다. 말씀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오전 11시 예배가 끝나고 담임목사는 심 씨를 불렀다.
“심 선생, 교회 일 하나 맡아 꾸려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보다시피 교회엔 잡무가 많아요. 이곳에서 기거하시면서 저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제가 방은 하나 마련해뒀답니다. 그리고 얘기 들었습니다. 두 분이 함께 교회 일을 도와주신다면 우리 교회로서는 축복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평양댁에게는 제 처가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권사가 다가오자 목사는 교육관이 있는 교회 뒤로 갔다.
“버젓하게 하면야 좋겠지만 두 분 다 나이도 들만큼 다 들고 했고 가족도 두 분만 단출하니 간략히 교회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답니다. 날자는 곧 일러드릴게요. 그렇게 아시고 계세요.”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의 추진도 그러하지만 심 씨나 평양댁이나 그들의 마음을 돌아설 수 있게 할 만큼 그들은 만나지 않아도 이미 가까워져 있었다. 둘의 합침이 주님의 은총이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두 사람 다 같은 마음이었다. 저녁 예배까지 끝난 회당 안에 혼자 남아 심 씨는 예수고상 앞에서 고맙다는 기도를 올렸다. 집에 돌아오자 창식 어머니가,

 

“그것 봐요. 주님께선 무엇이든 가능하게 해준답니다. 두 분을 맺어주신 은총의 천사시지요. 짐 옮길 때 우리 창식이 아빠가 차로 도와주실 거예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옮겨 놓도록 하구려. 전혀 부담 같지 말고. 축하해요. 내가 더 기쁘구려. 츳츳.”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와 누웠다. 눈을 감자 교회서 스쳐 만났던 평양댁이 나타났다. 그녀는 또 그를 잠시지만 무표정하게 쳐다보았었다. 그리고 웃고 지나갔다. 그녀의 미소는 스치는 옷깃 같았다. 옷깃 같은 웃음이 그의 마음 속에 담겨서 쉬이 잠들지 못하게 했다.

 

10.
식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잔칫날 같은 준비였다. 그들의 거처는 교회 뒷마당에 그 전 목사 가족이 새 집을 짓고 나가기 전까지 살았던 단층 양옥이었고 오래 비워뒀던 탓에 수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방 수리는 미화원 동료들이 업무가 끝난 뒤 오후 시간에 와서 도와주었다. 제법 빨리 신혼방이 갖춰지고 있었다.

 

‘주의 은혜가 너무 나에게만 과하군.’

 

심 씨는 주님은 물론 모든 것에 다 감사했다. 잡힌 혼인식날이 다가오자 더욱 감사했고 이럴수록 더욱더 보은으로 가슴을 채웠다.

 

시멘트부대를 지고 교회 안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목사가 그를 불렀다.
“심 선생, ... 아니 일 봐요. 오늘 저녁에 잠깐 저를 좀 보고 가시지요.”
“목사님, 부활절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저희 일로 인해 부활절이 부실하지 않도록 신경 더 쓰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은...... 그럼 나중에.”
“부활절을 지내고 나서 저희 날짜를 잡는 건데 그랬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래두요.”

 

목사에게서 짜증스런 말투는 처음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예민해 있나 봅니다. 심 선생은 어느 경우라도 이겨내셨잖아요? 이제는 주님이 심 선생 곁에 늘 함께 계시게 되었구요. 그럼.”

 

심 씨는 들뜬 기분을 숨길 수 없었던 행동을 돌이켜보며 겸연해 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시멘트부대도 의식 못하고 굽실거리다가 부대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 쪽이 터졌던지 뿌연 먼지가 땅 위로 올라왔다. 메케하고 시큼한 시멘트냄새와 최루 같은 가루먼지가 코를 찔렀다. 목사는 심 씨의 어깨를 손으로 몇 번 쥐어준 뒤 떠났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목사관을 찾았다. 사모에게 차를 내오라는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나무 소파에 앉자고 했다. 목사가 입을 떼지 않아 한참 침묵이 흘렀다. 차를 내왔고 사모는 따뜻할 때 들라고 했다. 사모도 둥근 이동쿠션에 앉았다.

 

“다름 아니라, 평양댁 일로 보자 한 겁니다. 아침 일찍 권사님이 들렸는데 어제 저녁 평양댁이 쪽지를 남기고 갔다더군요.”

 

그리고 보니 오늘은 내내 그녀를 볼 수가 없었다. 날이 가까워지자 일을 서두르고 있겠거니 했었다. 사모가 목사를 도왔다.

 

“이것... 심 선생님께 남긴 편지랍니다. 우린 평양댁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심 선생님이 좀 더 기다리셔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린 그 분이 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 품안에 우린 항상 함께 있으니까요. 은총의 날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이라 여기고 심 선생도 그 분을 더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참, 지금 수리 중인 방은 공사를 계속 하세요. 다 끝내고나면 심 선생이 머물 곳이니까요. 교회 일도 맡아주시면서요.”

 

사모는 미리 준비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곧 돌아올 겁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 분이 더 큰 품 안으로 갔듯이 우리도 더 큰 가슴으로 그 분을 훗날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요.”

 

평양댁이 편지를 남겨두고 떠났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도 심 씨는 꿈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꿈은 아련하기도 하지만 아늑하기도 했다. 눈을 뜨니 사라진 꿈이지만 꿈은 하루 때로는 더 긴 시간을 꿈 속인 양 머리 속에서 감돌았었다. 꿈은 그랬다. 그 꿈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그녀가 떠났다는 현실은 꿈이었고 꿈이기에 그녀는 남아있었다. 아련한 꿈은 아늑한 현실이었다. 이렇게 되면 현실은 곧이곧대로 믿어지지 않는다. 현실은 꿈만 같아진다.

<죄송합니다. 또 한 번의 죄를 짓고만 기분입니다.
전 양주에 있는 양로원에 가 있기로 했습니다.
심 선생님에게서 받은 깊은 정을 짧은 시간이지
만 받고 떠납니다. 정말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그 정을 난들 어떻게 마다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정을 받으며 남은 여생을 남들처럼 살고 싶었
던 한 여자에 불과했기에 잠시 나를 잊을 수가
있었지요. 모두가 심 선생님이 제게 안겨준 온정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저는 더 괴로웠습니다. 이젠 잊히고 사죄 받았을
줄 알았건만 지난 저의 과오는 아직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습니다. 더 죄를 씻어야만 저도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저를 다 용서하지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제게도 남들만큼의 복을 달
라구요. 주님은 그 기도를 끝내 들어주셨지만 제가,
기도드렸던 제가 그 복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씻고 용서를 비는 일은 주님 앞에서이지만
그 죄를 용서하는 것은 결국 제 마음에서 비롯된다
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용서하셨으되
저는 저를 아직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심 선생님의 깊은 정은 제가 지은 죄만큼 품고 가겠
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드리오며,
주님의 더 큰 은혜를 선생님이 받게 되시길 기도드리
겠습니다.
저를 부득이 용서하시고 오래오래 안녕히 계십시요.
평양댁 올림>

 

“심 선생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던 것 게지요. 뜻밖에도 평양댁이 가신 곳은 어느 절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이라더군요. 여기 교회에서도 그랬듯이 절로 간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로 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에게서 지은 죄를 사람으로서 씻어내겠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래요. 신은 용서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신에 의지할 때보다 그 분은 더 신실하실 겁니다. 이것이 진정 바라는 주님의 뜻이기도 하구요.”

 

목사는 심 씨에게 교회에 꼭 남아줄 것을 다시 부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모는,
“권사님이 그러셨습니다. 평양댁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도 환해 보였다구요. 권사님은 그 얼굴을 보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꼭 돌아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답니다. 우리, 함께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립시다.”

 

실감이 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와 또 읽고 읽어도 여전했다. 그녀는 떠난 것이 아니었다. 떠날 수가 없었다. 그가 붙들고 있는 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밖에서 창식이 어머니가 심 씨를 불렀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르던 소리는 몇 번으로 그쳤다. 안 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심 씨는 방문을 열었다. 초저녁 초승달이 아직 지지 않고 하늘에 남아있었다. 가는 초승달로 불현듯 평양댁의 손톱이 떠올랐다. 손끝에 달려 있던 초승달들, 그녀를 처음 편하게 마주 할 수 있었을 때 얼굴보다도 무릎 위에 모은 그녀의 두 손을 먼저 보았다. 가지런히 다듬은 손톱 끝. 그리고 그는 초승달을 연상했다. 밖으로 나왔다. 별이 하나둘씩 세상에 처음 나온 양 나타났다. 별을 셌다. 초승달에 붙은 목성부터...

 

“하나, 둘, 셋, 넷......”

 

초승달은 서쪽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순 여덟, 예순 아홉, 일흔 ......”

 

별을 세는 게 아니었다. 또 별은 그만큼 하늘엔 없었다. 별이 없는 공허한 빈 하늘을 찾아 수를 셌다. 보이진 않지만 있을 별들을 헤아려 세고 있었는지 모른다. 무심히 하늘을 세고 있었다. 무한수의 하늘.
“그래, 그녀는 모두를 사랑해야 했어. 하나만을 사랑하며 자기의 영달만을 바랄 순 없었어.”

 

빈 하늘의 별도 다 세고 나자 심 씨의 두 눈에서 눈물이 그제야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야기 낭송이 끝나고도 좌중은 조용했다. 숙연했다. 아버지는 낭송이 끝난 뒤에 <모두가 사랑이예요>를 다시 시작했다.

「이것이 행복이란 걸 난 알아요
이것이 슬픔이란 걸 난 알아요」

노래가 끝나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서는 연극도 한 편 가능하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다음은, 제가 혼자 이런 시간을 갖기에는 염치가 없을 것 같고 해서 더욱이 글도 수준이하이고 해서 한 분을 더 모셔왔습니다. 이 분은 시로 활동 중인 문인입니다.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모셔볼까요?”

 

내가 담배 피우는 이유

 

온통 먼지 같은 게 런던 가스 같이 앞을 가립니다.
그래도 뿜어낸 내 담배 때문에 더 그랬을 겁니다.
옆에서도 무진장 피워댔거든요.
세상은 흐릿해지고 안개 속을 거닐 듯 온통 세상이 멋지게만 보입니다.
살다보면
지내다보면
사랑도 안개처럼 가스로라도
내게 와 닿겠지요.
괜스레 나 혼자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사랑이란 거지요.
그래서 더 외로운.
먼지를 보면 사랑 같아서 외롭습니다.
안개를 보면 이별 같아서 괴롭습니다.
아직은 동요가 두려워서일까요
아직도 열정이 남아서일까요
마음을 채우고 나면 비워야 하는 담배피우기와 같습니다.
비울 때 이는 안개, 뭐 가스라 해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것이 몸에 나쁜 건 사랑과 같더군요
사랑은 담배처럼 경계를 가르칩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피웠군요
다 타버렸습니다.
비웠거나 경계했거나
다 태우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시낭송 중에도 <사랑을 위하여>, <못 잊어>그리고 <and I love so>, <Today> 등 팝송도 곁들이며 부지런히 배경을 책임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종종 이런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정말이지 여기서 연극도 가능하겠는 걸요?”

 

아버지는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또 다음을 기약했다.

 

“꽤 망설였는데 하고 나니 무척 속시원하고 잘 했구나 싶고 흐뭇하기도 하네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시간 줄 수 있는 거지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나는 목사에게 물었다.
“평양댁 아주머니와 그 심 씨 아저씬, 실제 인물인가요? 아님 글쓰기 위해서 지어낸 가짜 인물인가요?”
시작하기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며 실제 인물이라고 했다.

 

“그럼, <모두가 사랑이예요>라는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삼으신 것은 목사님 뜻이구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분들이 생각났어요. 노래를 들으며 그 분들을 떠올리며 아까 읽은 글을 쓰게 되었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무엇인가, 모두가 사랑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특히 그 평양댁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지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사랑이 사량이란 한자어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은 맞는 듯합니다. 헤아림 없는 사랑은 없겠지요. 어떤 사랑도요.”

 

아버지는,
“정기낭송시간을 따로 마련해보겠습니다. 저도 이젠 저의 한계를 요즘 느끼고 있고 그 탈출시기를 절박하게 소망하고 있었는데, 아주 잘 됐습니다. 손님들 반응도 꽤 좋은 것 같고요. 덕분에 이렇게 우리「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도 다양해지는군요. 오늘 낭송해주신 두 분께는 출연료 대신 음료 만원어치로 대신하겠습니다. 되지요, 주인 맘대로 이래도?”

 

목사는 교인 한 명 더 늘리려고 왔다가 카페가족으로 오히려 코를 꿰였다며, 만원은 다음 와서 먹겠으니 달아놓으라며 손가락으로 성호를 그었다. 나는 며칠 동안 ‘모두가 사랑이예요’니, ‘이것이 행복이란 걸 난 알아요’를 절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절로 절로. >>>글.그림=오동명/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알립니다!!

 

9월 29일 오후 7시, 제주시 산지천 공원 특설야외무대에서

 

<울지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의 저자 오동명의 북콘서트(사회 강혜경)

 

제주 민예총 주관. 저자와의 대담과 중간중간에 저자의 서투른 노래( 역시 서투른 기타와 함께)도 들려줄 예정임.

 

'서투른 자와 서투른 자들의 작은 혁명!!!'
와서 함께 즐겨요!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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