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22)

22. 내 마음의 보석상자

 

그럼
아빠와
러브샷은 어때

 

말레이시아에 세노이족이 살았단다. 이들은 꿈을 현실생활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데, 밤새 누구와 다툰 꿈을 꿨다면 그에게 가서 선물을 주며 화해를 했고, 또 꿈에 누군가를 때렸다면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세노이족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사냥을 나갔다가 맹수에게 쫓겨 도망치는 꿈을 꾼 아이에게는 사냥법을 일러주면서 실제로 맹수와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꿈을 통해 알려줬다. 그들의 교육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 사랑을 나눴다면 꿈에서 깨어나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그 사람에게 고맙다며 선물을 하는 것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풍습이고 관습이 되었다. 이러니 이들 세노이족은 폭력이 없었고 정신병이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스트레스도 없었다. 이들을 ‘꿈의 부족’이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카페의 땅 주인이 나간 뒤 내게 ‘꿈의 부족’을 들려줬다. 땅 주인의 발길이 잦아졌고 어느 날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계약에 없던 월세를 내놓으라는 것과 여기에 덧붙여 계약금을 내놓으라는 새 조건을 앞세웠다. 그가 제시한 액수도 터무니없었다.

 

“이제 이 놀이도 그만해야할 때가 되었나보다.”

 

순순히 물러나려는 아버지 대신 내가 나섰다.

 

“싸우지 마라, 절대. 유종의 미로 여기서 받은 행복을 깨지 말자꾸나. 고마움만 생각하자.”

 

나는 이번에만은 아버지 말을 거역해야겠다고 했다.

 

“얘기는 해야지. 그냥 물러날 수는 없어. 부딪치는 게 싫다 해서 남 좋은 방식대로 따라만 주는 것, 이것도 죄악이라고 배웠어. 아빠, 이번 일은 내게 맡겨볼래? 싸우진 않을 거니깐 걱정 안 해도 돼.”

 

바로 동네 복덕방을 찾아갔다. 복덕방에서는 장사가 잘 되고 있으니 권리금을 받고 넘겨줄 수 있다고 했다. 권리금이란, 카페를 수리하고 치장하는 데 쓴 시설비며 손님의 수, 즉 장사의 경영실적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복덕방에선 권리금조로 3천만 원을 제시했다. 이 정도면 카페를 물려받으려는 사람이 붙을 거라고도 했다. 이 사실을 알고 땅 주인의 아들이 찾아왔다.

 

“공짜나 다름없이 여길 쓰지 않았어? 하지만, 좋소. 천만 원을 줄 테니 바로 여기서 나가. 됐지? 근데 왜 어린 자네가 나서나?”

 

일방적이었다.

 

“마찬가지잖아요? 당신이 주인어르신은 아니잖소?”

 

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던지듯 내놓았다.

 

“대신 이번 달 말까지야. 내가 화끈하게 했듯이 분명히 날짜를 지키지 않으면...”

 

명령이었다. 하지만 싸우지 않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했다. 듣고만 있었다.

 

“만일, 만에 하나 다른 데서 열더라도 여기 손님을 빼앗아갈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말라고 전해. 그 땐 더 참지 못할 테니까!”
“심하군요. 참지 못하다니요? 누가 참고 있는데. 어떻든 아버지와 상의해서 연락하겠습니다. 이 돈은 집어넣으시지요.”
“연락? 주인으로서의 내 소임과 배려는 다 끝냈으니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어. 말일까지야, 알았어?”

 

그는 천만 원 수표와 그것을 내게 건네주는 장면을 핸드폰카메라로 찍었다. 동영상인 듯했다. 복덕방에선 두어 명의 예비 새 가게 주인을 모시고 왔다.

 

“장사가 잘 된다고 소문이 파다하잖아요. 그래서겠죠. 주인 아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겠다던데. 이래서 서두르는 걸 겁니다. 제가 가운데서 타협점을 찾아볼까요?”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나가고 아무도 없는 빈 홀을 뒷짐 쥐고 한동안 걷고 있던 아버지가,
“맥주 한 잔 할까?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는 쉬지도 못하고 아빠 일을 거들기만 했구나. 뭐, 이쯤 했으면 됐지 뭐. 처음엔 딱 1년만 쉬며 하려 했던 거였잖니? 내가 복이 많아서 3년 넘게 더 이 재미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 이 짓도 오래 하다 보니 이력이 붙으면서 미립도 나고... 아들, 요즘 기타를 꽤 치던데 노래 한번 불러주지 않으련? 듣고 싶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짓이 너무 신나서 10년이라도 더 할 것이라고 했었더랬다. 무언가의 말로 아버지를 헤아려보려 했지만 마음은 머뭇할 뿐 어떤 마뜩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날 때를 놓치면 추해질 수 있어. 지금이 그 타임인 것 같다.”

 

성끗거리는 아버지의 두 눈은 아쉽지만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 그 동안 아빠가 내게 들려주기만 했으니깐 오늘은 내가 서비스할게.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신청곡을 받습니다요.”

 

해식 웃는 나는 좀 어색했다. 아버지는 환한 미소로 박수를 대신 했다.
“아무 거나.”

 

 

쉬운 코드를 잡아봤다.
‘D-G-Em-A7- 다시 D-G~’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론 초보자들이 처음 배우는 알 아이레 주법으로 줄을 퉁겼다. 그리고,
“ ‘그대 머리의 리본을 떼어
느슨하게 풀어 내려봐요.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내 살결 위에 부드럽게 내려놓으세요.
내 곁에서 새벽 달빛이 비쳐올 때까지
이 밤이 다 새도록 나와 있어줘요.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과 함께 하는 것.
누가 옳고 누가 나쁘던
나는 상관 않는다오.
나는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내일은 악마에게나 떠넘기고
내가 필요한 친구를 보내주소서.
어제는 사라져버렸고,
내일은 아직 보이지 않아요.
혼자 외로이 쓸쓸한 시간,
이 밤이 새도록 나와 있어줘요.’
이런 노래야. 이젠 부를게.”

 

Take the ribbon from your hair
Shake it loose and let fall
Lay in' soft upon my skin
Like the shadow on the wall
......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
......
I don't care who's right or wrong
......
......

 

“악보도 없이 팝송을... 내 아들 대단한데?”
“내 아들이 대단한 게 아니라 누구나 이 정돈 다 해. 아빠만 악보에 너무 의존하니까 그렇지. 치매도 방지할 겸 한 곡씩 외워서 쳐봐. 암튼, 이 팝송 좋지? 나도 최근에 들었는데 아주 오래된 노래라네. 아빠가 내 나이쯤이었을 때 인기 있던 곡 아냐?”
“아니, 더 어렸을 때. 중학생이었을 걸? 그 때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 가수 이름도 생각나는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수염 멋지게 기른 사나이도 할아버지가 다돼 있을 거야. 살아나 있나? 어디 될까 모르겠다. 나도 한번 불러보마. 이제 자리 터치!”

 

......
Yesterday is dead and gone
And tomorrow's out of sight
And it's sad to be alone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
I don't care who's right or wrong
I don't try to understand
Let the devil take tomorrow
Lord to night I need a friend

 

“아들하고 러브샷 한번 해볼까?”

 

우리는 팔이 아니라 가슴을, 서로의 몸을 안았고 등 뒤로 휘감아 돌아온 술잔에 입을 맞췄다.

 

“아빠. 난 아빠가 이 카페에 재미를 붙이고 사는 모습에서 아빠의 다른 면을 봤어. 뭐랄까? 철학자 같애. 으음... 실천하는 철학자. 달관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세계에 쫓기지 않는 여유와 남을 좇지 않는 초월이랄까? 아빠가 더 많이 웃는 것을 여기서 봤으니까. 진정한 자유주의자. 나도 아빠 나이에 아빠처럼 이럴 수 있을까 몰라.”

 

“포기하고 체념했으니 이럴 수 있었지. 아들은 더 재밌게 살아야지 무슨 소리냐. 아들 말 맞다. 아들이 아빠의 모습을 좋게 봤다, 그래서 따라하고 싶다? 이게 바로 진보라는 거 아니겠니? 다음 세대를 이어가며 좀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말이다.”

 

“ ‘포기?’ ‘체념?’ 포기하고 체념하면 보통 그 자리에 안주하고 편한 것만 찾는 안일에 빠지게 되지. 나도 이 정도는 알아. 난, 아빠라서가 아니라, 포기나 체념이 아닌 포용의 신념으로 보였는데. 이래서 철학자 같고, 아빠가! 말만 진보가 아닌 아버지의 실천적 진보가 맘에 쏙 들어. 나도 아빠의 그 진보, 꼭 대 이어갈 거야.”

 

시실 웃으면서,

 

“그래? 단순한데 난. 그저 그전에 해보지 못한 거 해보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마냥 즐겁게 할 수 있었고. 한 동안은 아들이랑 함께 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 더 좋았구. 내가 무지 이기적이기까지 했는걸, 뭐. 아들의 귀중한 시간까지 빼앗았으니 말이다.”

 

“그렇긴 한데 하하, 나도 여기서 아주 재미있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빠가 즐거우니까 더 기뻤고. 근데 정말 그만 둘 거야?「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가 너무 정들었잖아. 나도 이렇게 아쉬운데. 다른 장소 알아볼까? 아빠의 웃음도 함께 사라지는 거 아냐?”

 

 

군밤을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아버지는,
“그럼 네가 잘못 본 거지. 그럼 난 철학자는 못되는 거야. 환경이 바뀌었다고 사람의 신조가 바뀌어서야 되겠니? 그래서야 쓰겠니?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은 언제나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적용돼야 하는 거거든.「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로 사람이 다시 태어났으니 이제 늘 웃으면서 살 거다. 봐 봐봐!”
“진짜 철학자다운 걸, 울 아빠. 약속해야 해. 지금 한 말, 늘 웃는다는 말. 내가 군대 갈 때도, 내가 다시 대학에 또 떨어지더라도...”

 

“얀마, 대학에 한번 더 떨어지면 그 땐 웃기는커녕 몽둥이를 들 거야. 최선을 다했다면 다르지만. 하고 싶은 공부해봐. 한껏 맘껏, 무언가에 빠져보는 시간은 살면서 꼭 한번은 필요하단다. 무언가에 빠지는 것! 대학을 목표로 삼지 말고 배움을 목표로 삼아보렴. 나도 네 나이 때 왜 그렇게 공부하기가 싫었던지... 남, 특히 아버지를 지나치게 의식해서였지. 나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아버지를 만족시키려 했으니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었겠지. 네게는 할아버지지? 세노이족, 그 ‘꿈의 부족’ 생각나니? 그 글을 읽고 아빠는 매일 <꿈일기>를 쓰기 시작했단다. 일기는 결혼 초에 써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참으로 한참만이지.”

 

“꿈일기? 꾸고 싶은 꿈을 쓰는 거야? 아님 꾼 꿈을 적어두는 거야?”

 

“응. 둘 다. 꿨던 꿈에서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면 그에게 문자메시지라도 보내 풀어봤고, '오늘밤엔 꿈에 뭔 일이 생기면 좋겠다며 그 바람을 꿈일기에 쓴 뒤 잠에 들기도 하고.”

 

“꿈대로 됐어?”

 

“이뤄진 것도 가끔은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매일 꿈을 꾸려 하며 잠들다 보면, 잠든 사이에 꾸는 꿈이 아니라, 이불 속에 들어가 자려고 눈을 감는 순간 얼굴에 절로 미소가 생겨나. 이것이 참 좋더라고. 웃으며 잠드는 것, 웃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 보통 꿈은 다음날 얘기하지만, 꿈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부터는 잠들기 전에 내 스스로에게 꿈을 얘기하면서 자게 되었거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고 있네, 이 경우에도.”

 

“그런가? 그렇지?”

 

“오늘은 무슨 꿈을 꾸길 바란다고 쓸 거야?”

 

“안 가르쳐줘. 이 꿈일기만은 나만 즐길 거야. 약 오르면 따라해 봐. 꿈일기를 써봐. 진짜 진보부자가 되려면.”

 

“난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쓰고 있잖아. 여기에 꿈일기까지? 어이구, 부담이 커서 등이 휘어지겠다. 하여튼 형식이 굴레가 되면 안 되니깐 더 생각해보고. 하지만 지금 기분 같아서는 꿈일기도 쓸 것 같은데. 웃으면서 잘 수 있다니까 말야.”

 

아버지는 악보를 뒤졌다.

 

“이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 했고 그 날이 곧 오게 됐네.「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를 문 닫을 시간에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곡이 될까? 내게 물어봤단다. 제목이 확 눈에 들어오더구나. 제목이 끝내줬어. <내 마음의 보석상자>, 이 카페는 내 마음에 보석상자가 되어줬거든. 사람이 아닌 이런 가게에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다니. 하기야 결국은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사랑이긴 하지만. 하루 날 잡아서「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가 인연을 맺어준 사람들을 모셔 송별회를 해야겠지? 웃으면서 끝낼 준비를 서서히 해보자꾸나. 알걸, 이 노래?”

 

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었지 서로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햇빛에 타는 향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기에
더 높게 빛나는 꿈을 사랑했었지.
가고 싶어 갈 수 없고 보고 싶어 볼 수 없는
영혼 속에서 음음~
가고 싶어 갈 수 없고 보고 싶어 볼 수 없는
영원 속에서 음음~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잊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하고 싶어.
잊어야만 하는 그 순간까지 널 사랑하고 싶어.
 

 

글.그림=오동명/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