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닭이라는 의미의 ‘규화자계(叫化子鷄)’는 강소 상숙(常熟)의 유명한 요리다. 특수한 가마에 넣어 굽는 방식과 독특한 풍미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체적인 요리법은 이렇다 :
크고 살진 암탉을 골라 내장을 빼내고 털을 말끔히 뽑은 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닭의 배안에 여러 가지 원료를 넣는다. 신선한 고기, 생새우살, 소시지, 표고버섯, 닭내장, 정향 등의 원료와 파, 생강, 소금, 간장 등의 양념을 버무려 채워 넣는다. 돼지기름으로 닭을 한 겹 싸고 다시 연잎으로 싼 후 밖에 황토 진흙을 바른다. 숯불 위에 올려놓고 약 4시간에서 6시간을 불에 구운 후 진흙껍질을 벗겨내면 된다.
그렇게 요리한 닭은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워 입에 맞는다. 특별히 맑고 향기로우며 맛도 유별나다. 상주 우산(虞山)진의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점에서 규화자계를 요리해 판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명성을 듣고 끊임없이 모여든다

청대 광서 8년(1882)에 문을 연 우산 산경원(山景園) 찻집이 처음 규화자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벌써 백년이 넘었다.
이처럼 맛있고 좋은 미식이 어떻게 ‘규화자’ 즉 ‘거지’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닭을 가마에 넣어 굽는 요리 방법은 명대 상숙 우산 기슭의 거지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 거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해가 바뀔 때마다 그 거지는 상숙의 한 마을에 있는 성황묘에서 머물렀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지만 시절이 구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때인지라 마을에 내려가 걸식하지 못했다.
깊은 시름에 빠진 그가 문을 나서는데 마침 중년부인이 갓 잡은 암탉을 들고 마을 옆 개울가로 가고 있었다. 그녀가 개울에 도착하자 뒤따라 어린 아이가 개울가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물장난을 쳤다. 부인은 “아이고, 녀석아. 물에 빠지면 위험해. 집에 가거라!”라고 말했지만 아이가 듣지 않자 암탉을 개울 옆 돌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마을로 데리고 갔다.
거지가 가만히 보니 기회가 아닌가. 새해맞이에 충분하지 않는가. 거지는 급히 암탉을 들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흙에 발이 빠져 신발이 벗겨졌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났다.
산 위로 달아난 후에 가만히 보니 솥도 없고 깡통조차도 없지 않은가. 생닭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멍하니 있다가 발에 묻은 진흙을 보고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지는 암탉을 소에 넣고 적신 후에 발에 묻은 진흙을 떼어내 빈틈없이 메꾼 후 마른 풀과 가지에 불을 붙여 그 위에 올려놓고 구웠다. 흙덩이가 된 암탉을 꺼내 손에 올려놓자 너무 뜨거워 ‘아야’ 소리와 함께 땅위에 떨어뜨렸다.
암탉이 땅에 떨어지자 쌌던 진흙이 떨어지면서 닭고기 덩어리도 함께 묻어나왔다. 새빨갛고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닭고기가 되어 있었다. 한 입 물자 입 안 가득 향이 베어 나왔다. 달콤하게, 배부르게 닭고기와 함께 설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혼자이기는 했지만 섣달그믐날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서 함께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그런 닭고기 요리 방법이 어떻게 음식점에 알려졌는지는 알 수는 없다. 음식점에서는 좀 더 가공해 많은 식객을 불러 모았다.
가면 갈수록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요리 방법도 발전하였다. 조미료 등도 가미되면서 맛에 풍미를 더해갔지만 진흙을 발라 숯불에 굽는 기본 방법은 여전했다. 민간 전통 맛을 지닌 미식이 되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것이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 영양이 있고 맛도 좋으며, 불을 가지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고 어둠을 밝힐 수도 있었으며, 불을 만들고 불씨를 보존하는 것 등등 모두 문명사회로 진입했다는 지표의 하나로 보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 숯불 위에 놓고 구운 ‘규화자계’는 맛있는 요리로 사람을 불러 모을 뿐 아니라 애초의 순수함과 순박함으로 돌아간다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의 옛일을 회상하고 잊지 않는 순수한 미학관념이다.
‘규화자계’의 음식 풍속 습관은 물질과 정신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유명무실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호감을 갖지도 않게 될 것이며 민속 전통의 계승 발전이라는 생명력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가미(百家米)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제사에서 인류에게 필수적인 식품을 가지고 귀신에게 올리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오곡, 가축을 삼가 바치고 사람머리 내지 친생아들까지 헌제하기도 하였다.(‘맹(孟)’자의 갑골문을 보면 아들을 삶아 신을 공경하는 풍속의 유습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신앙 습속, 의례 습속이면서 음식 습속 범주에도 속한다. 사람들은 귀신을 인격화 했기에 인류의 문화 유형에 근거하여 자신의 음식 습속을 귀신에게 억지로 갖다 붙였다.
거지는 걸식하며 배를 채우는 것을 근본으로, 많은 집에서 지은 밥인 ‘백가반(百家飯)’을 먹는 것으로 삶을 유지하였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백가반’으로 재앙을 쫓아버리고 병을 떨쳐 버리는 방법을 창출해내어 하나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호박안(胡朴安)이 편찬한 『중화전국풍속지』 하권에 강소성 ‘숭명(崇明)의 쥐 미신’이 기록돼 있다.
“숭명 사람의 쥐에 대한 미신은 세 가지다. 첫째, 쥐는 돈을 센다. ……둘째, 쥐는 허망하게 만든다. 쥐가 밖에서 먹을 것을 찾을 때 가끔 실족해 땅에 떨어진다. 미신을 믿는 부녀자는 그것을 보면 불길하다고 생각하였다. 질병이 생기지 않으면 다른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고 반드시 액막이를 하여야한다고 믿었다. 액막이 방법은 이렇다. 땅에 떨어진 쥐를 본 사람은 몸소 시골로 내려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쌀을 구걸하여야 한다. ‘백가미(百家米)’이다. 빌려 온 쌀로 밥을 해 먹어야 재앙이나 불길한 일을 막을 수 있다. 부잣집 부녀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거지로 분장해 쌀을 구걸하여야 했으니 실로 우스꽝스럽지 아니한가. 셋째, 쥐는 물건을 떼어 먹는다.”
평소에 사람들은 거지를 천하며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그런데 일이 생기면 자기를 낮추어 거지를 본떠 구걸하였다. 인격을 스스로 낮추어 재앙을 쫓아내고 의혹을 해결하였다. 실로 우매한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균형을 찾았다.
거지는 쥐 때문에 고뇌하지도 않고 함부로 이것저것 의심하지도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처지가 됐기에 길거리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뿐이었다. 한 끼를 해결하려고 이곳저곳으로 헤매 다닐 뿐이었다.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거지보다 근심이 많고 욕심이 많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그저 잠시 거지 행세해서 우환을 해결하고 무사안녕을 바랐다. 이런 심리상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사실 그렇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정신적 효과일 뿐이다.
거지를 모방해 백가미를 구걸하고 재앙을 쫓아내는 풍속은 여러 지역에 존재한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호남 평향(萍鄕) 사람들은 우환이 생기면 쇠를 가지고 상처를 내거나 피부가 붓고 짓무를 때까지 때리기는 경우도 있었다.
피부병과 같은 질환이 생기고 오랫동안 치유가 안 되면 친지나 친구를 초대해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쌀을 구걸했다. 빈부 차이가 있기에 많으면 10할, 적으면 한 접시 등 일정하지 않았다. 선향 약간을 들고 갔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날을 구걸하면 서너 단이나 열 단 정도의 쌀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절반이나 태반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탕위안을 만들어 반숙한 후 대나무 그릇에 담았다. 건장한 남자 몇 명을 선발하여 지붕에 올라가서 사방으로 내던지면 부근 남녀들이 모여들어 앞 다투어 주웠다. ‘창천재(搶天齋)’라 한다. 다 뿌리면 모였던 사람들이 와아 소리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병을 쫓아낼 수 있다고 전해온다.
‘창천재’ 때에 몸이 피곤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탕위안 10개 이상을 줍지 못하면 오히려 병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여야 했다. ‘타천재(打天齋)’라 한다.
이처럼 거지를 흉내 내어 ‘백가미’를 구걸하고 다시 사람들에게 뿌리는 것은, 직접적으로 귀신을 공경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낮추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도움을 청하여 재앙이나 병환을 해결하고 발산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백가미’를 구걸해 먹으면서 쥐의 재앙을 쫓아내는 거나 ‘창천재’나, 모두 우매한 변태 음식 습속 형태다. 거지라는 비정상적인 문화에서 파생된 문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