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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24) 아사(雅士, 바르고 깨끗한 선비)와 거지 (6)

후작(侯爵)이 구걸에 열중하다, 호적에서 지워지다

 

청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북경 해대문(海岱門) 안 영광사(永光寺) 앞에 40살 쯤 먹은 거지가 있었다. 채찍질을 잘했고 해학(諧謔)에 뛰어났다.

 

아무 때나 속어로 내키는 대로 소곡을 편성해 읊었다. 듣는 사람들이 탄복해 앞 다퉈 돈을 희사하였다. 돈을 구걸한 후 거지는 술을 사서 맘껏 마시고는, 남은 돈은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전부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거지는 훈구 세신으로 이미 후작을 세습하였고 예전에 건청문(乾淸門)을 지켰다고 했다. 30세 이후에 집을 벗어나 거지 행렬을 따라다녔다. 어떤 때에는 몇 개월에 한 번 돌아왔다. 일 년 내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집안사람들이 여러 번 집에 돌아와 산해진미를 향유하라고 애걸복걸해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잡혀 들어가도 삼사일이면 집안사람들이 소홀한 틈을 타 옷을 갈아입고 담을 뛰어넘어 숨어버렸다. 조정에서도 그 소식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이 들었다는 핑계로 호적을 지우고 그의 아들에게 작위를 세습하도록 하였다.

 

기이한가? 속세의 관점일 수 있다.

 

그 거지는 부귀영화를 버려버리고 거지 행세를 한 은사임이 분명하다. 무엇을 지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세상을 꿰뚫어본 인물일 수도 있다. 세상에 그런 예가 어디 한 둘인가.

 

이선(李仙)이라 자칭한 거지

 

이 또한 청나라 때에 있었던 일이다. 스스로 이선이라 부르는 거지가 있었다.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커다란 표주박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하였다. 돈을 얻으면 곧바로 술을 사서 마셨다. 사람들은 표주박 거지라고 불렀다.

 

술에 취하면 돈을 길거리에 뿌렸다. 앞 다퉈 돈을 줍는 아이들의 소리를 듣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 거지가 가는 곳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이 뒤따라 다녔다. 그런 어지러움이 싫어 그에게 더 많은 주면서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시장 상인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그가 얻는 돈은 다른 거지보다도 10배 정도나 많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거지는 글자를 쓸 줄 알았다고 한다. 시장 사람들이 100원 정도를 주면서 일 년 내내 다시는 그곳에 오지 않겠다는 약조를 써 달라고 하면 곧바로 승낙하고는 차용증을 써줬다. 약속을 위반하는 경우는 없었다.

 

차용증을 쓸 때, 한 글자를 쓸 때마다 북쪽을 향하여 세 번 절했다. 큰 글씨로 “우리 주인이신 광서 황제 모년에, 걸식하는 신하 이선 씀”이라 적었다.

 

궁금해서 “가난해져서 이런 지경에까지 전락한 당신이 어째서 황제의 은혜를 마음에 두고 한 시도 잊지 못하는 게요?”라고 물으면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공도 없으면서 백 호의 사람들에게 흠뻑 취하게 얻어먹을 수 있잖소. 관리들도 죄라며 따지지 않으니 모든 것이 황제의 관용과 은전인 게지요! 지금 천하는, 한 읍을 관장하면 한 읍을 배불리 먹이고 한 군을 관장하면 한 군을 배불리 먹이잖소. 그들 모두 나처럼 공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백 호의 사람들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먹으니 부끄럽지요. 그래서 감히 황제의 은혜를 잊을 수 없는 것이외다.”

 

그 거지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도력이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그 거지를 평하며 말했다.

 

“그는 관리였다. 모처에서 일을 했었다. 백성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고 백성에게 부당한 이익만을 추구는 상급자의 행태에 화가 나서, 관직을 버려두고 구걸하면서 풍자하고 비난하는 것이다.”

 

연시(燕市) 거지, 어리석은 노인

 

광서 23년(1897), 북경시에 화갑이 지난, 백발에 하얀 수염이 난 늙은 거지 한 명이 나타났다. 스스로 표주박 늙은이라 불렀다.

 

모자도 쓰지 않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겨울이든 여름이든 홑옷만 걸치고 다녔다. 커다란 표주박 하나를 들고 다니며 먹을 것과 쓸 만한 것들을 구걸해 표주박에 담았다. 얻은 것이 돈이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폭죽을 사서 터뜨리기도 했다. 미친 듯한 그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리석은 늙은이라고 불렀다. 그 거지가 신선이라 굳게 믿고는 도를 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그는 말했다.

 

“나는 신선이 아니오. 예부터 지금까지 신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소. 신선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사람을 속이는 방법인 게지요.”

 

관리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산서(山西)의 어떤 현의 현령이었다고 했다. 사람됨이 강직해 부패한 상사에게 무례하게 굴었다. 여러 번 모욕을 주자 사지에 몰리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가정을 버리고 강호에 은거하게 됐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거지는 말했다.

 

“골육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한다? 나는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소.”

 

그 늙은이가 산동(山東)의 모 지방 출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년시절에는 재능이 있었는데 시험을 여러 번 봤으나 결국 낙방해 화가 난 나머지 거지가 됐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거지는 말했다.

 

“나는 본래부터 재능이 없는 사람이오. 그리고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게 어디 한 둘이요?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불평하고 집을 떠난다는 말이요!”

 

끼어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왜 폭죽 터뜨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오?”

 

거지가 답했다.

 

“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서요.”

 

호기심이 생긴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볼 요량으로 많은 돈을 보시하면 늙은 거지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치 않소.”

 

몇 문(文)만 챙기고 나머지는 돌려주었다. 어떤 때에는 다른 거지나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당시 조정은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고 있었다. 거지는 분개하며 말했다.

 

“재난이 닥칠 거야. 여기에 오래 머물 수 없어.”

 

그러고는 사라져 버렸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3년 후(1990)에 경자사변(庚子事變)1)이 발생하였다. 이를 보면 그 거지는 분명 보통 거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반청(反淸) 은사가 아니라면 사회 밑바닥에서 생활하였던, 의식이 있는 지사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1901년 9월 7일, 청(清) 정부 전권대표 혁광(奕劻), 이홍장(李鴻章), 그리고 영국(英國), 미국(美國), 러시아〔아라사(俄羅斯)〕, 독일〔덕국(德國)〕, 일본(日本),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오흉제국(奧匈帝國)〕, 프랑스〔법국(法國)〕, 이탈리아〔의대리(意大利)〕, 스페인〔서반아(西班牙)〕, 네덜란드〔하란(荷蘭)〕, 벨기에〔비리시(比利時)〕 11개 국가의 대표가 북경에서 《신축조약(辛丑條約)》 체결)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의화단 운동(義和團運動), 청나라 말기에 의화단을 중심으로 일어난 농민운동이다. 청나라 말기에 그리스도교는 서양 군사력을 등에 업고 들어온 종교였다. 이러한 이유로 보수적 관료, 지방의 신사, 농민 모두 반대하였다. 1850년대부터 전국에서 반(反)그리스도교 폭동이 일어났다. 특히 독일의 세력 범위로 사회 불안이 가장 심했던 산동에서는 의화단이라는 종교 결사가 조직되어, 부청멸양(扶淸滅洋)을 구호로 하여 반그리스도교, 반제국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의화단이 베이징에 입성한 후 외국 공사관을 습격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8개국 연합군에게 패배하였다. 8개국 연합군은 청 정부를 압박하여 불평등 조약 ‘신축조약’을 체결하였다. 1900년은 중국 달력으로 경자(庚子)년으로 100년 전에 발생하였던 동란을 중국인은 ‘경자국변(庚子國變)’, ‘경자국난(庚子國難)’이라 부른다. 바로 ‘경자사변’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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