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구걸한 경험을 가진 거지가 말했다.
“물고기에는 머리가 있고 뱀에게는 사정(蛇精)〔뱀 모양의 요괴〕이 있는 법이요. 개미에게도 주인은 있고 꿀벌에게도 왕은 있소. 우리와 같은 사람에게도 보금자리가 있고 우두머리가 있소. 기질이 세고 횡포한 사람이 여럿을 통솔하는 것이오. 조 씨, 전 씨, 손 씨, 이 씨, 주 씨, 오 씨, 정 씨, 왕 씨, 가릴 게 없소.
우두머리에게는 한 근 밥을 얻으면 반 근으로 효경하고 빵 한 덩어리를 얻으면 절반 가까이 드려야 하는 거요. 담배는 공손하게 올리고 돈은 늘 드려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매를 버는 거지요. 초짜들은 산과 같이 엄한 법규를 모르지요. 누가 이곳의 주인인지를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심해야지. 눈 뜬 장님인가, 보고도 모르면 안 되지.
상대를 보면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거나 표정이 엄숙하거나 얼굴빛이 위엄이 서려있지. 패왕의 기질이 없다면 왕의 기색을 갖추었지. 그런 사람을 만나거들랑 기민하게 곧바로 달려가서 절해야 해.
어디서 왔노? 그러면, 뒤쪽에 있습니다. 어떻게 대관원에 왔노? 그러면, 저는 못해먹어서요, 얻지를 못해서요, 어른께서 관대히 봐주시고 저를 받아주십시오. 허, 이 녀석 얌전하구먼. 됐어. 날 잘 따르거라. 절대 문제 만들지 말고. 몇 살이야? 38! 됐네. 너를 다섯째로 봉해줄게, 괜찮지? 그래! 물고기는 물을 따라야하고 풀을 흙을 따라야지.
허리 한 번 숙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하고 담배를 권하며 돈을 바치면, 된 거야. 그의 사람이 된 거지. 이곳에서 밥을 얻어먹고 살 게 되는 거야.”(『중국의 개방 군락』)
그러나 개방 방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왕으로 우뚝 서는 것은 수월하지 않았다. 거지 두목은 한 지역의 토신이나 다름없었다. 평상시에는 지하에 숨어있어야 했다. 적당한 상대, 적합한 기회를 만나기만하면 땅속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권위를 발휘했다.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다.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강한 사람은 횡포한 사람을 겁내며 횡포한 사람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겁낸다.”
강호 사회 전통 중 ‘성과’를 얻으려면 문무의 길에서 최소한 하나의 길에 성취를 얻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길 수 있다. 어떤 때에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 횡포한 것,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을 제압할 수도 있다. 당대의 개방 방주는 대부분 유연한 방법(계책)을 가지고 있거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유연한 방법과 강함을 모두 갖춘 사람도 있었다. 강약을 모두 갖추어 자신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었다.
먼저 ‘강한 것’으로 방주 자리에 앉은 경우를 보자.
1986년 12월, 각각 연주(兗州), 서주(徐州), 천진(天津), 덕주(德州) 4곳에서 올라온 거지 5명이 태주(泰州)에서 만났다.
큰 키를 자랑하는 교금성(喬金城), 28세, 빈주(濱州)시 사람으로 당시에 이미 8년 동안 구걸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앞니가 드러나 있는 20세의 장청문(張靑文)은 구걸하기 시작한지 4년이고 안휘 소호(巢湖)지구 여강(廬江)현 금려(金廬)향 출신이었다. 곱슬머리에 귀밑머리가 특색인 17세 한급문(韓及文)과 네모난 얼굴에 큰 눈을 가진 19세 이영규(李永奎) 둘은 장구(章邱)현 문조(文祖)향 삼원(三元)촌 출신으로 6년 동안 거지 생활을 했다.
신체가 다부지고 상고머리에 기질이 난폭하며 경솔하게 지껄이거나 웃거나 하지 않는 산동 사나이 공상옥(孔祥玉)은 곡부(曲阜) 남신(南新)향 왕가장(王家莊) 사람으로 12세 때에 집을 나와 구걸하였다. 사부에게서 치기와 발차기를 연마해 무공을 할 줄 알았다. 완력이 남달랐고 권법에 능했다. 그는 권법과 담대함에 의지해 거지 5명 중에서 ‘노대(老大)’(우두머리)가 되었다. 자신보다 팔구 세나 많은 교금성은 오히려 ‘노말(老末)’(막내)가 되었다.
어느 날, 그들 5명이 작은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났다.
교금성이 빵 3개를 얻어서 먹으려는 순간 공상옥이 빼앗아갔다. 교금성이 불복하자 공상옥은 귀를 움켜쥐고 뺨을 몇 대 때리고는 다리걸이1)로 고꾸라뜨렸다. 같이 온 이영규와 한급문은 교금성을 도우려 나섰으나 주먹 한 대를 맞아 뒷걸음질 쳤다.
때마침 들어온 장청문이 중간에 끼어들어 좌우에 읍하며 말했다.
“모두 우리 형제요. 할 말 있으면 좋게 말로 합시다. 싸우지 마시고, 싸우지 마시고!”
그때 공상옥이 벽돌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러고서 다리를 올렸다 내린 후 숨을 내쉬고 힘을 모은 다음 손가락으로 벽돌 모퉁이를 깎자 퍽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다. 4명은 일시에 제압당했다. 4명은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큰형님’ 소리치면서 두목으로 모셨다. 동시에 간단한 규정을 정하고 큰형님이 배정해주는 것에 따라 행동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받기로 하였다.
“방주의 말을 들으면 먹을 밥이 생긴다!”
“큰형님에 의지해 쇠같이 단단한 형제애로 뭉친다. 노심할 필요 없다!”
공상옥은 그렇게 해서 거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중국의 거지 군락』)
단동요(丹東窑) 개방의 ‘토야(討爺)’(두목)도 힘으로 방주가 되었다. 그는 현재 37세로, 원래 길림성 농촌의 농민이었다.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다 노잣돈이 없어 도둑질, 강도질 등 1개월에 20여 차례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심양으로 가려고 차를 기다리다 은팔찌를 차고 교도소에 갔다. 1978년, 출옥하니 악명이 자자해져 아내조차 이혼 후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그러자 그는 하얼빈으로 가서 같이 수감되었던 사람의 지시로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다시 교도소에서 석방되자마자 대련으로 건너갔다. 상황이 좋지 않아 감히 경솔하게 강도질을 못하여 해산물 식당에서 접시를 핥으며 배를 채우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거지 2명이 나타나더니 그가 얻은 접시를 뺏어갔다. 엉키어 한바탕 싸우고 나서 무릎을 꿇렸다. 저녁에, 역 대합실에서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낮에 얻어맞은 거지 2명이 동료 10명을 이끌고 와서 밖으로 나와 ‘맞대보자’고 소리쳤다. 한 판 격전을 벌인 후 그가 승리했다. 같이 온 10여 명의 거지는 무릎 꿇고 ‘어르신’이라 불렀다.
원래 그 거지 무리는 ‘단동요(丹窑窯)’였는데 대련(大連)에서는 세력이 미미해 ‘여대요(旅大窑)’에 귀속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는 뜻하지 않게 단동 개방의 방주가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다리걸이, 소당퇴(掃蹚腿)로 소퇴(掃腿)라고 하기도 한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기로 ‘걸이’다. 무술 동작의 하나로, 발로 걸어 넘어뜨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외에 찰각(擦脚) : 앞차기, 척이기(踢二起) : 이단 앞차기, 등일근(蹬一根) : 옆차기, 선풍각(旋風脚) : 다리를 안쪽(시계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감아 차는 발차기, 다른 말로는 ‘내합퇴’, 파각(擺脚) : 다리를 바깥쪽(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돌려 차는 발, 다른 말로는 ‘파련각’ 또는 ‘외파퇴’, 십자각(十字脚) : 파각의 한 종류, 쌍파련은 발로 양손닥을 차는데 반해 십자각은 한 손으로 발을 친다. 등퇴(蹬腿) : 발바닥으로 상대방 복부를 내지르는 발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