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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20) 아사(雅士, 바르고 깨끗한 선비)와 거지 (1)

‘사(士)’는 오래된 한자다. 한나라 때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일하다, 섬기다(事)이다. 숫자는 일(一)에서 시작해 십(十)에서 끝나니 일(一)과 십(十)을 따랐다. 공자는 ‘십(十)을 미루어 일(一)을 합하면 사(士)가 된다’고 하였다.”라고 풀이하였다. 숫자 기록에서 퍼져 나온 ‘일하다, 섬기다(事)’가 본뜻이라 여겼다.

 

양백준(楊伯竣)의 『논어역주(論語譯注)』 통계에 따르면 『논어』 중에 단독으로 ‘사(士)’자 하나만 사용한 곳은 두 가지 상황이라 한다. 3차례는 일반 인사(人士)를 총괄하여 가리키고 있고 12차례는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수양한 사람을 특별히 지칭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士)’자의 갑골문 원형은 뜻밖에도 생식 숭배를 상징하는 생식기로 보는 학자도 있다. 먼저 남자의 통칭으로 발전한 후, 나중에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거나 수양한 사람을 가리키는 미칭으로 사용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른바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를 가지거나 수양한 사람은 중국문화전통 중 관직을 근본으로 삼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관점인 관본위(官本位)의 전형적인 구현이다.

 

『논어·자장(子張)』에 “벼슬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학문하고, 학문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벼슬하라.”

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형병(邢昺)·소(疏)에서 “사람이 관리가 되어 자기의 직무를 행하고 유유하여 여력이 있으면 선황의 유훈을 배운다.”라고 풀이하였다.

 

‘사(士)’와 ‘사(仕)’는 통한다. ‘사(士)’는 일찍부터 중국사회의 계층이 되었다. 이른바 ‘사민’〔四民,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서 가장 높은 사회 계층이다.

 

예를 들어 『구당서(舊唐書)·최융전(崔融傳)』에서 “사농공상(仕農工商) 넷은 직업이다. 배워서 높은 자리에 앉으면 사(仕)라 하고 토지를 개간하여 곡식을 심으면 농(農)이라 하며 기교를 부려서 쓸모 있는 그릇을 만들면 공(工)이라 하고 돈을 변통하여 상품을 팔면 상(商)이라 한다.”라고 하여 등급 구별을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이 사회 계층은 벼슬한 자를 포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벼슬을 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관직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인 은사(隱士), 신사(紳士)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관본위’ 제도 아래에서 파생된 ‘사(士)’의 부류로 모두 ‘아사(雅士)’라 자처하였다.

 

도연명(陶淵明)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원으로 귀거래 했어도 결국 농, 공, 상 계층에 속하지 않고 3개 계층 위에 있는 ‘사(士)’의 부류에 떠있다. 곤궁해진 사인이 세속에 영락하여도 그 ‘사기(士氣)’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한어 단어 중에 ‘사자(仕子)’, ‘사호(仕戶)’, ‘사녀(仕女)’, ‘사림(士林)’, ‘사문(仕門)’, ‘사빈(仕貧)’, ‘사은(仕隱)’ 등은 ‘사(士)’가 중국사회에서 특정한 계층에 속했다는 역사의 반증이라 하겠다.1)

 

사림(士林), 즉 사대부 계층이 아사로 자처한다. 그런데 일단 가난해져서 초라하게 되거나 재난을 당하여 곤궁해지면 일순간에 지위는 천 장이나 떨어져 사회 저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이 사인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에 상응하는 많은 피휘(避諱) 언어가 존재한다.

 

가난〔빈(貧)〕을 “집이 본래 빈궁하다”, “자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군곤(窘困)을 “절박하게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빈사(貧士)를 “쑥 위에 머물고 흰옷을 입는 사인”이라거나 “콩잎을 먹는 사람”이라 부른다. 먹을 것이 없어 춥고 배고픈 것을 “배고프고 추워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한 삶”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가난한 거지를 “벗고 다니며 초식한다” 말하며 거지를 “바가지를 사용해 구걸한다”고 말한다. 걸식하는 것을 “오원(伍員, 오자서)이 퉁소를 부는 것을 본받는 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송나라 때 임광(任廣)이 편찬한 『서서지남(書敘指南)』 권10의 ‘기한빈천(飢寒貧賤)’만 보더라도 옛 서적 중에 유사한 상용 어휘가 200여 종이나 된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상전벽해가 아니던가. 세상사는 몹시도 심하게 변한다. 세간 풍운의 변화가 무궁하다고 말할 필요 없이 한 시기 제왕 옆에서 영예롭게 영광스런 은총을 다툰다하여도 ‘군주를 모시는 것은 호랑이 옆에 있는 것과 같다.’ 하물며 많고도 많은 사림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하지 않는가. 사림 중에 있으면서 지위를 얻거나 재야에서 수양하거나, 그리 지내다보면 근본을 지지하고 있던 지위를 잃고 민간 하층 사회로 떨어지거나 심지어는 거지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호랑이도 평지에서는 개에게 물리고 털이 빠진 봉황은 닭보다도 못하듯이 권세가도 일단 지위를 잃으면 약한 자도 넘보게 되는 법이다. 사인이 거지로 전락하여 달갑지 않게 사회 저층에 머물게 되면 처참한 지경에 빠지는 게 당연하다. 제왕조차도 거지와 인연이 있는데 하물며 일인지하의 사림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하며 무엇 하겠는가.

 

그런 사람은 부지기수다. 기연이 많고도 많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종관해보면 아사와 거지는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다음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한어 단어 중에 ‘사자(仕子)’는, 벼슬한 사람 ; ‘사호(仕戶)’는, 벼슬한 집안 ; ‘사녀(仕女)’는 귀족 부녀자 ; ‘사림(士林)’은, 사대부 계층 ; ‘사문(仕門)’은, 벼슬한 가문 ; ‘사빈(仕貧)’은 곤궁해 벼슬에 나아가 봉록을 받다 ; ‘사은(仕隱)’은 출사하고 은퇴하다 뜻이다. 이 단어들은 ‘사(士)’가 중국사회에서 한 계층에 속했다는 역사의 반증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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