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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66)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⑬

입내(성대모사)의 기원은 아주 오래다. 『사기·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맹상군이 급히 함곡관을 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닭이 울어 새벽을 알리지 않으면 함곡관을 통과할 수 없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좋은 방법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닭의 울음을 잘 흉내 내는 사람을 찾아 새벽을 알리는 수탉 소리를 모방하여 울게 하여서는 여러 닭들이 일제히 따라 울게 만들어 무사히 함곡관을 넘었다.

 

이 기록에서 당시에 이미 성대모사 기예를 갖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대에는 명확한 입내 기술을 기록한 문헌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9권 「재집친왕종실백관입내상수(宰執親王宗室百官入內上壽)」의 기록이다.

 

“음악이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 집영전(集英殿) 산 위 누각에서 교방(敎坊)의 가무를 연주하는 예인들이 여러 금수의 소리를 흉내 내자 내외가 숙연해졌다. 울음이 그치자 공중에서 소리가 잘 어울리니 난새와 봉황이 날아와 모이는 것 같았다.”

 

『무림구사(武林舊事)』 1권 「성절(聖節)」에도, ‘여러 금수가 우는’ 호복(胡福) 등 2명이 있었다. 6권 「제색기예인(諸色伎藝人)」에 ‘사투리를 배운’ 방재랑(方齋郞)이 있었으며 ‘물건을 파는 소리를 흉내 내는(吟叫)’ 사람이 강아득(姜阿得) 등 6명이 있었다.

 

당시에 이른바 ‘규과자(叫果子)’1), ‘음아(吟哦, 음영吟詠: 박자에 맞춰 음송, 낭독하는 것)’ 또한 입내에 속했다.

 

송대 고승(高承)의 『사물기원(事物紀原)』 9권의 기록이다.

 

“가우(嘉祐) 말에 인종이 죽어서 사방에서 8음이 그치고 조용하게 되자, 시중에 처음으로 규과자 놀이가 생겨났다. 본래 지화·가우 연간부터 자소환(紫蘇丸)을 읊을 것과 악공 두인(杜人)이 십규자(十叫子)를 엮은 것이 시작이다. 경사에서 물건을 팔 때에는 소리를 지르게 마련인데 음아(吟哦)〔음영(吟詠)〕가 서로 달랐다. 그래서 시민들이 그 성조를 채용하여 사이에 사장(詞章)을 넣어 오락거리로 삼았다. 지금 세상에 성행하니 ‘음아’라 부른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도성기승(都城紀勝)』에서 말한 ‘와사(瓦舍)의 여러 기예’ 중 하나인, 시정에서 여러 색깔로 물건을 파는 소리를 따서 노래하고 읊조리는 기예다. 궁조에 맞춰 이루어진 ‘규과자’는 시중의 물건을 파는 성조를 종합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당시에 여러 설창(說唱), 가무(歌舞), 곡예(曲藝), 잡기(雜技) 예인은 모두 거지의 지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물며 보잘 것 없는 재주인 입내 예인이야 말하여 무엇 할 것인가. 『청패류초·걸개류』에 수록된 「개효각종성(丐效各種聲)」의 사례가 그것이다.

 

입내를 실연하면서 구걸하는 거지의 사례는 청대 정지상(程趾祥)의 저서 『차중인어(此中人語)』 3권 「개기(丐技)」에서 따왔다.

 

광서 초년에 상해시에 거지 한 명이 있었다. 입에 갈대 줄기로 만든 피리를 물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병아리 소리, 연 날리는 소리 등을 흉내 낼 수 있었다. 거의 진짜 같아 사람들이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이외에 돼지, 개, 소, 양 등 가축 소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다.

 

기공(氣功)을 실연하면서 구걸하는 방식도 있다.

 

직접 기록된 문헌을 근거로 하면 기공(氣功)은 이천여 년 전의 사서와 의서에 이미 보인다. 기공을 운용하여 병을 예방하고 몸을 튼튼히 했다는 기록이다. 중국 전통 무술도 일찍부터 기공으로 몸을 튼튼히 하고 몸을 지키는 효능을 받아들여 하나로 융합시켰다. 역사상 유명한 무술 대가들은 기공의 도에 정통하였다.

 

강호에 기예를 팔아 걸식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기공도 구걸하는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청대 선통 말년(1911) 7월, 신해혁명이 발발한 그 해에 강녕(江寧) 하관(下關)시에 거지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한 점포에 들어가 긴 걸상을 하나 가지고 나와 계산대 위에 거꾸로 올려놓고는 주먹을 쥐고 운기를 한 다음 걸상에서 2,3촌 떨어진 곳에서 주먹을 뻗고 당기면서 걸상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걸상에 주먹이 닿지도 않으면서 4차례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 차례 실연한 후 점포 주인에게 사례금을 요구한 것은 물론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도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당시의 시장에서는 각양각색의 장사꾼이 생겨났다. 장사꾼의 큰소리로 외치며 물건을 파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끊임없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자 당시의 설창 예인이 물건을 파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그 소리를 기초로 가공하고 연마해 전문적인 기예로 발전시킨 후 당시의 경성의 ‘와사(瓦舍)’에서 공연하였다. ‘규과자(叫果子)’는 그런 입내(성대모사) 공연 중의 하나다. 주로 당시에 과일을 파는 장사꾼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방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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