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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19) 제왕(帝王)과 거지 (9)

곧바로 두 사람에게 금란전(金鑾殿)에서 배를 올리도록 하였다. 예를 마치자 황제가 말했다.

 

“너처럼 뛰어난 사람은 거지 중에는 물론이고 관리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과인이 그런 훌륭한 점을 보고서 어찌 발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 곧바로 이부에 명해 네게 청환(淸宦) 요직에 앉히려 한다. 백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고 거지들에게도 의를 중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보는 풍조를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궁불파’ 고개 숙여 절하며 말했다.

 

“만세이시여, 다른 하사품은 얼마든지 감사히 받겠사옵니다. 단지 이 일만은 명을 받기 어렵나이다. 의관은 조정의 진귀한 기물입니다. 어찌 거지에게 쉽게 하사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거지가 된 후 10년 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궁불파’가 유명한 거지임을 모르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일단 관을 쓰고 띠를 둘러 벼슬아치 사이에 서면, 사람들이 관복을 더러운 기물로 보게 되고 봉록을 먹다 남은 찌꺼기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거지 중에 현자와 어리석은 자가 섞이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정에는 귀천의 구분이 없어지게 됩니다. 만일 현인군자가 관직을 그만 두고 숨어버리기 시작하면 만세께서는 누구와 함께 천하를 다스리겠습니까? 신이 거지들을 이끌고 조정에 와서 일해야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것만큼은 신이 절대로 명을 받들 수 없나이다.”

 

황제는 그 말이 이치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알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관리가 되지 않겠다는 것은 그대의 뛰어남이오. 짐은 지금, 다른 상을 그대에게 내리려 하오. 기녀 유 씨는 이미 나와 함께 궁으로 들어왔소. 지금 귀비에 앉혔소. 일찍이 그대는 그녀와 의남매를 맺었소. 나는 그대에게 유 씨 성을 내리려하오. 다른 성씨와 연결시켜 동족으로 만들어 황제의 국척으로 삼으려 하는데, 어떤가?”

 

‘궁불파’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렵사리 대답하였다.

 

“황친 국척은 영예롭고 귀한 자리이지만 직책이 없는 관직인지라, 백성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다릅니다. 예부터 ‘황제도 짚신을 신는 가난한 친척이 있다’라고 했으니 좀 비천하다해도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신이 명을 받들겠습니다.”

 

곧바로 황제에게 감사하다 말하고 주(周) 씨와 결혼하였다. ‘궁불파’가 황친에 봉해지자 조정의 문무백관이 모두 경하하였다. 나중에 황제가 더 총애하고 배려해 더 많은 은상을 내렸다. 저택도 하사해 황성 안에 머물게 하였다. 그야말로 다 누릴 수 없는 부귀와 영화를 가지게 되었다.

 

‘궁불파’에서 과분한 부귀와 영화까지 누리게 됐지만 반대로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복을 누릴 만한 운이 없어 의외의 재앙이 닥치고 일반적이지 않은 화를 불러올까봐 사람을 만날 때면 모조리 ‘나리’라고 불렀고 자신은 ‘소인’ 이라 불렀다.

 

황친이 된 후, 자주 거지로 분장하고 밖으로 나가 민간의 이해를 남몰래 탐문하였다. 일으켜야 하는 이로운 일이나 없애야 하는 해로운 일이 있으면 입궁한 후에 황제에게 알렸다. 나중에 ‘궁불파’의 아들 3명도 높은 관직에 앉았다. 본인은 88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이것이 바로 거지 중 첫 번째 뛰어난 사람, 첫 번째 기이한 일을 기록한 『거지가 좋은 일을 행하고 황제가 중매를 서다』”는 전기적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받는 느낌은 세 가지다.

 

첫째, 작가 이어는 소설 서두에서 하류 천민이기는 하지만 거지를 창녀, 강도 위에 있는 부류로 보고 있다.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라는 전통 관념에 반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전개되는 이야기의 내용은 정 반대다. 명기 유 씨가 받은 은혜에 감사해 ‘궁불파’를 구한 인연으로 마침내 거지는 부귀영화를 누린다. 유 씨가 입궁해 귀비가 되면서 황친이 되었다. 결국 ‘가난은 비웃지만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는 결론이요 창녀가 거지보다는 지위가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전히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기 모순적 관념이다.

 

관념과 ‘증과(證果)’의 불일치는 중국 전통문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순적 구성임을 쉬이 알 수 있다. 이러한 창녀와 거지의 지위가 거꾸로 된 현상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궁불파’는 원래 부유하였다. 자신의 재물을 내놓아 의로운 일을 하다가 거지로 전락하였다. 사람이 궁하다고 뜻까지 궁할까, 아무리 가난해도 포부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쁜 짓을 하려하지 않고 명기 집에서 기식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결국에는 정덕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런 전통 관념 중의 ‘정통(正統)’ 논리는 당시 사람들은 벗어날 수 없었다. 청대의 이어조차도 벗어날 수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유풍은 여전히 존재한다. ‘궁불파’의 몸에 기인 기사로 덧씌웠지만 당시 사회의 병폐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듯하다.

 

협골(俠骨)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고 ‘충군보국’으로 ‘정과’를 맺으면서 전통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위로는 고관, 귀인, 선비에서부터 아래로 거지와 같은 천민까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한 역사의 비극은 끊임없이 연출되었다.

 

셋째, 이어의 소설은 전편에 걸쳐 거지를 동정하고 애호하며 업신여기지 않았다. 거지 중에도 장룡와호(藏龍臥虎), 즉 숨은 인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진 후 철저하게 타락하지 않고 새로이 다시 뜻을 이룰 수 있기에 그렇다. 당시 거지의 의로운 면만 서술하고 있다. 명나라 때의 거지들은 이미 변질돼 있었고 각양각색의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는 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기적인 이야기 전체를 통관하면, 구전일 뿐이며 믿을 만한 역사적 사실이 아닐지라도 역사문화 배경에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황제가 민간에서 암행하고 기녀의 집에서 기숙하는 일은 명나라 정독 황제 이전에 이미 송나라 때에도 전례가 있지 않던가!

 

황제가 금란전 앞에서 친히 백성을 심문하고 거지에게 상을 내린다는 이야기는 기이하고 황당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명 왕조 개국 황제가 거지 항렬이 아니던가!

 

청나라에 이르러서도 강소와 절강 접경지역에 매년 겨울이 되면 봉양(鳳陽)의 유랑민, 거지들이 도시에 나가 걸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걸식하는 이유는, 명 태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주원장이 호주(濠州)지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에 새겼다. 봉양 지역은 그의 발상지이기에 재난과 전란이 발생한 이후에 인구가 줄어들고 토지가 황폐해지자, 강남의 부유한 백성 14만을 강제로 이주시켜 그 지역을 보강하였다. 사사로이 도망치면 중벌로 다스렸다.

 

그렇게 이주한 사람들 중에서 매해마다 귀성해 성묘하러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거지로 분장해 몰래 고향으로 돌아갔다. 겨울에 떠나 봄이면 돌아가는 것이 습속이 되었다. 그렇게 구걸하면서 강화를 돌아다니는 봉양 사람들은 역사 현상이 되었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사실일 수 있다. 봉양 지역은 예부터 가난하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원장이 자신이 젊었을 때 유랑하며 걸식했던 지역을 감사하는 마음에 가슴에 새겼다는 것도 인정상 맞다. 더군다나 거지로 전락한 고통의 경험은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겨져있어 잊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주원장은 자신의 그런 경험을 꺼리거나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한 역사배경의 조건과 문화 환경에서 『거지가 좋은 일을 행하고 황제가 중매인이 되다』와 같은 민간 전설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다시 말해 명나라는 정덕, 가정 연간에 이르면 나날이 몰락하기 시작해 쇄미해 졌다. 사회를 지탱하는 강상이 이미 문란해 졌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황제와 민간의 창기, 거지가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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