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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벨 (9)

영화 바벨의 이냐리투 감독은 미국·모로코·멕시코, 그리고 일본 4개 나라의 모습을 통해 감독이 생각하는 세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세계화 현상은 진행 단계를 지나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섰다곤 하지만, 이냐리투 감독이 보여주는 ‘세계’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멕시코 아줌마’ 아멜리아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운전해 멕시코 여행을 떠난다. 국경을 넘어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멕시코 북부의 풍경은 미국 남부와 다를 바 없다. 자연풍광이 다를 바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마을과 거리의 풍경조차 미국 LA 변두리 어디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았다. 

 

도로 표지판, 건물의 모습, 거리의 간판,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그리고 사람들의 ‘먹성’ 모두 그렇다. 멕시코 사람들도 미국의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

 

세계화의 다른 말이 ‘코카콜라화’ ‘맥도날드화’라는 말이 실감난다. 멕시코에도 전통음식과 음료가 분명 있겠지만 적어도 거리에서는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세계화의 또 다른 말이 ‘미국화’라면 적어도 멕시코는 완전한 미국화가 이뤄진 듯하다. 

 

아멜리아를 따라가면서 보이는 멕시코 어디에도 ‘멕시코적’인 것은 남아있지 않다. 하다못해 멕시코 결혼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미국 것이고, 그들이 추는 춤도 미국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장에 틀어놓은 TV에서도 미국이 발신하는 CNN 뉴스가 영어로 흘러나온다. 멕시코 하객들 모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비극을 불러오는 사냥총의 출처를 따라가다 린코가 사는 일본의 도쿄 모습이 비친다. 멕시코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린코가 친구들과 즐겨가는 카페에서는 모두 햄버거를 입에 물고 미국 음료를 마시고 미국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곳에서도 CNN 앵커가 열심히 떠들고 있다. 린코는 미국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미국과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꽤 ‘잘사는’ 집인 듯한 린코의 아파트 인테리어 어느 한 곳에도 ‘일본적’인 모습은 없다. 

 

통유리 창밖으로 보이는 도쿄의 야경 역시 미국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멕시코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숨막히는 빌딩 숲 사이에서 질식할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일본 신사神社와 그래도 일본글로 된 간판, 그리고 학생들이 입고 있는 ‘전통적’인 일본교복 정도다. 그나마 전통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모로코의 사정은 세계화와 거리가 멀다. 모로코 최대 도시 카사블랑카에는 어김없이 세계화가 밀려들었겠지만, 적어도 이냐리투 감독이 보여주는 모로코 도시 외곽지역에선 세계화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산간에서 양 치는 가족은 여전히 고대 카르타고 사람들 같은 복장을 하고 움집에서 살고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 어느 곳에도 서구의 흔적은 없다. 관광버스 투어를 하는 리차드 부부와 미국 관광객들이 잠시 내려 쉬는 식당에선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인 듯한 음료가 나오긴 하는데, 리차드 부부는 한 모금 마시고 땡감 씹은 표정을 짓는다. 콜라는 당연히 얼음 ‘동동’ 띄워야 제맛인데 모로코 콜라는 미지근하다. 

 

모로코 사람들은 찬 음료를 마시지 않으니 아마도 ‘미지근한 콜라’를 제공한 모양이다. 리차드의 아내가 난데없는 총격을 당하고 허겁지겁 버스를 몰아 찾아간 시골마을 역시 거의 ‘민속촌’의 모습이다.

 

모두들 ‘고대’ 복장을 하고 있다. 서구식 복장을 한 모로코 사람은 관광객들을 끌고온 관광 가이드뿐이다. 병원 대신 주술사처럼 생겨먹은 ‘할멈’이 있을 뿐인데, 그 할멈이 마을의 ‘종합병원’이다. 당연히 세계어인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아 리차드의 복장을 터트린다. 참으로 여행 갈 만한 곳이 아닌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 일본의 사업가, 그리고 아이를 잃고 상심한 미국인 부부 모두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모로코 변방을 찾는다.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해 보인다. 세계화는 곧 도시화이고 산업화이며 자본주의화다. 또한 메마르고 비정하고 타산적인 세상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아내와 아이를 잃은 이들이 마음의 위안을 찾아 떠난 곳이 세계화에서 소외된 모로코의 변방이다.

 

세계화의 역설이다. 모두들 세계화를 찬미하고 세계화를 발전과 등치(等値)시키며 세계화를 향해 내달리고 있지만 세계화의 원심력이 강해질수록 세계화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세계가 미국을 닮아가려 하고 닮아가는 ‘미국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가 서울을 닮아가려 하고 닮아가고 있는 현상은 ‘서울화’라고 할 만하다.

 

 

우리의 웬만한 지방도시는 서울 변두리처럼 보일 뿐 지방 특유의 색깔을 잃은 지 오래다. 멕시코 도시가 LA 변두리처럼 보이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딱히 그리고 굳이 가볼 만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서울 사람들’ 역시 도쿄의 사업가와 샌디에이고의 리차드가 힐링을 위해 모로코 외진 곳을 찾았듯 서울과 다른 곳을 가고 싶어 인터넷에서 서울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을 찾아 몰려간다. 서울에서 마시는 얼음 ‘동동’ 띄운 콜라보다 차라리 리차드 부부처럼 모로코의 미지근한 콜라를 마셔보고 싶어서인 듯하다. 

 

걱정되는 건 전 세계에서 상처를 입은 수많은 사람이 모로코 시골로 몰려들기 시작하면 아마도 머지않아 그곳에도 맥도날드 점포와 ‘시원한’ 코카콜라 깡통이 떨어지는 자판기가 즐비해질 것이다.

 

그럼 리차드 부부가 맛본 ‘미지근한 콜라’는 더 이상 맛볼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사람들’에게 마지막 남아있는 힐링의 장소들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몰려들면 미구에 사라질 듯하다. 표범은 아름다운 가죽 때문에 멸종을 맞이하듯 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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