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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바벨 (1)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이 빚어낸 걸작 ‘바벨(2007년)’은 도무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모로코와 미국, 멕시코, 그리고 일본이라는 동떨어진 4개 나라에서 벌어지는 동떨어진 사건들을 보여준다.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이 4개 나라의 동떨어진 인물들을 엮는 건 모로코 어린아이가 호기심에 쏴본 총알 한방이다.

 

 

한 일본 사업가가 모로코로 사냥 여행을 간다. 이 젊은 일본 사업가는 모로코의 현지 가이드에게 사냥총을 팁으로 선물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사냥총을 선물받은 모로코 가이드는 양들을 공격하는 자칼을 쫓아내기 위해 사냥총이 필요했던 양을 치는 친구에게 그 총을 판다. 사냥총을 산 양치기는 아들에게 그 총을 맡기고 양들을 잘 지키라고 당부한다. 

 

이 소년은 총을 쏴보고 싶지만 자칼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좀이 쑤신 소년은 자칼 대신 멀리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조준하고 발사한다. 물론 나쁜 뜻은 없다. 그 총알은 관광버스를 타고 가던 미국인 젊은 부부(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아내의 어깨에 박힌다. 

 

여행길에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부부는 급히 자신들의 두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는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예정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며칠만 더 아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한다. 이 멕시코 도우미 아주머니는 부부의 사정은 딱하지만 주말에 멕시코에서 올리는 아들의 결혼식에 빠질 수는 없다. 결국 부부의 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멕시코로 향한다. 

 

아들의 결혼식 피로연까지 잘 지내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려던 이 아주머니는 미국 국경수비대의 검문에 걸리고 부부의 아이들까지 잃어버린다.  그 무렵, 총을 쏜 모로코 소년의 가족은 집에 들이닥친 모로코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소년의 형이 사살당하는 참변을 겪는다.  

 

미국 CIA는 사건을 더 키운다. 모로코 양치기 소년의 ‘총질’을 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모로코 이슬람교도의 ‘테러사건’으로 간주한 미국 CIA는 ‘천조국’다운 어마어마한 국제수사에 돌입하고, 그 총을 모로코 사냥 가이드에게 선물한 일본 사업가를 찾아내 일본까지 들이닥친다. 일본 사업가의 농아 딸은 집에 찾아온 젊은 일본 형사와 ‘야릇한’ 일에 빠져든다.

 

 

이렇게 일본인 사업가가 사냥여행을 마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사냥 가이드에게 선물한 사냥총 하나가 일으키는 파문은 모로코에서 미국, 멕시코, 그리고 일본까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면서 아무 연결고리 없는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다.

 

일본에 꽤 흥미로운 속담이 하나 있다. “봄바람이 불면 ‘통(뒤주)’ 장사가 돈을 번다.” 봄바람과 통장사 사이의 연결고리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속담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봄바람이란 요즘 말로 하면 봄에 대륙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 바람이다. 심한 황사 바람이 불면 안질 환자가 많이 생긴다. 요즘이야 안질 정도는 심해봐야 항생제 치료하면 간단하지만, 옛날에는 안질에 걸리면 시력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도 그렇지만 과거부터 맹인들은 그나마 안마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맹인 안마사들은 밤에 주택가를 조그만 북을 두들기고 다녔다. 맹인 안마사들이 두들기고 다니는 조그만 북 가죽은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황사 바람이 심하게 불면 맹인이 많이 생기고, 늘어나는 맹인 안마사만큼 고양이들이 죽어나간다. 고양이가 줄면 쥐가 늘어나고 극성을 피운다. 늘어난 쥐들이 통(뒤주)을 갉아댄다. 사람들이 뒤주를 새로 장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봄바람이 불면 통장사가 돈을 번다. 

 

그러나 인간에게 허용된 예지력으로 예년보다 심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궁극적으로 ‘통장사’가 떼돈을 벌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 자신이 어떤 ‘연쇄반응’의 고리 속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1776년 7월 4일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그로부터 미국과 영국 사이에 치열한 독립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영국은 금쪽같은 미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만다. 미국이 독립선언 할 당시 미국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의 왕은 조지(George) 3세였다. 

 

 

매일매일 국사國事를 꼼꼼히 챙기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일기로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한 왕이었다. 조지 3세가 남긴 1776년 7월 4일자 일기도 남아있다. 그날 조지 3세의 일기장에는 단 한줄만 적혀 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지 3세나 영화 ‘바벨’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앞으로 나의 운명, 혹은 나라의 운명을 통째로 바꿔버릴 ‘어떤 일’이 지금 어디에선가 시작되고 있어도 그것을 까맣게 모른 채 살아간다. 조지 3세는 열흘 후에야 미국이 독립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경악한다. 

 

우리도 지금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을 일들을 열흘 후, 혹은 1년 후에 알아차리고 경악할지 모른다. 안타깝지만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갔다고 오늘이 정말 ‘무사히’ 지나갔다고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시작된 엉뚱한 일이 내일의 내 운명을 뒤흔들어버릴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딱한 일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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