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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테넷 (3)

영화 도입부 우크라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작전을 펼치는 CIA 요원들은 혼란스럽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피아我간의 식별을 위해 암구호를 사용한다. 한쪽이 ‘We live in a twilight world’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And there are no friends at dusk’라고 대답해야 ‘같은 편’임을 인증받는다. 어쩌면 이 암구호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영화의 소재와 영화의 결말까지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 테넷 속 CIA 요원들이 피아 식별을 위해 사용하는 암구호를 다시 보자. 영화 자막에는 이 암구호가 ‘We live in a twilight world(세상에 어둠이 내린다)’ ‘And there are no friends at dusk(어두워지면 친구가 없다)’고 번역돼 있다. ‘개구리’ 하면 ‘올빼미’로 대답하는 간단한 암구호에 비하면 꽤나 길기도 하려니와 상당히 시적詩的이기까지 하다. 머리 나쁜 요원은 외우기도 힘들 듯하다. 개구리·올빼미처럼 아무 의미 없는 단순한 암구호라면 대강 해석해도 별문제 없겠다. 

 

그러나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놀란 감독은 이 암구호에 상당한 의미를 담은 것 같은데, 영화 자막으로는 놀란 감독의 의도를 전하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1인치의 자막을 뛰어넘으면 수많은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번역 자막으로 원작자가 의도한 의미를 100% 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다. 

 

번역을 통해서 원작의 생생한 감동을 온전히 느끼기를 바란다면 아마도 과욕일 것이다. 미국 관객들이 자막 처리된 외국어 영화 관람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CIA 요원들이 주고받는 암구호 속에 나오는 ‘twilight’는 영화자막에 번역된 ‘어둠’이라기보다는 ‘어스름’쯤이 맞겠다.

 

하루 중에 twilight의 시간대는 새벽에 날이 완전히 밝기 전과 저녁에 해가 완전히 지기 전 2번 있다. 새벽도 ‘어스름’하고 저녁도 ‘어스름’하다. 잠깐 졸다가 깨면 그 ‘어스름’이 새벽의 어스름인지 저녁의 어스름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똑같은 어스름이다. 시계도 없고 주변에 사람들도 없으면 지금부터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을지 아니면 지금부터 더 어두워질지 가늠이 안 되는 시간대가 twilight이다. 반면에 ‘dusk’는 그것이 새벽의 어스름이 아니라 저녁의 어스름이라는 것이 확실해진 어둠이다.

 

 

‘테넷’은 인간의 기술로 시간을 앞으로도 흐르게 하고 뒤로도 흐르게 하는 ‘인버전(inversion)’을 다룬 영화다. ‘인버전 기술’이 적용된 총알은 과녁에서 총구 속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CIA 요원들도 지금 시간이 앞으로 흐르고 있는지 뒤로 거꾸로 흐르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야말로 어스름한 twilight(박명)의 상태에서 점점 밝아질지 아니면 점점 어두워질지 알 수 없다. 새벽의 어스름이라도 시간이 제대로 흐르고 있다면 점점 밝아질 것이지만 시간이 ‘인버전’돼 거꾸로 흐르고 있다면 점점 어두워질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라도 점점 어두워질 수도 있고 점점 밝아질 수도 있다.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어스름(twilight) 속에 살고 있다’와 짝을 이루는 암구호는 ‘날이 저물면(dusk) 친구가 없다’이다. ‘날이 저물었다’는 것은 해뜰 녘의 어스름인지 해질 녘의 어스름인지 명확해진 상태다. 완전히 어두운 저녁(dusk)이 됐다면 앞선 그 어스름은 해질 녘의 어스름(twilight)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불확실성과 모호성이 걷히고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친구나 동지도 필요 없다.

 

주인공과 또 다른 CIA 요원은 미래로 뛰어들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핵폭발을 막아낸다. 아마도 위험천만한 미래의 ‘인버전 기술’까지 폐기처분해버린 듯하다.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생사를 함께했던 주인공과 닐은 임무를 완수하고 모든 것이 ‘확실’해진 순간 오히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각자의 길을 간다. ‘불확실성’이 사라진 순간 함께 일했던 친구들은 적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또 다른 ‘불확실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불확실성은 반복되고 지속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스름한 시간(twilight)’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이 점점 밝아올지 점점 어두워질지 알 수 없다.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친구와 동지를 만들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그 목표가 이뤄지고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했던 친구와 동지들은 제각각 또 다른 길을 가고 혹은 적이 되기도 한다. 불확실성이 없다면 굳이 많은 친구나 동지들이 필요하지 않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 진영과 캠프마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모양이다. 그 인재들은 ‘테넷’의 주인공과 닐처럼 불확실한 미래의 ‘어스름’ 속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운명을 함께할 친구들이고 동지들의 모습을 보인다. 

 

이제 선거가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어스름’이 확실한 ‘저녁(dusk)’이 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시간이 되면 그들 또한 영화 속 주인공과 닐처럼 서로 불신하고 적대적이 되거나 혹은 제 갈 길을 찾아갈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든 앞으로 돌리든 그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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