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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테넷 (2)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인류를 통째로 파멸시키려는 사토르에 맞서 인류의 종말을 막아야 한다.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대단히 통이 커서 지구 종말쯤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아예 우주까지 통째로 날려버리려 한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어마어마한 악당에 맞서야 하는 영웅들도 더 바빠지고 부담도 커져 버렸다.

 

 

영화 ‘테넷’에서 인류 몰살을 꿈꾸는 악당 ‘사토르’가 워낙 천재적이고 그 조직도 방대하다 보니 악당을 막아야 하는 영웅과 조직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누가 동지이고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언제 어디서 악당에게 노출되고 덫에 걸릴지 모른다.

 

그들은 서로가 동지임을 확인하는 약속된 암호를 주고받는다. 그래서인지 인류 구원의 엄청난 사명을 짊어진 주인공은 이름조차 없다. 이름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름조차 밝히지 않는다. 

 

소련의 음모로부터 자본주의 세계를 지키는 첨병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매번 영화 도입부 어느 장면에서 ‘내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My name is Bond, James Bond)’라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인류를 구원할 ‘테넷’의 요원은 영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이름이 없다.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은 이름이 있는데 정작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007처럼 마티니 잔을 들고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물론, 등장인물 어느 누구도 그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첫머리에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 역할을 한 배우의 이름이 John David Washington이라고 나올 뿐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그저 ‘주인공’인 참으로 독특한 영화이다.

 

 

이 이름조차 없는 주인공은 우크라이나 오페라하우스에서 테러리스트에게 체포됐을 때 자살용 캡슐까지 빼앗기고 ‘조직’의 비밀을 고문에 못 이겨 발설하게 될까 두려워 죽은 동료의 자살용 캡슐을 훔쳐 먹고 자살하는 결기를 보인 끝에 인류의 멸망을 막을 ‘요원’으로 선발된다.

 

이 주인공은 이후 우크라이나, 인도, 베트남, 노르웨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타임 캡슐’에 들어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인류의 종말을 고할 수도 있는 핵폭탄의 폭발을 막아낸다. 놀란 감독은 이 이름 없는 ‘주인공’이 그토록 천신만고 끝에 미래 속에 뛰어들어 핵폭발을 막아냈기에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별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헌신 덕분에 오늘 평온하게 살고 있을 사람들 누구도 그를 알지는 못한다. 모든 역사는 ‘일어난 일’만 기록하고 거기에 관심을 집중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기록하지도 않고 연구하지도 않는다. 역사는 ‘일어난 일들’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을 일어나지 않도록 한 ‘영웅’들의 이름은 묻히고 기록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는 한순간에 한반도를 초토화할 만한 대략 24기의 위험천만한 원자력발전소가 있지만, 미국 스리마일이나 소련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처럼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 ‘평온’을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어쩌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평온’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느 ‘이름 없는’ 사람들의 헌신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독립을 쟁취한 영웅들의 이름, 한국전쟁 남침을 막아낸 전쟁영웅들, 산업화와 민주화의 많은 영웅의 이름을 기록하고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는 ‘일어난 일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든 또다른 영웅들의 이름은 기록하지도 않고 기억되지도 않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혹시 원자력발전소 몇개쯤 진즉에 폭발했을지 모르고, 혹시 또다른 전쟁이 터졌을지도 모르고, 또다른 외환위기 사태를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었을’ 그들은 영화 ‘테넷’에서 핵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준 주인공처럼 이름이 없고 아무도 모른다. 혹시 그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이름 없는 주인공들(Protagonist)’이 아닐까?

 

위인전에 오르고, 인명사전에 등재된 수많은 이름이 있다. 오늘도 여러 매체에 오르내리는 수많은 ‘셀럽’의 이름들도 있다. 과연 이들이, 혹은 이들만이 우리 역사의 주인공일까.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진짜 주인공’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름없는 진짜 주인공들’이 우리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을 듯하다. 이름 없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알고 싶고,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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