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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나리 (3)

영화 ‘미나리’는 미국에 이민 온 한 한국인 가정을 보여주지만 이름만 ‘한국인 가정’일 뿐, 그들이 보여주는 가족관계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은 한국적이라기보다는 ‘미국적’이고 ‘세계적’이다.

 

 

‘미나리’가 미국과 세계 각국의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가정의 모습이 ‘미국적’이거나 ‘세계적’이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면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라는 ‘국뽕’에 불을 지피는 엄청난 ‘버프’에도 국내 흥행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한국 관객들이 보기에 ‘미나리’ 가족의 모습이 왠지 ‘한국적’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듣게 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호기로움에는 다분히 ‘국뽕’이 첨가돼 있어서 아무 데나 적용되지 않는다. ‘미나리’에 국한해 보자면 ‘가장 비非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었던 셈이다. 외국 관객들이 영화 ‘미나리’를 접하고 한국의 문화와 가족관계에 대해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게 됐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가정은 심하게 말하면 ‘콩가루 집안’에 가깝다.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이 젊은 부부는 매번 부딪치고 싸움질을 한다. 영화 속에서 이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은 단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적’인 갈등이라면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와 그에 반발하는 여권(女權)일 텐데, ‘미나리’에서는 가부장적 권위라는 게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미국적이고 서구적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남매에게서도 부모를 향한 최소한의 ‘한국적 리스펙트’조차 보이지 않는다. ‘리스펙트’가 없어서인지 부모가 당장 사생결단이라도 낼 듯이 싸워도 긴장하거나 패닉 상태에 빠지지 않고 심드렁하다.

 

2명에 1명꼴로 이혼가정에서 성장하는 미국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산다. 당장이라도 이혼할 듯 마주 보고 고함을 지르는 부모를 향해 계속 종이비행기에 ‘Don’t Fight’라는 메시지를 적어 날린다. 그렇게 허구한 날 싸울 거면 차라리 이혼하라는 듯 보이기도 한다. ‘리스펙트’는커녕 조롱에 가깝다.

 

 

병아리 감별사로 맞벌이해야 하는 부부의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한국에서 초빙된 ‘문제적’ 외할머니 순자 역시 전통적인 한국 할머니의 모습은 아니다. 순자는 삶에 지쳐 신경이 곤두선 부부를 다독일 생각도 없고, 딸네 부부의 원만치 못한 관계에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애를 쓰지 않으며 그렇다고 딸과 편먹고 사위를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대단히 ‘쿨’하다. 

 

어찌 보면 입주 도우미 할머니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심장이 부실한 외손자 데이비드를 한국 할머니다운 정성으로 돌보는 기색도 없다. 데이비드에게 화투를 가르쳐 화투 삼매경에 빠진다. 손자 교육을 위해 본인의 ‘취미생활’을 희생할 생각도 없다. 5살이 되도록 가끔 오줌을 못 가리는 손자에게 ‘고장 난 고추’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놀려먹는 ‘원초적 본능’도 유보하지 않는다.

 

오줌싸개 손자를 놀려먹던 순자에게 어느 날 뇌졸중이 찾아오고 자신이 이불에 오줌을 싸는 ‘오줌싸개’가 된다. 함부로 남 흉볼 일이 아니다.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나리’의 한국가족이 콩가루 집안으로 느껴지고 못내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필요한 역할 분담과 위계질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벌써 100년 전 토를레이프 셀데루프 에베(Thorlief Schjelderup-Ebbe)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노르웨이의 한 동물학자는 닭 무리를 관찰한 끝에 닭 무리가 모이를 쪼아먹는 데에도 엄격한 질서와 순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pecking order’라 명명하고 이론화했다.

 

이 이론이 인간 무리에게 적용될 때는 단순히 먹이만이 아니라 욕망과 니즈(needs)까지도 포함된다. 우리는 사회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장유유서(長幼有序), 남존여비(男尊女卑) 등등 ‘모이 쪼아 먹는 순서(pecking order)’를 기획하고 참으로 오랜 세월 유지해왔다. 모든 재화가 부족했던 시절 욕망과 니즈의 ‘서열화’는 공동체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장치였다.

 

 

미국 아칸소 시골구석에서 이민자의 삶을 사는 ‘미나리’ 구성원들에게는 이 pecking order가 먹히지 않는다. ‘늙은 순자’의 복지와 필요, 욕망이 우선시되지도 않고, 남자 가장이 품은 농장의 꿈을 위해 아내의 꿈이 유보되지도 않는다. 자식을 위해 부모의 꿈을 유보하거나 포기하지도 않는다.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창당 선언문’에서 한 시대의 질서의 붕괴를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강고했던 모든 것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라고 참으로 멋지게 표현한 이래, 한 시대가 저무는 듯 보일 때마다 이 표현이 등장하곤 한다. ‘미나리’ 구성원들에게는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강고했던 pecking order가 증발해 버리고 없다.

 

우리나라 보수야당의 대표로 36살의 ‘젊은이’가 선출되고, 최고위원에 남성의원들보다 많은 수의 여성의원들이 선출된 모양이다. 언론에서 앞다퉈 이것을 ‘이변’이라 규정하는 모양인데 이미 ‘이변’은 아닌 듯하다.

 

장유유서나 남존여비라는 우리 사회의 ‘강고했던 pecking order’가 녹아 수증기처럼 하늘로 증발해 사라지기 시작한 지 꽤 되지 않았는가. 항상 사라진 것들은 분명한데 그 빈자리를 무엇이 메울지는 한동안 어지러울 게다. 유장유서(幼長有序)와 여존남비(女尊男卑)쯤이 될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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