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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4)

솔직함이 팩폭이나 뼈를 때린다는 말로 용인되는 시대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하물며 논객이든 상대의 허물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팩폭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내지르는 ‘솔직함’은 방종이다. 이것을 즐기는 우리 사회가 참으로 가학적加虐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상대가 누가 됐든 상대방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느낌 그대로 퍼부어대는 유달(잭 니콜슨 분)은 어찌 보면 대단히 솔직한 인물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속으로는 동성애를 혐오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더라도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피부색에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하는 게 적어도 교양 있는 사회인으로서의 덕목이 된 시대다. 

 

하지만 유달은 자신의 소설 ‘왕팬’이기도 한 출판사 여직원에게도 거침없이 ‘여혐’을 드러낸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게이 화가에게는 대놓고 당장 밟아 죽여야 할 불결한 벌레 대하듯 한다. 카리브해 국가쯤에서 온 듯한 아파트 환경미화원 여자에게도 솔직하게 ‘너희 나라로 꺼져버려라’고 소리친다. 참으로 솔직하다. 솔직함이 이쯤 되면 독설이 아니라 언어폭력에 가깝다.

 

유달에게 당한 이들 모두 자신이 여자라는 것, 게이라는 것, 유색인종이라는 것 모두가 사실(fact)이니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지만 환장할 일이다. 영화 속에서 유달에게 언어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참으로 성격도 무던한 사람들인 듯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모두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하거나 유명 작가인 유달의 엽기적인 만행을 인터넷에 올려 문단에서 매장시켰을 것이다. 아니면 청와대에 ‘유달을 처벌해 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렸을 일이다.

 

‘솔직함’이라는 것은 때론 폭력에 가깝고 거의 범죄적인 행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알게 모르게 솔직함이라는 것과 ‘정직함’이라는 것이 뒤섞이면서 혼용된다. 어떤 경우에는 솔직함이 현대적이고 ‘쿨’하고 ‘시크’한 것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솔직(率直)’과 ‘정직(正直)’의 사전적 의미는 별 차이가 없다. 한자를 뜯어보아도 그 차이는 오리무중이다. 솔직함이든 정직함이든 ‘진심(眞心)’이긴 마찬가지다. 아마 그래서 혼란스러워지는 듯하다. 오히려 영어로 바꾸어 놓으면 솔직과 정직의 그 의미상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솔직하다는 것은 ‘frank’, 정직은 ‘honest’로 번역된다. frank의 어원은 ‘자유(free)’에서 유래한다. 말 그대로 ‘자유롭게’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을 내지르는 것이다. 

 

내 입 가지고 내가 말하는데 누가 감히 나의 말할 자유를 막겠는가. 하지만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내팽개친 자유는 자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방종’이다. 유달이 여성과 게이, 유색인종에 퍼붓는 솔직한 말들은 그래서 자유분방한 언사가 아니라 방종의 결과물이다. 

 

그에 비해서 honest의 어원은 ‘명예(honor)’다. 또한 ‘미덕(virtue)’과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정직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명예로운 행위이며 인간이 갖춰야 할 중요한 미덕 중 하나다. 솔직함과 정직함의 중요한 차이는 또 있다. 솔직함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부족함을 들춰내는 말들이고, 정직함은 반대로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정직이란 고백이나 고해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함(honest)이란 명예로운 것이며 인간의 미덕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솔직하기 짝이 없는 독설가 유달이 웨이트리스 헬렌에게 머뭇거리며 “당신이 좋아할 만한 남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자기 자신이 너무 못나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평생 솔직하게 남들을 ‘까대기’만 했던 유달이 아마도 난생처음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솔직해지는 것은 쉽고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직해지는 것은 어렵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명예로운 것이며 미덕인 것이다.

 

 

요즘 ‘팩폭’이니 ‘뼈를 때린다’는 말들이 유행이다.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이 나와 상대의 부족함을 팩폭하고 상대의 뼈를 때리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 타인의 부족함을 아무 포장 없이 솔직하게 말할 때 그것이 팩폭이 되고 그 사람은 ‘뼈를 맞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것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가학적(加虐的)이다.

 

어디 연예방송뿐이겠는가.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지도자급 정치인들과 소위 ‘논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상대의 허물과 부족함에 대해 솔직하게 느끼는 대로 팩폭하고 더욱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해 정통으로 상대의 뼈를 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모두 말할 ‘자유’를 빙자한 말의 방종이다. 반면에 자신의 무지나 허물, 부족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달처럼 ‘당신이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자신의 부족함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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