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1990년)’은 케빈 코스트너가 제작과 감독, 그리고 주연을 동시에 맡아 말 그대로 ‘케비니 하고 싶은 거 다 한’ 영화다. 그해 아카데미상 12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케빈 코스트너 본인이 받은 감독상과 주연상까지 포함해 무려 7개 부문을 휩쓸었다. 통상 ‘명화’는 흥행 성적이 신통치 못한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대박을 터뜨렸다.
영화가 펼쳐 보이는 사우스 다코타의 탁 트인 광활한 평원이 가슴을 웅장하게 만든다. 사우스 다코타의 광활한 평원을 수천마리의 버펄로 떼가 지축을 울리며 질주하는 영상은 가히 압도적이다. 이곳은 수우(Sioux)족 인디언들의 땅이다. 영화는 이미 뇌사판정을 받은 사어(死語)에 가까운 수우족 인디언이 쓰던 라코타(Lakota)어를 재현하는 진지함을 보인다. 진지하다 보니 상영시간이 3시간 남짓에 달한다.
호흡이 짧은 요즘 관객들에게는 조금은 불친절할 수도 있겠는데 늘어진다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영화가 미국이 잊고 싶어 하는 2개의 전쟁을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과 인디언 전쟁이 그것이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은 사실상 2개의 전선에서 2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영화는 미국 남북전쟁이 절정에 달하던 1863년 북군과 남군이 테네시주의 한 전장에서 지루하게 대치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양쪽 모두 아무 의미 없이 사상자만 늘어가는데 어느 쪽도 물러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느 쪽도 상대를 밀어버릴 힘도 열정도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영국의 폭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와 신세계를 건설했던 동지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 지금의 상황이 어이없을 뿐이다. 한국전쟁만큼이나 답답한 전쟁이다.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에서 실로 참담했던 전쟁이다. 4년간 크고 작은 200여 차례의 전투에서 60만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 전사자 숫자는 미국이 참전한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미군 총 전사자 수를 웃도는 끔찍한 기록이다.
북군의 존 던바 중위는 전투에서 다리에 심한 부상을 당한다. 군의관은 무조건 다리를 절단하려든다. 던바 중위는 다리 절단 대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남부군과 북부군이 대치한 전선에서 홀로 말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남부군 진지로 돌진해 전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남부군의 집중사격은 그를 피해만 다니고 던바 중위는 ‘전사’에 실패하고 만다. 남부군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던바 중위의 ‘용맹’에 울컥한 북군이 돌진해 북군은 얼떨결에 대승을 거둔다. 울컥해서 달려드는 사람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사령관은 자신의 주치의에게 전쟁 영웅으로 거듭난 던바 중위에게 ‘최고의 의료’를 제공할 것을 명령한다. 잘려나갈 뻔했던 던바 중위의 다리는 그렇게 살아남는다.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의 믿음이 저 멀리 미국 테네시주에서도 현실이 된다. 다른 병사들처럼 의미 없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던바 중위는 사령관에게 동부전선을 떠나 ‘평화로운’ 서부 부대에 배속해 줄 것을 특청한다. 사령관은 전쟁 영웅의 청을 받아들이고 그를 미시시피 서부 지역으로 발령한다.
그러나 그곳은 던바가 꿈꾸었던 ‘평화로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미국 북군은 인디언(수우족)과 치열한 땅따먹기 전쟁(1862년 다코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동부에서는 남북이 갈려 60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와중에 서부에서는 60만명의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있었던 거다. 사령관이 ‘전쟁 영웅’ 던바 중위를 그곳으로 보낸 이유는 던바 중위에게 안식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웅적으로 인디언을 토벌하라는 의미였던 셈이다.
던바 중위의 전입신고를 받는 부대의 책임자인 팜브로 소령은 전쟁 영웅을 조롱하고 비아냥댄다. 팜브로 소령은 미국인끼리 60만명을 서로 죽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60만명의 인디언들을 죽이는 시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군인이다. 그는 던바 중위를 떠나보내고 느닷없이 ‘영국왕 만세’를 외치고 권총자살한다.
팜브로 소령은 당시 많은 미국인의 정서를 대변한다. 당시 미국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서 겪는 끔찍한 혼란과 참상을 보면서 차라리 ‘평화롭던’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한다. 독립 이후 벌어진 끔찍한 동족상잔, 독재와 가난, 분단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차라리 일제 때가 나았다’는 인식이 이상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친일파’를 키워온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남북전쟁과 인디언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어느날 미국 서부요새에서 느닷없이 ‘영국왕 만세’를 외치고 권총자살하는 어느 미군 장교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 보기에 착잡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