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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8)

 

전성기가 훌쩍 지난 릭 달튼은 끝내 퇴물의 마지막 행로인 이탈리아 ‘스파게티 서부극’에 출연한다. 그곳에서 지금 할리우드에선 받기 힘든 돈을 받고 결혼도 한다. 영화를 찍은 그는 친구이자 집사인 ‘스턴트맨’ 클리프를 해고한다. 그 무렵, 불행인지 행운인지 히피족들이 쳐들어온다.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한때 잘나갔지만 어느새 배우로서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오르막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청룡열차처럼 정신없다.

 

달튼은 할리우드의 한 레스토랑에서 감독이자 ‘배우 중개업자’인 마빈 슈워츠를 만난다. 정리해고를 예감한 직장인이 헤드헌터를 만나 탈출구를 모색하는 장면이다. 혹시라도 우연치 않게 자신의 옆집으로 이사 온 스타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에라도 다리를 놓아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헤드헌터 슈워츠는 그런 동아줄은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달튼에게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스파케티 서부극’에 출연하면 어떠냐고 제안한다. ‘스파게티 서부극’은 미국 퇴물 배우들의 종착역쯤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다. 슈워츠는 물론 모양새는 좀 빠지겠지만 ‘돈은 된다’고 설득한다.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에게 중국 가서 중소기업에 재취업하라는 꼴이다. 

 

헤드헌터나 결혼정보회사의 ‘견적’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달튼은 할리우드가 바라보는 자신의 ‘꼬라지’를 실감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헤드헌터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온 달튼은 주차장에 나와 자신에게 내려진 ‘견적’에 분해서 펄펄 뛰다가 클리프(브래드 피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까지 쏟는다.

 

클리프는 이미 빠질 대로 빠진 달튼의 모양새가 더 빠질까봐 달튼에게 얼른 자신의 선글라스를 벗어 씌워주고 쑤셔박듯 차에 태우고 자리를 떠난다.

 

시장에서 자신의 처지가 결국은 ‘스파게티 서부극’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달튼은 어떻게든 ‘할리우드’에 남기 위해 ‘조연’과 ‘악역’이라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다. 참으로 내키지 않지만 얼굴에 ‘악당 수염’을 덕지덕지 붙이고 너덜거리는 멕시코 악당 복장도 받아들인다.

 

 

촬영장에서 8살짜리 아역스타 트루디와 함께 촬영시간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기 위해 주머니에서 문고판 소설책을 꺼내 읽는다. 트루디가 달튼이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묻는다. 트루디에게 ‘잘나가던 한 젊은 야생마 조련사가 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 이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 내용’이라고 설명하다가 감정에 북받쳐 오열한다. 자신과 똑같은 처지 때문인 듯하다. 

 

그날 촬영 중에 대사를 까먹어 또 모양새가 빠진다. 트레일러로 돌아온 달튼은 영화판에서 자신의 ‘견적’이 더 낮아지는 건 아닐까란 두려움에 휩싸인다. 어젯밤 과음한 자신을 저주하고 금주를 결심하면서 또 오열한다. 직장 문제로 전전긍긍하는 우리 일반 생활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저항도 무위로 돌아가고 달튼은 결국 슈워츠가 제안한 ‘스파게티 서부극’을 찍으러 이탈리아로 간다. 6개월간 영화사에서 찍으라는 대로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찍어댄다.

 

슈워츠의 말처럼 달튼의 처지에서 할리우드에서는 만져보기 힘든 꽤 많은 돈도 번다. 퇴직금에 가까운 성격의 돈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퇴물이 된 투수가 KBO 리그에 와서 주전투수로 활약하며 마지막으로 제법 많은 돈을 벌어가는 꼴이다.

 

달튼은 말도 통하지 않는 화류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탈리아 B급 여배우와 결혼까지 한 뒤 할리우드로 돌아온다. 요란한 이탈리아 여배우와 공항을 나서는 달튼의 모습은 개선장군이 아니라 패잔병의 모습이다. 이제 KBO 리그에서도 방출당해 미국으로 돌아온 전직 메이저리그 투수의 모습이다.

 

할리우드로 돌아온 달튼은 자신이 배우로서의 종착역에 도달했음을 깨닫고 우선 자신의 스턴트맨이자 운전기사이자 집사이기도 한 클리프를 해고하기로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탈리아 신부와 이탈리아에서 받아온 ‘퇴직금’을 아껴 그럭저럭 살아가기 위해선 긴축해야 한다. 긴축경영은 인건비 절감에서 시작한다. 클리프에게 해고를 통지한다. 클리프의 복잡하고 어색한 미소가 슬프다.

 

이 상황에서 찰스 맨슨의 히피들이 느닷없이 릭 달튼의 저택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차이면서 걸핏하면 훌쩍이던 릭 달튼은 이 순간만은 서부극 히어로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창고에서 화염방사기를 갖고 나와 단호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악당들을 처단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끔찍한 살인사건’을 전해들은 이웃에 사는 폴란스키 감독의 동거녀 샤론은 히피 퇴치의 히어로 릭 달튼을 집에 초대한다. 릭 달튼 앞에 그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동경해 마지 않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 저택의 문이 열린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끝난다.

 

‘열린 결말’이지만 관객들은 샤론을 통해서 폴란스키 감독이 히어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던 퇴물 배우 릭 달튼에게 ‘동아줄’을 내려주었으리라 믿고 극장을 떠날 것 같다. 달튼에게 들이닥친 히피들이 재앙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이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KBO에서도 방출당한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재기에 성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충무로에서도 무명에 가까웠던 노배우가 어느 날 ‘오징어게임’ 한편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을 수도 있는 게 세상 아닌가. 여기저기서 치이고 차이는 이 땅의 ‘생활인’들도 자기 모습을 잃지 말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자기 길을 가고 볼 일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혹시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아바(ABBA)의 ‘I Have a Dream’ 마지막 구절을 흥얼거렸을지도 모르겠다.

 

“I have a dream, a fantasy/to help me through reality/And my destination makes it worth while/pushing through the darkness still another mile(내가 꾸는 판타지 같은 꿈이 내가 처한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게 한다. 내 꿈은 꿈꿀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이라도 더 나가는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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