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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늑대와 춤을 (4)

미국의 주(洲)와 도시 중 인디언 이름을 차용한 곳은 숱하다. 미군이 자랑하는 아파치 헬기도, 토마호크 미사일도, 미국 지프의 대명사 체로키도 사실 인디언 말에서 따왔다. ‘인디언’을 세상에서 사실상 없애버린 미국 백인들이 ‘인디언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우월감의 표징일까 인디언에게 보내는 오마주일까.

 

 

세즈윅 요새에 홀로 부임한 던바 중위는 어느날 세즈윅 요새를 찾아온 ‘발로 차는 새’를 비롯한 수우족의 예고 없는 방문에 당황한다. 인디언 전쟁의 와중이다. 당연히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발로 차는 새’는 미군 던바 중위를 경계하지만 묻지 않은 채 달려들어 머리가죽을 벗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던바 중위의 커피 접대에 응한다. 처음 맛본 설탕 맛을 신기해한다. 던바 중위가 건네주는 설탕 봉지도 순순히 접수하고 돌아간다. 또한 며칠 후 다시 방문해서 설탕 선물의 보답으로 아무 말 없이 들소 가죽을 전달하고 돌아간다.

 

들소떼 사냥에 성공한 수우족은 던바 중위와 함께 축제를 벌인다. 던바 중위는 수우족 전사 ‘머릿속 바람’에게 그가 탐내는 자신의 미군장교복을 벗어 준다. ‘머릿속 바람’은 답례로 자신의 소중한 장신구를 던바에게 건네준다.

 

그제야 던바 중위는 ‘인디언은 모두 거지 아니면 도둑’이라는 것이 잘못된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던바 중위의 말을 훔치러 온 ‘거지나 도둑 같은’ 포니족 인디언도 있었지만 그가 직접 조우한 ‘발로 차는 새’를 비롯한 수우족 전사들은 결코 거지나 도둑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아는 여느 미국인들보다 더 예의 바른 신사들이었다. 던바 중위는 절해고도와 같은 세즈윅 요새에서 그가 떠나온 동부의 미국인들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우족 인디언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외로운 세즈윅 요새에서 혼자 모닥불을 피워놓고 인디언 축제에서 보았던 어설픈 인디언의 춤을 춘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다.

 

 

던바 중위는 인디언들의 ‘무엇’에 그토록 매료되고 감동을 받아 자신의 정체성까지 바꾸고 싶어했을까. ‘수우족의 기도문’으로 알려진 인디언의 기도문을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도 하다.

 

바람결에 당신의 음성이 들리고/당신의 숨결이 자연에게 사랑을 전합니다/ 나는 당신의 수많은 자식들 중에 힘없는 조그만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눈이 오랫동안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만물을 내 두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 주소서/

 

당신이 우리 선조들에게 가르쳐 준 지혜를 나 또한 배우게 하시고/ 당신이 나뭇잎 하나 돌 하나에 감추어 두신 가르침을 깨닫게 하소서/다른 형제들 보다 내가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리하여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다할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 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소서.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던바 중위를 매료할 만큼 아름다울 것 같다. 신이 창조한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그들은 사냥에 나설 때 반드시 짐승을 위한 제사를 올리고, 화살을 날리는 순간, 사냥감을 향해 ‘신이시여, 제가 저 먹이를 잡지 않으면 안 됨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한 뒤 활 시위를 놓는다고 한다.

 

나무 열매를 따면서도 ‘너의 몸이 나를 살찌우니 나의 땀은 너를 배부르게 하리라’고 되뇐다고 한다. 수우족이 이방인 던바 중위에겐 ‘은혜’와 ‘보답’의 정신이다. 인디언의 세계관과 문화에 경의를 표했던 인물은 던바 중위만은 아니었고, 헨리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도 사라진 인디언 문화에 한없는 존경심을 표한다.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는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땅과 마음」이란 글에서 현대 미국 백인들의 심층 심리를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그들이 잠재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인디언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자신들이 저지른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에 쫓겨나고 죽어가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흑인들처럼 백인들에게 동화되지 않고 ‘순교자’처럼 의연하게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켰던 그들에게 ‘승리자’인 백인들이 오히려 열등감을 느끼고 외경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미국 주(洲) 이름들과 도시 이름들이 아직 인디언들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은 어쩌면 미국인들이 인디언들에게 보내는 ‘오마주’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프로구단들도 인디언의 이름과 이미지를 차용하고, 미군이 자랑하는 아파치(Apache) 헬기도 있고 인디언 말로 ‘때려눕히다’는 뜻을 가진 인디언 손도끼 이름을 붙인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도 있고, 미국 지프의 대명사 체로키(Cherokee)도 있다. 자신들이 지워버렸지만 그래도 그들을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것이 미국의 힘의 원천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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