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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3)

‘once upon a time…’이란 문장은 대개 그 옛날의 신화나 전설을 퍼올리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우리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 풀어내는 이야기 대부분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단 이야기가 ‘옛날 옛날 한 옛날’이나 ‘once upon a time’으로 시작하면 ‘이건 구라구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역시 그렇다.

 

 

영화의 배경은 1969년 여름 할리우드에서 발생한 ‘맨슨 패밀리(Manson Family)’라는 광기 어린 범죄집단의 참혹한 살인사건이다. 맨슨 패밀리는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이란 희대의 이단자가 결성한 집단이다. 

 

영화 속에서 히피들은 찰스 맨슨의 추종자로 등장한다.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동거하고 있는 베벌리힐스 저택에 장발에 수염을 기른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찾아왔는데, 그가 찰스 맨슨이다. 그는 실제로 예수의 용모를 흉내 내고 다녔던 인물인데, 이 저택의 옛 주인 ‘테리 멜처’를 찾고 있었다. 

 

테리 멜처는 유명한 음반 제작자였고 찰스 맨슨은 꽤 재능 있는 작사·작곡가였다. 그런데 테리 멜처는 자신에게 보내온 맨슨의 음악을 쓰레기라고 조롱했고, 여기에 분노한 맨슨이 그를 죽이러 베벌리힐스 저택에 찾아온 거였다. 하지만 ‘테리 멜처는 이미 이사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찰스 맨슨은 짜증을 내면서 돌아간다. 이는 실제 사건이다. 

 

짜증난 찰스 맨슨은 인근 영화촬영장에서 기거하는 텍스를 비롯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은 지령을 내린다. “테리 멜처 대신 테리 멜처의 집에 새로 이사와 살고 있는 여배우 샤론과 폴란스키 감독, 그리고 샤론의 전 남친 제이 시브링(Jay Sebring)을 모두 죽여버려라.” 이들 역시 실존 인물들이다.

 

 

일례로, 제이 시브링은 유명 헤어디자이너로 세계적인 미용실 프랜차이즈를 만든 인물이다. ‘꿩 대신 닭’도 아니고 맨슨의 논리는 참으로 이해난망이다. 그저 ‘잘나가는 족속’ 모두에게 분노했던 모양이다. 

 

결국 여배우 샤론 테이트와 헤어 디자이너 제이 시브링을 비롯한 5명이 이날 밤 맨슨의 추종자들에게 살해된다. 폴란스키 감독은 마침 해외여행 중이어서 봉변을 피한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현악 4중주단이라면 남자 1명에 여자 3명으로 구성돼도 이상할 것 없지만 찰스 맨슨이 특파한 ‘살인 4중주단’의 성비는 남자 하나 여자 셋이다. 아무리 양성평등시대라지만 ‘살인’이라는 임무의 특성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특이하다. 찰스 맨슨을 추종했던 수백명의 무리 중 유난히 여성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수십명의 찰스 맨슨 추종 히피 대부분도 여성이다. 

 

하지만 타란티노 감독은 이를 뒤집어서 영화를 펼친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란 퇴물 배우와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살고 있는 폴란스키 감독 옆집으로 쳐들어간 히피들이 거꾸로 몰살당하는 사건으로 영화를 재구성한다. 할리우드 완패 사건을 할리우드 완승 사건으로 뒤집은 거다. 이를테면 승패조작 영화다. 아직도 남아있다는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역사왜곡이라고 미국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실제 사건에서 폴란스키 감독의 저택에서 샤론과 시브링을 살해한 히피 4인조는 살해 동기로 “저들이 TV를 보고 자란 우리들에게 TV 속에서 살인과 온갖 나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을 내세웠다. 영화 속에서도 이 ‘살인 4중주단’은 다음과 같은 명분을 내세운다. “우리를 쓰레기 취급하는 ‘잘나가는’ 릭 달튼에게 분노한다. 릭 달튼이 서부영화와 범죄영화에서 자신들에게 살인을 가르쳤으니 그는 죽어도 싼 ‘돼지’다.” 아무리 부당한 목적이라도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찰스 맨슨과 그가 베벌리힐스 고급주택가로 파견한 ‘살인 4중주단’의 모습에서 문득 소외된 자들의 기득권을 향한 이글거리는 분노가 느껴진다. 혹시 타란티노 감독이 ‘사실(史實)’을 비틀어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허구’는 화려한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의 좌절과 분노는 아니었을까.

 

대선을 앞두고 소외된 계층이나 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한 각 대선캠프의 분석과 대응이 요란스럽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찰스 맨슨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찰스 맨슨 사건’의 법적인 처리는 찰스 맨슨에 대한 사형선고로 끝났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 책임을 오롯이 맨슨에게만 물을 수 있었을까. 찰스 맨슨을 분노하게 만든 사람들의 책임은 정말 없었을까. 양극화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사회가 아슬아슬하다. 많은 사람의 소외를 기반으로 소수의 기득권이 부와 기회를 독점하는 사회는 ‘찰스 맨슨’과 ‘살인 4중주단’을 잉태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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