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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미션 (8)

유럽에서 상권과 이권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남미에서 과라니 부족을 격퇴할 땐 의기투합한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하나와의 싸움도 중과부적인 과라니족에게는 실로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과라니족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가브리엘 신부밖에는 없다. 그러나 교황청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양대세력에 휘둘려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무력진압에 앞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는 ‘친절하게도’ 과라니족 대표를 직접 만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시도한다. 협상이라기보다는 최후통첩에 가깝다. 그 자리에 나온 과라니족의 대표는 스스로를 과라니의 왕이라 칭한다.

 

‘너희들에게 왕이 있다면 나도 왕’이라며 평등한 관계 속에서의 정의로운 타협을 요구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대표는 벌거벗고 얼굴에 검댕칠을 하고 왕이라 칭하는 ‘짐승’의 주장을 무표정하게 듣는다.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 논리로 따지자면 과라니족 왕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 모두 알겠으니 빨리 땅을 비우라는 말을 할 뿐이다. 

 

이들의 기묘한 협상 테이블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431 ~404 BC)에서 그리스 세계의 맹주 아테네와 에게해의 작은 섬나라 멜로스(Melos) 사이에 차려졌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정치학의 바이블로 일컬어진다. 약자와 강자의 관계는 까마득한 2500년 전이나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모양이다.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놓고 일전(一戰)을 준비 중이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에게해의 수많은 작은 나라를 자신들의 동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한다. 작은 나라들은 당연히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을 면하기 위해 중립으로 남기를 원한다. 요즘 격화하는 ‘미중 패권경쟁’ 와중에서 중립으로 남고 싶은 우리 사정과 다를 바 없다.

 

 

점령군 사령관처럼 찾아온 아테네의 사신을 맞은 작은 섬나라 멜로스의 왕은 평화와 정의를 설파하고, 국가 대 국가의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중립 희망을 피력한다. 아테네의 사신이 비웃는다. “평등한 관계란 힘이 같을 때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멜로스의 왕은 할 말이 없다. 아테네의 사신은 계속 밀어붙인다. 

 

멜로스의 왕이 말하는 독립국으로서의 권리 주장에 “강자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약자는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을 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라고 반박하면서 압박한다.

 

멜로스의 왕이 마지막으로 저항한다. “우리가 비록 약하지만 너희들이 우리를 정복하려든다면 신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이번에도 아테네 사신의 비웃음이 돌아온다. “그리스의 모든 신도 원래 강자를 좋아하고 약자를 싫어한다.” 이 말도 사실이다. 아테나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들은 무척이나 전투적이다. 

 

투키디데스가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중 백미(白眉)로 알려진 ‘멜로스의 대화(Melian Dialogue)’편에 나오는 섬뜩한 대화록의 일부분이다. 스페인·포르투갈의 대표단과 과라니 왕과의 대화와 무척이나 닮았다. 멜로스의 왕도 참담했고 과라니의 왕도 참담하다.

 

그렇게 평화협상은 결렬되고 아테네는 멜로스 정복에 나선다. 막강한 함대를 동원해 작은 섬나라 멜로스를 완전봉쇄하고 주민들을 기아상태로 몰아넣어 항복을 요구한다. 저항하는 멜로스 청장년을 몰살하고 여자와 아이들을 모두 노예로 팔아버린다. 문명국에 의해 저질러진 최악의 만행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사건이다. BC 400년에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강자의 만행이 1750년 남미에서도 되풀이된다.

 

 

이런 만행이 그리스의 멜로스 섬이나 남미 과라니족에게만 해당했던 건 아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문제를 놓고 중국과 갈등을 빚을 때, 중국의 왕가 성을 가진 외교부장이란 인물이 우리나라를 찾은 적이 있다.

 

우리는 외부의 공격 위험에 대비한 독립국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말하는데, 왕가 성을 가진 중국의 사신은 ‘소국이 대국의 뜻에 거스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드립을 날리고 돌아갔다고 한다. 말하는 꼴이 멜로스를 찾아간 아테네의 사신을 닮았다. 아마도 중국의 외교부장쯤 되니 국제정치의 전범으로 알려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실린 ‘멜로스의 대화’를 읽고 ‘강자의 화법’을 숙지했는지도 모르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과라니 전쟁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강자의 횡포와 약자의 비극을 보면 중국 왕가 성을 가진 외교부장의 드립을 ‘개드립’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착잡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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