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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늑대와 춤을 (2)

남북전쟁 중에 벌어지는 동족상잔에 질려버린 존 던바 중위는 어쩌다 영웅이 된 김에 사령관에게 특청을 넣어 ‘평화로울 것 같은’ 서부 지역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서부 지역의 평화는 던바 중위의 환상이었을 뿐, 그곳 역시 평화롭지 않다.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전쟁이 동부의 동족상잔보다 더 처절했던 시절이었다.

 

 

존 던바 중위는 남북전쟁 당시 미국 영토의 가장 서쪽 지역인 사우스다코타 지역 사령부가 있었던 헤이스(Hays) 요새에 전입신고를 한다. 헤이스 요새의 사령관은 던바 중위를 관할지역의 세즈윅 요새에 발령한다. 헤이스 경찰서에 배속돼 세즈윅 파출소로 발령이 난 셈이다. 

 

던바 중위는 동부전선에서 동족끼리의 학살에 염증이 나서 서부로 왔지만, 서부전선의 사령관 팜브로 소령은 인디언 학살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중이다. 팜브로 소령은 ‘전쟁영웅’이라는 던바 중위를 비웃는다. 묘한 표정으로 세즈윅 요새로 떠나는 던바 중위를 창밖으로 응시하다가 난데없이 ‘영국왕 만세’를 외치고 권총자살해 버린다.

 

던바 중위는 헤이스 요새에서 세즈윅 요새까지 티몬스라는 수다쟁이 우편배달부가 모는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황량한 벌판에서 뼈만 남은 시신을 발견한다. 인디언에게 살해당한 미군 연락병의 시신이다. 티몬스는 시신의 품속에서 나온 편지를 보고 ‘이런 줄도 모르고 동부에서는 이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면서 한바탕 수다를 떤다.

 

요새라기보다는 그냥 초원의 폐가에 가까운 세즈윅 요새에 던바 중위를 내려주고 돌아가던 수다쟁이 티몬스는 포니(Pawnee)족 전사들에게 걸려 온몸에 화살이 박혀 고슴도치가 되고, 산 채로 머리가죽이 벗겨지는 최악의 죽음을 맞이한다. 오는 길에 발견했던 미군 연락병의 최후가 어땠는지를 실감하면서 숨을 거두었을 듯하다.

 

던바 중위는 절해고도와 같은 세즈윅 ‘폐가’에 혼자 남는다. 그를 아무도 없는 그곳에 보낸 팜브로 소령도 죽고, 그를 그곳에 데려다 준 티몬스도 죽는다. 이제 던바라는 미군 중위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졸지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돼버린다. 그를 잃어버린 미국에서는 편지 한 장, 보급품 한 상자도 없다. 던바 중위는 절해고도와 같은 황야에서 까칠하기 짝이 없는 늑대 한 마리라도 곁에 두고 싶다. 멀리서 그를 감시하던 인디언들이 그런 그에게 ‘늑대와 춤’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절해고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는 어느 날 조우한 식인종이 아닌 야만인 하나가 너무나 반갑다. 그에게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영어를 가르치고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비로소 사는 것 같다. 던바 중위도 미국의 적이어도 상관없다. 인디언 마을을 기웃거리고 아부하면서 그들이 자신을 받아주기를 소망한다. 그들의 옷을 입고 그들의 말을 배우면서 미국의 적인 그들에게 동화돼 간다. 

 

어느 날 우연히 그런 던바 중위를 발견한 미군은 그에게 ‘반역자’의 딱지를 붙인다. 인디언의 복장을 하고 인디언의 말을 하면서 인디언과 함께 몰려다니는 던바는 미국을 배신한 반역자임에 틀림없다.

 

반역자로 몰려 미군에 호송돼 가던 던바 중위가 아닌 ‘늑대와 춤’을 인디언들이 부족의 명운을 걸고 구출해 낸다. ‘늑대와 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군과의 일전을 불사한다. 그때까지 ‘이중국적자’로 살아가던 던바 중위는 마침내 미국을 버리고 완전한 수우족 인디언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에게도 몇백만명에 달하는 ‘잊힌 던바’들이 있다. 혼란스러웠던 시절 수많은 사람이 일본, 중국, 옛 소련 땅으로 보내지거나 찾아가서 잊혔다. 그들은 던바처럼 저들의 말을 하고 저들의 옷을 입고 살아왔다. 그들은 수십년 만에 던바처럼 저들의 땅에서 ‘발견’되거나 우리말도 잊은 채 우리 땅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내던져두고 잊어왔던 재일교포나 조선족, 혹은 사할린 동포라는 이름의 ‘우리’도 아니고 ‘저들’도 아닌 ‘그들’의 지금 모습에 이해심을 발휘하거나 우호적이지 못하다. 미국이 던바 중위를 대하듯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경계의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은 담장 위에서 떨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을 받아줄 것 같은 쪽으로 떨어진다. 던바 중위도 미국인과 인디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자신을 받아주는 인디언 쪽으로 떨어졌다. 재일교포나 사할린 교포, 그리고 조선족들의 마음일 듯하다. ‘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보다 마음이 ‘우리’를 결정하기도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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