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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5)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스턴트맨이자 운전기사로 근근이 살아가는 클리프(브래드 피트)는 어느 날 촬영장에서 당시의 ‘핫’한 스타 이소룡과 만난다. 영화란 가상세계에서 이소룡은 천하무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소룡은 ‘알리도 이길 수 있다’며 허세를 떨고, ‘전쟁 영웅’ 클리프와 한판 붙는다. 현실세계에서도 이소룡은 무적이었을까. 

 

릭 달튼과 클리프와 만났을 때 이소룡은 떠오르는 배우였다. 1960년대 인기 미드 ‘그린 호넷(Green Hornet)’에서 도시의 모든 악당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혼쭐’내주는 히어로 레이드(Reid)의 운전기사이자 이소룡표 쿵푸로 화끈하게 제압하는 일본인 조수 케이토(Kato) 역을 맡아 뜨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영화라는 ‘가상세계’에서 천하무적이라는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이소룡은 클리프를 비롯한 스턴트맨들 앞에서 자신의 무술은 ‘리얼’이며 전설적인 복서 조 루이스든 무하마드 알리든 한방에 보낼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한다. 자신의 크지 않은 주먹을 들어 보이며 ‘이건 그냥 주먹이 아니다. 이것은 살인 무기’라고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한다.

 

이를 지켜보던 전쟁 영웅 클리프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린다. 이소룡 말대로라면 소림사 출신 주방장도 UFC를 씹어먹을 텐데 현실이 어디 그런가. 기분이 나빠진 이소룡을 향해 클리프는 “솔직히 말하면 넌 조 루이스나 무하마드 알리 발톱의 때만도 못하다”며 가상세계에 빠져 천지 분간 못하는 이소룡을 조롱한다. 

 

결국 클리프와 이소룡의 대결이 펼쳐진다. ‘절권도’를 창시하신 전설의 이소룡은 클리프의 군대 특공무술에 개망신당한다. 클리프는 코를 한번 튕기고 그 유명한 ‘에뵤’ 괴성을 지르며 ‘개폼’ 잡고 달려드는 이소룡을 간단히 패대기친다. 

 

가상세계는 가상세계일 뿐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중년의 스턴트맨 하나도 감당이 안 된다. 물론 이소룡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망신의 원인을 자신의 방심 탓으로 돌린다.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 무렵 떠오르는 신인 여배우 샤론 테이트는 영화관을 찾아 자신이 등장하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에 몰입한다. 실제로 샤론 테이트는 로만 폴란스키라는 비현실적인 남자, 그리고 제이 시블링이라는 사업가 두 남자와 한집에서 동거한다. 가상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을 현실임에도 어렵지 않게 접목하며 살아간다. 가상세계에서 가능한 일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경계가 없이 살아가는 인물은 이소룡과 샤론만은 아니었다. 가장 현실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던 퇴물배우 주인공 릭 달튼 역시 사실 이소룡과 마찬가지로 가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자기 집 수영장에 둥둥 떠서 다음날 촬영할 영화대본을 외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친 히피 중 하나가 클리프에게 얻어터져 얼굴이 으깨진 채로 수영장에 뛰어들어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댄다. 릭은 그 히피를 무척이나 ‘영화적’으로 처리한다. 

 

언젠가 영화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 무리를 영웅적으로 태워 죽였던 화염방사기를 떠올린다. 창고에 넣어뒀던 영화소품 화염방사기를 꺼내 짊어지고 히틀러를 태워 죽이던 단호하고 진지하고 영웅적인 표정으로 수영장에 빠진 히피에게 불벼락을 내린다.

 

영웅은 결코 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누르지 않는다. 릭 달튼은 영화대본을 외워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화염방사기의 가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현실과 가상이 중첩돼 있다.

 

릭 달튼의 집에 쳐들어온 히피들은 더욱 괴이하다. 이들은 ‘우리는 어릴 때부터 릭 달튼의 영화를 보고 자랐는데, 릭 달튼 저놈이 우리들에게 살인을 가르쳤고, 온갖 나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을 릭 달튼을 처단해야 할 명분으로 삼는다. 

 

아마도 할리우드 영화와 BBC 다큐멘터리를 혼동한 모양이다. 혹은 영화라는 가상세계에 너무 몰입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가상세계로의 몰입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리화나를 빨아댄다. 결국 이들은 가상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무차별 연쇄살인을 현실세계로 끌어온다.

 

 

타란티노 감독이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나비가 된 꿈)을 읽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가 그려낸 1969년 미국 할리우드의 배우들과 베이비 붐 세대 히피족에게서 ‘호접몽’을 꾼 장자의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낮잠에 빠져 꿈에 나비와 노닐다 깨어난 장자는 문득 ‘내가 나비꿈을 꾼 것이었는지, 지금 내가 나비가 꾸는 꿈속에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할리우드 스타나 히피족이 아니어도 모두가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사이버(cyber)’의 세계는 일상이 돼버렸다. 모두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화폐를 사용하며 가상의 인물들과 대화하면서 살아간다. 점점 ‘몰입감’을 극대화한 가상의 세계들이 제공된다. 모두가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것에 올라타기 위해 기를 쓴다. 그 끝이 어디가 될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사이버 세계는 VR(Virtual Reality)의 세계다. 말 그대로 현실과 유사(類似, virtual)한 세상이다. 아무리 진짜와 비슷해도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이다. 결국 ‘사이버’는 ‘사이비(似而非)’일 뿐이다. 머리는 사이버 세상에 둬도 두 발은 현실을 딛고 있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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