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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1)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2019)’는 킬 빌(Kill Bill) 이후 잔혹하면서도 화끈한 복수극으로 명성을 쌓아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2020년 92회 아카데미상에서 ‘기생충’과 경합하고 브래드 피트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해 친근한 작품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이라면 화끈하고 후련한 복수를 기대하고 마주하게 되는데, 기대와 달리 영화는 무척이나 ‘잔잔하게’ 흘러간다. 화끈한 ‘타란티노’를 향한 기대가 임계점에 도달하는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역시 타란티노’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날것’으로의 폭력이 화산처럼 폭발한다. 평범한 폭력과 살인이 아니라 타란티노류(流)의 ‘끔살’이다.

 

한물간 왕년의 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전속 스턴트맨이자 운전기사이며 동시에 절친이기도 한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 고급 주택가에 자리 잡은 릭 달튼의 저택에 들이닥친 남녀 히피들을 죽인다.

 

시시하게 칼이나 권총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클리프는 얼굴을 벽에 짓이겨 죽이고 릭은 창고에서 난데없는 화염방사기까지 들고 나와 히피들을 태워죽인다. 아무리 봐도 정당방위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악감정의 폭발이다. 클리프와 릭은 히피들에게 왜 그토록 치를 떨고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었을까.

 

영화의 제목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이라는 표현은 단순하게는 ‘옛날 옛날 까마득한 옛날’쯤으로 번역되겠지만, 내포된 의미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옛날’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이다. 굳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라떼는 말이야’가 가장 적절할 듯하다.

 

 

걸핏하면 ‘라떼는 말이야’를 입에 올리는 중년의 부장님 본인들도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년, 아니 5년 전의 세상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만큼 돌아갈 수 없는 까마득한 ‘원스 어폰 어 타임’이 돼버렸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아련함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 라떼를 찾는다.

 

릭과 클리프는 1969년 미국에서 ‘라떼’ 찾는 중년들이다. 왕년에 ‘정의의 총잡이’ 역으로 잘나가던 릭은 도덕적 가치를 요구하지 않는 신세대의 변화에 따라 스타덤에서 내려와 단역인 은행강도 역까지 밀린 자신의 처지가 쪽팔리고 견디기 힘들다.

 

대중은 더 이상 릭 달튼의 ‘정의의 사나이’ 이미지에 열광하지 않는다. 영화 촬영장에서 그가 8살 신세대 아역배우에게 구사하는 라떼 어법은 무참하게 면박당한다. 8살 여자 아역배우가 왕년의 스타 릭의 어깨를 토닥이며 동정과 위로까지 한다. 릭이 영화판에서 갈 데까지 간 퇴물이라는 것을 8살 아이도 알고 있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수는 없다.

 

클리프는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영웅에게 주어진 일이라곤 영화 스턴트맨이 고작이다. 자신이 베트남에서 ‘뺑이’ 칠 때 반전데모나 해대고 병역을 기피하고 떠돌아다니며 마리화나나 빨아대던 히피들이 참으로 가증스럽고 ‘같잖다’.

 

릭 역시 자신을 퇴물로 만들어버린 신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히피들이 못마땅하기는 클리프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사는 고급주택가에 ‘똥차’를 몰고 소음을 내는 히피들을 발견하고는 거의 히스테릭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소외되면서 라떼를 찾던 ‘꼰대’ 릭과 클리프의 응어리진 분노가 타란티노 감독의 허락을 받아 신세대 히피들을 향해 화산처럼 폭발하고 만다. 클리프에게 피떡이 돼 수영장에 빠져 허우적대는 히피 ‘한 마리’를 향해 릭이 마치 라이터 불로 벌레를 태워죽이듯 창고에서 화염방사기를 메고 나와 방역요원의 자세 잡고 태워버린다. 

 

타란티노 감독이 왜 이렇게까지 히피를 혐오하는지 궁금하다. 그것도 굳이 여자 히피다. 경위야 어찌 됐든 여성을 향한 이토록 극악한 폭력을 본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 거의 ‘일베’스럽다. 우리나라 여성가족부가 혹시 타란티노 감독에게 항의서한을 안 보냈는지 궁금해진다.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점점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돼가는 듯하다. 6070세대들도 분노하고 여성도 분노하고 남성도 분노한다. 그들의 분노가 혹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닷없이 폭발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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