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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7)

영화의 스토리 전개 면에서 샤론 테이트의 역할은 의미가 거의 없다. 주인공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옆집에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기이한 동거를 하는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여배우일 뿐이다. 그럼에도 샤론의 등장 분량은 영화의 흐름을 끊어먹고 생뚱맞을 만큼 많다. 타란티노 감독이 의도했던 건 뭘까. 

 

 

영화 속에서 샤론 테이트는 1969년 8월 8일 ‘그날’ 히피들에게 습격당한 릭 달튼의 ‘옆집 여자’였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론 1969년 ‘그날’ 찰스 맨슨을 추종하는 히피들에게 습격당해 밧줄로 목이 졸리고 온몸을 난자당해 죽은 여배우다.

 

영화와 실제가 달랐던 건 또 있다. 영화 속에선 히피 4명이 릭 달튼과 클리프(브래드 피트)에게 끔찍하게 죽지만 실제론 샤론 테이트와 4명의 동료들이 끔찍하게 죽어간 사건이었다. 

 

할리우드를 사랑하는 타란티노 감독은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간 샤론 테이트를 추모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참고: 영화와 실제 사건을 비교한 이야기는 더스쿠프 479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❸ 찰스 맨슨과 살인 4중주단’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여배우 샤론 테이트와 클리프가 운전하는 캐딜락을 히치하이킹으로 얻어타는 히피걸 ‘푸시캣’을 병렬로 배치해 보여준다. 극단적이리만큼 이질적으로 보이는 2명의 젊은 여성들이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구도다.

 

슬리퍼에 핫팬츠 차림으로 온몸을 흔들어 클리프의 시선을 끌어 차를 얻어탄 푸시캣은 전형적인 히피걸의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럼없이 운전하는 클리프의 무릎에 ‘발랑’ 누워 보란 듯이 원시림 같은 ‘겨털’을 내보인다. 긴 생머리는 족히 일주일은 넘게 안 감았는지 꼬질꼬질하다.

 

히피는 인위(人爲)를 배격하고 ‘생겨먹은대로’를 숭상한다. 남자들도 수염을 깎거나 다듬지 않는다. 히피들은 효경(孝經)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구절을 읽었는지 유난히 자연스러운 ‘털’에 집착한다. 웬만해선 신발도 안 신고 가급적이면 맨발로 돌아다닌다. 

 

 

푸시캣은 클리프에게 섹스를 제안하지만 그렇다고 ‘성매매’를 제안하는 건 아니다. 그냥 자연적이고 본능적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없다. 아마 히피들은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까지만 읽고 이어 나오는 ‘입신행도 양명어후 이현부모 효지종야(立身行道 揚名於後 以顯父母 孝之終也)’ 구절은 빼먹은 모양이다. 히피들은 당최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멀다.

 

히피걸 ‘푸시캣’의 시퀀스가 지나가고, 곧 이어 노란 긴 생머리에 초미니 스커트를 입고 롱부츠를 신고 베벌리힐스 극장가를 활보하는 샤론 테이트의 시퀀스가 이어진다. 굳이 분류하자면 ‘입신양명立(身揚名)’한 히피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긴 생머리나 미니스커트, 부츠는 모두 히피문화다. 의상 콘셉트 자체는 ‘푸시캣’과 동일하다. 그녀의 롱부츠도 사실은 히피들이 열광하는 인디언 콘셉트다. 샤론 테이트는 시내에서도 히피들처럼 맨발로 다니길 즐겼던 여배우로 유명하기도 하다. 

 

푸시캣과 샤론의 의상 콘셉트는 분명 동일한데 느낌은 전혀 다르다. 푸시캣의 생머리는 꼬질거리지만 샤론의 생머리는 부드럽게 물결친다. 샤론의 미니 스커트는 세련돼 보이지만 푸시캣의 핫팬츠는 헐벗은 느낌이다. 어쩌면 샤론의 가장 세련된 패션의 ‘원류’는 푸시캣의 히피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푸시캣의 히피 패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새로운 패션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듯이 이 세상에 완전히 독자적인 문화는 없다. 모든 문화는 ‘접변(接變)’하고 ‘수용’하고 ‘모방’하고 ‘동화(同化)’한다. 서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고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만약 푸시캣이 샤론을 향해 ‘네 패션은 우리 히피를 모방한 것’이라면서 ‘원조’를 따진다면 황당한 일이다. 샤론의 패션이 좋아 보인다면 원조 히피 패션을 버리고 샤론의 패션을 따르면 그만이지 ‘원조’ 타령할 일은 아니다. 샤론이 자신의 패션은 히피문화와는 전혀 별개의 새로운 것이라고 우긴다면 그것도 유치하고 민망한 일이겠다.

 

중국이 우리네 김치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니 김치의 원조는 중국의 ‘파오차이’라고 부들거리더니, ‘한류’가 붐을 이루니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소수민족의 복장으로 ‘한복’을 등장시켜 시끄럽다. 샤론과 푸시캣의 의상이 콘셉트는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패션이듯 김치와 파오차이의 콘셉트는 유사할지 몰라도 별개의 음식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손흥민의 원조도 손오공이나 손권이나 손문이다. 너희들 나쁜 건 모두 너희들 ‘종특’이고 너희네 멋지고 좋은 것은 모두 자기들이 원조란다. 15세기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나 마젤란에 앞서 세계일주 대항해는 명나라 환관 정화(鄭和)가 먼저 했고, 콜럼버스보다 앞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원조도 중국인이며, 축구의 종주국도 중국이라고 말하면 뿌듯하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알고보니 스키도 중국이 원조라고 무릎을 탁 치고 동네방네 소리 치고 다닌다. 코로나 바이러스 빼고 세상 모든 것의 원조는 중국인 모양이다. 유치한 ‘원조 타령’에 같이 삿대질해가며 따지는 것조차 민망하다.

 

만약에 벽돌만 한 휴대전화 초기개발자가 스티브 잡스를 찾아와 ‘아이폰의 원조는 바로 나’라고 부들대면 잡스가 뭐라고 대꾸해야 할까. 그럼 우린 벽돌폰 모방한 아이폰 쓸 테니 댁은 그냥 원조 벽돌폰 쓰시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린 김치 먹을 테니 너희들은 그 좋은 원조 파오차이 드시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히피들이 샤론 테이트 집에 들이닥쳐 5명을 몰살한 게 설마 ‘히피패션’ 원조논쟁 끝에 격분한 히피들이 샤론 집으로 ‘현피(온라인에서 만난 사람과 실제로 만나 싸우는 행위)’ 뜨러 가서 벌어진 참극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원조 타령에 목매는 중국인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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