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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상범이 본 제주찰나(34)] 젊은날 치기·객기로 점철된 방황과 우여곡절 ... '흐르는 나'

 

젊은날 치기와 객기로 점철된 방황과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 시절 때늦은 대학졸업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학번상으로는 87학번인데 1992년 졸업앨범에도 있고 한참후에 재입학하여 2000년도에 졸업했으니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하지못한 결과다.

 

한편으로는 남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는 위안도 없지 않다.

 

젊은날을 소환하여 다시 꺼내 보는 이유가 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르게 치기와 객기가 가득했던 오래된 젊은날의 생각이 요즘 불현듯 다시 들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 없이 살아온 결과로 지금 겪는 물질적 위기,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이 있다. 간헐적 무기력, 우울감에 위축되기도 한다. 그동안 알았다고 생각한 것마저 과연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명상과 기도로 어느정도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생각 또한 오만이었음을 최근에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약하디 약하고 부족함 투성이인 것이 인간임을 ... 이 또한 분별심임을 알아차리고 있지만 현재까지 참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묵은 습관, 그 뿌리를 생각하고 좇다보니 젊은날이 소환된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그 뿌리깊은 에고(ego)가 지금의 나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 어떤 안좋은 습식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지금도 생각과 감정으로 수없이 명멸했다 사라지는 현상을 받아들인다. 조금이라도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까를 고민한다. 삶의 본질과 의미를 다시 찾고자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며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재배열 시켜보고자 뒤적여 본다.

 

이 그림을 만들 당시 남보다 늦은 나이에 미대를 졸업하는 나를 돌아봤다. 졸업전을 앞두고 작품고민에 빠졌다. 우여곡절 많았던 지난 삶을 반추해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회한 속에 쌓아온 내 자신의 모습, 내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지니고 있는 나의 몸에 있는 상처의 흔적 등을 일종의 자화상으로 인물 없는 자화상을 표현하려 하였다.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처럼.

 

그래서 내몸을 주목했다. 곳곳에 난 상처의 흔적을 사진으로 찍고 포토샵으로 확대하여 한지에 프린트하고 그 위에 시간의 흐름을 붓으로 드로잉한 작품이다.

 

상처난 곳을 중심으로 만남과 충돌, 순환과 리듬, 율동, 파동같은 선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고 연결하고 부서지는 표현을 동양화의 특질인 선으로 표현하였다. 예기치 않은 형상, 알 수 없는 형상이나 무의식적 상징을 드로잉 하기도 하고 ...

 

우리가 보는 세계는 사실 알 수 없다. 그 모름이 신비이고 현상 너머 본질은 형상 없는 연결된 통합된 비물질 의식의 세계다. 우리가 명명한 세계는 실체가 아닌 우리 생각이 만들어 놓은 홀로그램이자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더 확고하다.

 

세월이 흐른 뒤에 명상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세계란 분리가 아닌 서로 통합되고 연결된 하나의 세계임을 체득했다. 자연을 통해 희열로 체험한 것도 있고,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 등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를 먹어 가면서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제작하던 시절은 갈증과 방황, 치기와 객기로 점철된 시기라 제목을 '흐르는 나'로 붙였다.

 

이 고민은 이후 지금 이 순간 만이 영원한 현재로 의식를 넓혀 ‘지금이순간’, ‘바로지금여기에서’라는 일련의 작품제목으로 표현 확장됐다. 대학원에서 '흔적의 추상표현연구'라는 논문으로 정리되어 갔다.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려던 때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공백이 생겼다. 그래도 살아가면서 이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고민중이다.

 

현상과 본질, 생각과 감정, 의식의 차이, 신과 인간의 관계 등 일련의 고난 속에서 방황과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늘 주시하는 나의 의식은 현재 참회, 명상, 기도로 이어지고 있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이 때의 그림과 함께 작업노트로 도록에 남겨진 몇 개의 글과 내용을 남겨본다. 미숙한 젊은날의 의식이지만 다시는 올 수 없는 젊은날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다. 이제는 추억이고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기라도 해서 감사하다.

 

나이를 먹었다고 깊이가 있어진 것도 아니다. 아직도 한걸음 나아가기 힘든건 현상은 뛰어넘을수도 없거니와 그동안 얕은 체험으로 알았다고 생각한 오만을 알아차리지 못함과 오래된 습식에 굳어진 정신적인 벽이 크고 태생적 무지와 나태, 게으름일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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