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이번 소개할 작품은 2008년 9월19일부터 9월28일까지 홍대 근처에 있었던 지금은 교수가 된 후배가 운영했던 대안공간인 ‘갤러리꽃’이라는 곳에서 선보였던 작품이다.
전시는 한동안 못했지만 지금도 활동중인 ‘정글’이라는 이름의 아티스트그룹 창립전시 출품작이기도 하다.
지금은 엄마보다 더 훌쩍 커버린 우리 애들이 오래전 3살, 5살이었을 때 서울에 있는 용산 가족공원에 봄 나들이 갔을 때의 추억이 있는 그림이다.
개나리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는 봄날을 만끽하려 가족과 함께 간 용산가족공원에서 봄꽃 하나를 꺽어 식물채집하듯 스케치북 안에 스크랩한 것이 소재가 됐다.
그 화사했던 꽃은 내 스케치북 안에서 속절없는 시간이 지나 마르고 바스러져 그 영광스러운 봄날, 봄기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처연한 모습으로 말라 비틀어져 접혀 있는 모습으로 남아 어느날 어느순간 내게 오히려 강렬하게 다가와 그 순간 내 그림의 모티브가 되준 것이다.
그림의 배경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반야심경을 임서해 놓았고 제목은 반야심경의 그 유명한 글귀인 공즉시색 색즉시공을 화제로 삼았다.
스크랩할때는 진달래꽃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진달래가 아닌 아닌 산철쭉, 개꽃이었다.
진달래보다 색깔이 진한 홍자색 꽃이라서 그림 전체를 빨갛게 물들였다.
레드는 강하다.
강한 생명의 수혈로 다시 그 봄날의 영광을 되돌리길 바라면서. 여하간 당시에는 추상을 하면서도 뭔가 성이 안차 있어서 형상을 그려 넣고 싶었던 욕구가 많았던 찰나였다. 가을 전시를 앞두고 우연히 봄날 스크랩해 두었던 스케치북을 펼치다가 종이 사이에 눌려져 있던,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던 그 봄날의 꽃.
그 처연한 형상에 강렬히 매료되어 그리게 된 것이 이 그림이다.
꽃의 일생처럼 우리의 봄날도 한철이다.
한순간이다.
활짝 피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처져가고 꺾여져 간다.
지금 이순간 누리자.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은 것이다.
지금이 좋은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게 마련이다.
재생, 거듭남이 기다리고 있다.
활 떠난 화살처럼 시간은 금세 흐르고 흘러 망각의 시간 가운데 오래된 기억을 또한번 겨우겨우 끄집어내야 할 듯 하다.
이 전시의 ‘정글’이라는 아티스트 그룹의 탄생 배경에는 ‘묵의형상회’라는 그룹이 있어 가능했다.
1982년부터 2007년까지 홍대 동양화과 선후배 출신으로만 구성되었던 그룹 ‘묵의형상회’가 2007년 나를 마지막 회장으로 25년간의 역사를 끝냈다.
오랜 기간 의미있고 활발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했지만 그룹으로서 좀 더 나은 위상이 정립되지 않고 화단에서도 큰 주목을 끌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룹전을 통해 세상에 내어놓는 발언보다 개인적 역량에 좀더 중점을 두는 시대적 분위기도 뒤따랐다. 점차 그룹 내부의 한계와 자성의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순수 작가정신의 새로운 추구와 지속적인 작업의지 표방, 그리고 홍대출신 위주의 그룹에서 벗어난 학벌타파와 장르타파의 기치를 내걸게 되면서 홍대 동양화과 출신으로만 이루어졌던 ‘묵의형상회’ 그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아티스트그룹 ‘정글’은 탄생되었다.
젊은 날 방황의 끝을 나는 이 ‘묵의형상회’라는 단체에서 다시 시작하였다.
이곳에는 어디에도 타협하지 않은 재야의 고수들이 있었고 늘 마음이 따뜻하고 기센 선후배들이 함께 있어 든든하고 행복했었다. 사랑이 있었고 배려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지금은 정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묵의형상회가 있었기에 정글이 탄생한 것이고 새롭게 거듭나고 부활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더 감사하며 시리고 아파도 늘 봄날처럼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야겠다.
찰나찰나가 다시 오지 않을 봄날이기에, 오늘이 내일을 만들기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