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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10)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죽이고 ‘셀프 황제’ 자리에 올라 돌아온 코모두스를 맞은 로마의 ‘민심民心’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민심은 천심(天心)이라는데, 민심이 그리도 변덕스러운 것이라면 천심도 그렇게 변덕스러운 것인가 보다. 
 

로마로 입성하는 코모두스를 시민들은 침묵 속에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맞는다. 찬바람이 싸하다. 그랬던 로마 시민들은 코모두스 황제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폐지해버렸던 콜로세움 검투경기를 부활시켜 신나는 ‘즐길거리’를 제공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을 펴고 환호한다.

손을 흔들며 콜로세움 경기장에 입장하는 코모두스를 향해 야유 대신 환호를 보낸다. 능라도 경기장에 입장하는 김정은을 향해 열광하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이다. 찬바람은 그렇게 봄바람으로 바뀐다. 

눈 녹듯 녹은 민심 덕분에 자리를 잡을 것 같았던 코모두스의 치세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검투 노예’ 막시무스 한명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뒤집힌다. 그러자 봄바람으로 변했던 민심이 찬바람을 넘어 광풍으로 돌변한다. 황제에게 열광했던 시민들이 한순간에 변해서 황제를 죽이러 돌아온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그러나 코모두스의 몰락을 갈망하던 ‘민심’도 잠시뿐이다. 정작 코모두스가 그들의 바람대로 막시무스와의 결투에서 시체로 나뒹굴자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는 대신 입을 닫는다. 얼마 전 로마에 입성하던 코모두스를 맞이하던 그 찌푸린 표정들로 돌아간다. 민심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제 바람은 또 어떻게 변할지 알 길이 없다.

민심이란 그렇게 종잡을 수 없다. 중세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에 온갖 ‘통치의 기술’을 제공했던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The Prince)」 25장에서 ‘민심’의 무서움을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민심이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운(運)의 여신(女神) 포르투나(Fortuna) 같은 것이었다.
 

여신 포르투나는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세상의 모든 행운을 안겨주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거둬버리고 액운을 안기기도 한다. 또한 ‘포르투나’라는 것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항상 돌고 돈다. 위아래가 따로 없다. 좋은 운과 나쁜 운은 항상 바퀴처럼 돌아간다.

권력자는 끝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멋모르고 올라앉은 메뚜기 한 마리와 같은 것이라고 ‘정치 기술자’의 한계를 토로한다.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가고 뒤로 굴러갈 때 자기도 부지런히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뛰어내리지 않으면 결국은 수레바퀴에 깔려죽는 것이 민심과 권력의 관계다.

코모두스는 황제의 외아들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리고, 아버지 황제를 죽여도 문제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행운까지 누린다. 포르투나 여신의 장난이라면 장난이다. 그런데 포르투나 여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막시무스를 죽음에서 살려 코모두스를 파멸로 이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포르투나 여신(민심)을 관리하는 기술을 설파한다. “포르투나를 초월하려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마라. 의지(will)와 능력(talent)으로 포르투나에 정면으로 맞서서 싸워라.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 구부릴 수는 있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 여신의 변덕조차도 군주의 능력과 의지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독재자들이 즐겨 채택했던 마키아벨리즘의 뿌리다.

민심에 대응하는 코모두스의 방식은 단연 마키아벨리스럽다. 싸늘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공짜 빵을 나눠주고 ‘신나는’ 검투경기를 제공한다. 마키아벨리적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위기상황에서 마키아벨리스트 군주는 백성을 무력과 공포로 다스린다. 코모두스도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 음모에 연루됐음직한 모두를 잡아들이거나 처형한다.

그리고는 막시무스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1대1의 결투쇼를 펼치는 ‘잔재주’를 부린다. 요동치는 민심을 잔재주로 잠재우려 하지만 이번에는 안 먹힌다. 제 분수도 모르고 감히 운명의 수레바퀴를 막아선 사마귀 꼴이 된다. 그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최후을 맞는다.
 

혹시 마키아벨리적인 팔코 의원 대신 공자(孔子)나 노자(老子)가 코모두스 옆에 있었다면 무력으로 반대자들을 때려잡고 막시무스와 결투쇼를 벌이는 대신 막시무스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 모든 로마시민과 원로원의 소리를 경청하는 ‘인(仁)’과 ‘덕(德)’으로 성난 민심을 잠재우거나 하야(下野)하라고 조언했을 듯하다.

공자의 ‘덕치(德治)’가 옳은 것인지, 마키아벨리즘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상 ‘덕치’나 마키아벨리즘이나 현실정치에서 거둔 성적표는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치자들 주변에 항상 점성술사, 주술사, 점쟁이들이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키아벨리도 피렌체 군주들 옆에 득실대는 점성술사와 주술사들이 내놓는 ‘신비주의적’ 정책들이 못내 걱정됐는지 “군주는 변덕스러운 포르투나에 맞서 싸워야지, 포르투나를 ‘초월(transcend)’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듯하다. 

지난 대선 때 돌출했던 무당, 굿, 법사 논란이 의심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마키아벨리즘도 불안하지만, 마키아벨리도 걱정한 ‘신비주의’는 더욱 불안하다. 15세기 마키아벨리가 걱정했던 군주의 ‘신비주의’를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기우(杞憂)라고 믿자. ‘덕치’가 어렵더라도 ‘신비주의’는 아니지 않겠는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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