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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15)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아들 코모두스라는 2명의 황제를 보여준다. 철학가 뺨치는 지혜를 뽐냈던 아우렐리우스가 ‘정치가(statesman)’라면,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전형적인 ‘정치인(politician)’이다. 그럼 정치가와 정치인의 차이는 뭘까.

 

정치인은 정치를 입신양명과 부귀영화의 통로로 사용하고, 자신이 가진 권력의 크기를 즐긴다. 반면 정치가는 공동체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희생을 통해 그 비전을 실현한다. 그래서 정치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크기만큼 고통스러워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치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정치가는 고통스러워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대개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 3가지 성격의 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타협한다. 해야만 하는 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 아무 걱정 없겠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보통 사람이 아닌 권력자가 ‘해야만 하는 일’을 외면하고 ‘하고 싶은 일’에 매달리면 그 폐해가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니 문제가 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일흔 노구를 이끌고 왕궁을 떠나 눈보라 치는 북부전선에 직접 달려가 병사들을 진두지휘한다. ‘피비린내’를 누구보다 싫어한 이상주의자 황제였지만 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로마의 안위를 위해 ‘사랑하는 아들’ 코모두스 대신 믿음직한 막시무스 장군을 후계자로 낙점한다. 모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일들이다.

반면 로마제국 권력 서열 2위 코모두스 황태자는 게르만과의 살벌한 전투현장을 지켜야만 하지만 피하고 싶다. ‘탱자탱자’하면서 안락한 호화 마차에 누워서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전선에 도착한다. 전투가 벌써 끝났냐고 한바탕 ‘주접’을 떨고, 아쉬움을 달래듯 병사들과 ‘칼싸움 놀이’를 즐긴다.
 

아버지 황제를 목졸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코모두스는 콜레라가 창궐하는 그리스 지역을 찾아 고통받는 국민들을 위로하고 돌봐야만 하지만, ‘해야만 하는’ 그 일은 고달프고 위험하다. 황제에게 욕질 해대고 민심 흉흉한 그런 곳은 가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원로원에 떠넘기면 그만이다. 

대신 안전한 로마에서 그가 베풀어준 검투경기에 환호하는 시민들로 들어찬 콜로세움에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검투경기를 즐긴다. 코모두스에게는 이들만이 ‘진짜 로마시민’인 셈이다. 황제가 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은 제쳐둔 채 하기 쉽고 하고 싶은 일만 하니, 로마제국에 망조(亡兆)가 들 수밖에 없다. 

1905년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스케 장군은 일본군 6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쟁취한 뤼순전투의 승리에서 아들 2명의 목숨도 함께 걸었다. 자기 아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돌격하다 죽은 6만명의 병사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어 죽을 때까지 자기 아들들 무덤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한국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장남을 잃었다. 북한 땅에서 숨을 거두고 시신조차 찾지 못한 중국의 수많은 부모 마음을 헤아려 장남의 시신도 북한 땅에 묻고 고향으로 데려오지 않았다. 노기 장군이나 마오쩌둥이나 권력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고통이다. 

권력의 크기만큼 ‘해야만 하는 일’의 고통의 크기도 커진다. 로마를 위해 아들 코모두스를 후계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만 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고통과도 같았을 듯하다. 권력자가 ‘하고 싶은 일’을 피하고,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 자신도 살고 나라도 산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권력자들의 모습이 왠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보다는 코모두스를 닮은 듯하다.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대단히 많아 보이는데, 정작 그들이 권력의 크기만큼 치르는 희생과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코모두스처럼 정작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음지는 피하고 양지만 즐겨 찾는다. ‘해야만 하는 일’은 미뤄두고 ‘하기 쉽고 하고 싶은 일’만 골라 하는 듯하다.

유난히 혀끝이 매운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네가 그 일을 해야 할 때 그 일을 안 하면 그 일이 평생 너를 쫓아다닌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전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에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 사람들이 낙향한 그의 집 앞까지 쫓아와서 24시간 욕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전임 대통령이 그 ‘국민들’을 경찰에 고발하니 이 또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전임 대통령들이 걸어온 불행한 궤적이 그려진다. 새 대통령도 혹시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보다는 ‘하기 쉽고, 하고 싶은 일들’만 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정치가’는 잘 안 보이고 ‘정치인’들의 모습들만 어지럽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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