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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3)

코모두스는 게르만족과 대치 중인 전선의 군막(軍幕)에서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교살하고 황제 자리에 올라 로마에 입성한다. 아버지를 죽인 코모두스의 로마 입성 행진은 화려하고 장엄하기 그지없다. 유럽정복에 나선 히틀러가 베를린 개선행진 행사의 모델로 사용했다는 그 유명한 장면을 천재 감독 리들리 스콧이 재현해준다.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 자리를 찬탈한 코모두스는 로마에 장엄하게 들어온다. 그 장엄함은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온 코모두스가 지구 끝까지 정복하고 돌아온 개선행진인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로마 시민들이나 원로원 모두 뭔가 석연치 않고 찝찝해한다. 로마 시민들과 원로원 의원들의 냉랭함에 코모두스는 뻘쭘하고 불안하다.

 

정통성을 의심받는 독재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카드가 3S 정책(Sportsㆍ ScreenㆍSex)이다. 시민들에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정치보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3S를 제공해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게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골자다.

 

가령, 전두환 정권도 기획했던 3S의 원형은 포르투갈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Antonio Salazar)의 1930~1960년대 독재정치를 떠받쳐준 3F 정책(Futebol 축구ㆍFatima 종교ㆍFado 엔터테인먼트)으로 알려져 있다. 3S든 3F든 모두 시민이 재미있는 걸 즐기느라 바빠서 정치 ‘따위’엔 관심조차 가질 틈을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두환이나 살라자르에 앞서 어쩌면 ‘우민화 정책’의 시조는 코모두스였는지 모르겠다. 시민들이 자신의 ‘구린’ 집권 과정과 밀실에서 오가는 검은 거래를 세세히 알아서 좋을 것 없다.

 

코모두스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폐지했던 검투시합을 부활시킨다. 지금으로 치면 청와대 행사기획 전문위원쯤에 해당할 듯한 카시우스는 새 황제 즉위 축하공연을 거대한 검투시합으로 기획하고 화끈하게 죽고 죽일 검투사 수배에 나선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로마 시민을 마비시키기는 데는 ‘살육극’ 이상 가는 게 없다는 것을 코모두스와 카시우스는 잘 알고 있다. 구경은 뭐니뭐니 해도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최고다. ‘집단살육극’이야말로 모든 사고를 마비시키는 최강의 ‘즐길거리’다.

 

 

 

 

거기에 더해 ‘집단 살육극’의 콘셉트를 ‘전쟁’으로 잡는다. 콜로세움에서 BC 202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과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이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벌였던 포에니 전쟁의 ‘자마(Zama) 전투’를 재현한다.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는 집단살육극은 로마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극강의 즐길거리다. 

 

이제 스키피오의 전차부대가 야만인 카르타고의 악마 한니발의 군대를 도륙하는 모습을 시시한 CG나 연극 아닌 ‘실사’로 보여줄 것이다. 스키피오 전차부대의 등장에 콜로세움에 모인 로마 시민들은 희열에 들떠 열광한다. 새 황제 코모두스의 석연치 않은 집권 과정과 통치능력에 갖고 있던 불안감은 까맣게 잊는다.

 

인간은 평화를 갈구하면서도 전쟁에 열광하는 양면성을 지닌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플라톤의 탄식처럼 ‘오직 죽은 자만이 마지막 전쟁을 볼 수 있다’고 할 만큼 이토록 끈질기게 전쟁을 할 리가 있겠는가.

 

코모두스가 콜로세움에서 재현한 ‘자마 전투’가 벌어진 BC 202년은 항우와 유방이 중국 대륙의 패권을 놓고 벌인 초한대전의 최후 결전이었던 해하전투(垓下戰鬪)가 터진 해이기도 하다. 지구 이쪽저쪽에서 수백만이 각자의 장군과 왕들, 그리고 제국의 영광을 외치며 열광적으로 죽어갔다.

 

202년에서 숫자 2만 보탠 2022년, 느닷없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이리저리 둘러대는 복잡한 명분 밑바닥에는 ‘소련 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향수와 복원 욕구가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세계가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에 전전긍긍한다.

 

아인슈타인이 “3차 세계대전에는 인류가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울지 확신할 수 없지만, 4차 세계대전에는 돌과 몽둥이를 들고 싸울 것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중얼거린 그 끔찍한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누구도 물러서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기세다. 묘한 것은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는데, 각국의 지도자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즐기는 듯하다는 점이다. 

 

 

 

 

이 느닷없는 전면전쟁에 열광하는 이들도 있다. 우크라이나를 돕겠다고 자비(自費)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뛰어드는 외국 ‘의용군’이 수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특전사 출신 유명 유튜버도 요란스럽게 달려갔다고 설왕설래한다. 약소국이라고 무조건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정의롭기 때문에 약소국이 된 것도 아닐 텐데 조금은 당황스럽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전사모(전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참전의 대의명분이 무엇이 됐든 사람 죽이겠다고 떨쳐나서는 모양은 왠지 석연치 않다. 인간들에게 뿌리깊은 ‘전쟁사랑’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해서 섬뜩하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 쌍둥이 두 아들을 보낸 미국의 어느 퇴역장교가 전선의 두 아들에게 보냈다는 편지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사람이 목숨 바쳐 지켜야 할 대의(大義)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를 죽여야 할 만한 대의는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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