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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8)

영화 ‘글래디에이터’ 최고의 빌런은 분명 코모두스인데, 다른 영화들의 ‘빌런’들과는 달리 괜히 짠한 느낌이 든다. 코모두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라는 배우의 느낌 자체가 왠지 쓸쓸하고 슬퍼보여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코모두스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강 헤아려 보아도 다섯번의 ‘배신’에 놀라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좌절하고 분노한다. 
 

세상의 이치라는 게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또 다른 원인이 되는 것이라면 코모두스는 ‘빌런’이기 때문에 배신당하고, 배신당해서 더욱 ‘빌런’이 되는 듯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코모두스는 ‘안습형 빌런’이다.

■배신❶ = 게르만과의 처절한 전투가 다 끝나서야 전선에 도착한 코모두스는 막시무스 장군에게 ‘내가 다음 황제가 됐을 때도 지금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처럼 충성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진정 어린 부탁에 ‘이번 전투가 마지막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고 코모두스 황태자의 청을 거절한다. 막시무스를 형제처럼 아끼고 가깝다고 믿어왔던 코모두스에게는 더 이상 당황스러울 수 없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배신❷ =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만난다. 황제는 ‘너를 사랑하지만 황제 자리는 막시무스에게 물려줘야겠다’며 오랜 고민의 결론을 통보한다. 아픈 뒤통수를 또 맞은 코모두스는 정신이 혼미해질 듯하다. 황제 자리는 당연히 외아들인 자신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코모두스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오열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코모두스를 안아주지만 코모두스의 좌절감은 순식간에 배신의 분노로 바뀌고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는 복수를 한다. 아버지가 자신을 배신했으니 자기도 아버지를 배신할 뿐이다. 살부殺父의 죄책감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배신❸ =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코모두스는 나름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품는’ 좋은 황제로 모두의 칭송을 받고 싶다. 누구나 권좌에 오르면 그런 꿈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은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충복이자 전쟁영웅으로 코모두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막시무스에게 열광한다. 막시무스가 코모두스를 죽여주기를 열망한다. 
 

콜로세움과 로마 거리는 ‘막시무스’ 연호로 들끓는다. 아버지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을 배신한 아버지를 죽이고, 로마 시민들의 ‘어버이’가 되고자 했지만, 코모두스의 자식들인 로마 시민들은 그들의 ‘어버이’인 자신을 철저하게 배신한다. 또 한번 좌절하고 배신감에 치를 떤다.

■배신❹ = 누이인 루실라는 코모두스에게는 누이이자 연인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다. 항상 코모두스 옆에서 그를 감싸주고 빈 곳을 메워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루실라의 아들 루시우스는 코모두스에게 아들과 같은 조카다. 아마도 다음 황제로 점찍은 듯하다.

그런 루실라가 그녀의 과거 연인이기도 했던 막시무스와 원로원이 작당한 쿠데타에 가담한 것이 드러난다. 코모두스로서는 누이와 연인, 그리고 어머니 모두로부터 배신당한 충격이다. 불면의 밤을 지새운 코모두스의 밀랍 인형 같은 얼굴은 ‘빌런’을 오히려 동정하게 한다.

■배신❺ = 코모두스는 이제 로마 시민들의 영웅이 된 검투사 막시무스와 콜로세움에서 정정당당한 결투를 벌여 꺾어버림으로써 민심의 이반을 막을 계획을 세운다. 결투에 앞서 막시무스의 등에 깊은 상처를 내놓고 승부조작을 기획하지만 여의치 않다. 한쪽 팔만 겨우 쓰는 막시무스에게도 일방적으로 밀리다 칼까지 놓친다.

칼을 놓쳐버린 코모두스는 결투장을 둘러싸고 있는 근위병들에게 칼을 달라고 소리친다. 근위병이 칼을 건네려는 순간 근위대장이자 심복인 퀸투스가 제지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전후 사정 다 아는 퀸투스가 코모두스를 배신하고 가장 공정하고 엄격한 검투심판을 코스프레한다. 코모두스는 그렇게 최후를 맞는다.

코모두스는 아마 저승에서 다섯번 모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거나 ‘뒤통수 된통 얻어맞아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마당 한구석에 놓아둔 도끼가 제 스스로 날아와 내 발등을 찍진 않는다. 뒤통수를 조심하는 사람의 뒤통수를 갈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코모두스는 자신이 도끼를 잘못 다뤘을 뿐이고, 뒤통수를 조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배신背信이라는 말의 영어 ‘betray’의 본래 의미가 흥미롭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모습이나 본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나 막시무스, 로마 시민들, 그리고 루실라와 퀸투스까지 모두 ‘어쩔 수 없이’ 코모두스에게 자신들의 본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잘못은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본마음을 드러내도록 만든 코모두스에게 있다. 그들이 진심으로 코모두스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든 본인의 잘못일 뿐이다. 

세상이 어지럽다 보니 그런지 모르겠다. ‘배신’하고 ‘배신’당했다는 기사들이 유난히 많다. 부모형제, 부부, 연인, 사장과 직원, 정치인들 사이의 배신을 둘러싼 고소고발도 많고 복수극에 살인까지 벌어진다.

국민들도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고 탄핵을 꺼낸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 편이 돼야 한다는 요구는 ‘교주(敎主)’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배신은 자신의 부족함이 자초(自招)하는 결과일 뿐인 듯하다. 배신당했다고 코모두스처럼 분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모습도 한번 돌아볼 일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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