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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32)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우울증 ...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My S.O. has got depression [ツレがうつになりまして], 2011) 영화는 제목처럼 우울하기 보다는 반대로 밝고 사랑스러운 내용들로 차 있다. 바로 그것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내용인 듯 하다. ‘우울증이라고 반드시 우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타카자키 미키오(사카이 마사토)는 신혼 5년차의 건실한 남자이다.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는 매일 아침 식사도 준비하고, 자기가 먹을 도시락은 요일마다 늘 다른 반찬을 싼다. 그렇게 꼼꼼해도 아침마다 삐진 머리카락은 어쩔 수 없어서 부인이 출근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머리카락을 눌러준다. 매일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전철을 타고 스트레스 받는 회사를 다니더라도 부부는 알콩달콩 정답게 살고 있다.

 

부인 타카자키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는 만화를 그린다. 남편이 만화가로 성공할 거라는 희망과는 다르게 인기가 없는 만화는 연재하다가 일찍 종결됐다. 집에서 반려동물로 키우는 이구아나(이름도 ‘이구’이다)와 놀던지 머리를 쥐어짜면서 만화를 그리는 게 하루 일과이다.

 

하루코는 남편을 부를 때 ‘츠레’라고 한다. 정겨움의 표시인데, 우리 정서로 보면 ‘자기’나 ‘짝지’에 해당하겠다. 영화의 일본어 제목은 ‘츠레가 우울증에 걸렸어요.’이다. ‘츠레(ツレ)’는 일본어에서 외국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가타카나 표기인데, 그것 보다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히라가나인 ‘つれ[連れ]’를 자주 사용하고, 동반자라는 뜻이다. 한글 영화 제목으로는 남편이라고 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

 

요즘 미키오의 상태가 이상하다. 잠을 잘 못 자고, 식욕도 떨어져서 집에서나 회사에서 밥을 거의 안 먹는다. 집을 나서서 걷다가 동네 쓰레기 모아놓은 곳을 보면서는 울적한 마음마저 든다. 저 쓰레기처럼 나도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요즘따라 머리가 계속 아프고, 등짝도 아프다. 회사에서는 고객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있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다. 걱정이 되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다가 서서히 좋아진다고 하며 약을 잘 복용하라고 준다.

 

우울증(Depression)은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사회 요인, 심리 요인, 생물학 요인 및 어떤 질병에 뒤따르는 신체 요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미키오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들이 모두 우울증 내용들이다. 자기에 대한 비관과 고통으로 심하게는 자살 기도를 하게 된다.

미키오가 회사 옥상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부인에게 자꾸 죽고 싶다고 하는 것들은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단순한 우울한 감정이나 짧은 기간 기분이 처지는 느낌 정도로는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정확한 진단 기준을 만들어서 이용한다. 주로 많이 쓰는 진단 도구는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간하는 DSM(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 1952년에 만들어질 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전쟁 후유증을 많이 앓았기 때문에 명확한 진단과 치료 기준을 세우기 위해 발간이 됐다. 몇 년마다 연구되어 정리된 내용을 고쳐 기록하기 때문에 진단 기준이 조금씩 달라져 왔는데, 2013년에 출간된 DSM-5가 최근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우울증과 세로토닌

 

미키오가 찾아간 의사가 말한 것처럼 우울증 환자들은 공통으로 세로토닌 결핍 상태를 보인다. 이 물질은 사람의 뇌 신경끼리 전달되면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모자라면 그 반대인 우울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치료제로 세로토닌을 투여하거나 신경에서 재흡수가 안 되게 하여 전달되는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보통 2주정도 복용하면 효과가 나타나고, 4주면 충분한 농도에 이르게 된다. 되도록 빨리 끊지 말고, 6개월 이상 충분히 복용하는 게 좋으며,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끊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외 치료법으로 ‘전기경련요법’이 있는데,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고 한다든지 자살 충동이 심할 때, 약물에 반응을 안 할 때 사용하게 된다.

 

과도한 업무 때문이라고 생각한 미키오는 회사에 얘기해서 조금 편한 부서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생각 끝에 사표를 낸다. 하루코는 남편의 회복을 위해 위로와 격려의 말을 자주 하고, 세로토닌 부족이라는 말을 듣고 세로토닌의 원료가 되는 트립토판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달걀, 바나나 같은 음식들로 밥상을 채운다. 세로토닌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으로 동물성으로는 달걀 흰자위, 우유 또는 치즈, 연어 등이 있고, 식물성으로는 견과류(아몬드, 땅콩, 해바라기 씨)와 콩류(두부, 낫토), 시금치, 바나나가 있다.

 

이 신경전달물질은 뇌뿐만 아니라 소화 작용이나 뼈 만들기 등 우리 몸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중요한 작용을 한다. 특히 뇌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고 해서 중요하긴 한데, 식이요법을 과하게 신뢰하는 경향은 올바르지 않다. 음식으로 많이 먹는다고 모두 뇌에서 세로토닌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보조 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비타민이나 효소 등의 영양분도 있고, 햇빛이나 좋은 감정, 운동 등도 트립토판이 세로토닌으로 전환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먹는 것 이외에도 이러한 것들이 같이 동반되어야 한다. 어쨌든 약도 꾸준히 복용하고, 하루코의 도움에 힘입어 미키오는 좋아진 느낌이 든다. 항상 미소를 띠게 되고, 식욕도 늘었다.

 

우울증은 가족의 지지가 중요

 

하지만 미키오의 상태는 늘 불안하여 좋아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우울감에 빠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혼자 있어 외로운 이구(애완동물 이구아나)한테도 미안하고, 하루코가 만화 연재를 더 못하는 것도 자기 탓인 듯 하고, 회사를 그만 둬서 집에 도움이 못 되는 것도 죄스럽다. “나 하나 없어져도 괜찮을 거야” 생각하며,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목욕탕에서 목을 매달기도 한다.

 

동창의 그림 전시회에 갔다가도 자신이 초라해져서 되돌아와 버리는 하루코. 남편도 문제지만 자신도 힘들고 서글프다. 둘 다 수입이 없어서 조금씩 힘들어지자 하루코는 출판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해본다.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 무슨 일이든 맡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제까지 남에게 알리지 않고 숨기면서 지냈던 남편의 병을 얘기해 버리고나서는 하루코 자신도 먹먹해 진다. 기적은 이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출판사 간부가 오더니 자신도 우울증을 앓아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이해한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조언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내가 왜 이런 흔한 병을 숨기려고만 했을까? 그래서 결심한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어. 그러면 ‘우주 감기’라고 하자!”

 

해가 바뀌고 미키오는 아주 조금 안정을 찾지만 완치된 것은 아니다. 하루코는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삽화로 넣어 책으로 만들어본다. 남편의 우울증 이야기, 자기가 겪은 것들, 애완동물 이구의 모습 등으로 엮어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키오는 병을 극복한 내용으로 강연 요청을 받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변과 공유하고 싶었던 그는 기꺼이 응하고,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강당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모두가 공감하며 박수를 보낸다.

“저는 완치된 게 아닙니다. 그저 같이 지내려고 할 뿐입니다.”

 

만화가 겸 에세이 작가인 호소카와 텐텐씨가 실제 우울증을 앓는 남편과 만화를 그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2006년부터 2011년 사이에 출판했던 이야기를 엮은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여러 증상들이 보이고, 병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는 장면, 그리고 남편 미키오를 지지해주는 말들이 나온다. 우울증 치료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내용들이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함께 가지고 간다는 편안한 생각, 꾸준히 복용하는 약물, 주변의 지지, 이런 것들이 치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참 현명한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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