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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13) 기구한 운명의 코끼리 사나이 ... 신경섬유종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존은 태어날 때는 괜찮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얼굴이나 몸통, 팔과 다리에 기형의 모습을 띠게 되어 사람들이 보면 무서워하고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큰 자루에 눈구멍을 뚫어서 쓰고 다녀야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극빈자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어느 유랑 서커스단에 팔려 간다.

 

이마는 크게 돌출되어서 코끼리 이마를 연상하게 하고, 뒤통수는 엄청나게 불룩 튀어나왔고,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어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기괴한 모양은 머리뿐만 아니라 두꺼운 그의 오른팔과 두 다리는 코끼리의 것처럼 두껍게 부풀었고, 몸통에는 많은 혹들이 엉켜있었다.

 

서커스단장은 '어머니가 그를 임신했을 때 코끼리에게 밟혀서 그 형상을 하고 태어났다. 억울하게 죽은 코끼리의 영혼이 그에게 들어갔다.'와 같은 엉터리 말을 해대며 관객들에게 소개한다. 그런 신비감을 줄수록 관객들이 놀라서 더 많은 박수를 보내게 되고, 그가 등장하는 시간은 큰 인기를 얻어 서커스단에 수입을 많이 올려주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조셉 메릭 또는 존 메릭이지만 서커스 단장은 코끼리 인간, 즉 ‘엘리펀트 맨’으로 불렀고,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지칭되었다. 인기몰이를 하면서 돈을 벌게 되자, 더 욕심이 난 단장은 “죄지은 자들은 이 자를 때리고 그 죄로부터 구원받으라!”하면서 구경꾼들에게 돈을 받고 존을 때리게 만든다. 이렇듯 서커스단에 가장 인기 프로그램으로 등장하면서도 매 맞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짐승 같은 취급을 당해야 했다.

 

어느 날 소문을 들은 왕립 런던병원의 외과의사 프레드릭 트레브스(안소니 홉킨스)는 무언가 새로운 연구거리를 찾을 겸 호기심으로 서커스단을 찾아간다. 거기에서 존을 만나게 되며 얼마의 돈을 주고 집으로 데려가서 함께 지낸다. 그가 연구할 거리가 많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모인 사례 발표에서 트레브스 박사는 존을 보여 준 후 이제까지 보아왔던 것과 달리 심한 유두종 이상 증식과 머리뼈 양성 종양 등이 원인이라고 설명하면서 큰 박수를 받는다. 의학계에서 이런 사례발표는 새로운 이론이나 보기 드문 임상 사례들이 있을 때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모인 의사들은 다들 놀라고, 발표하는 트레브스 박사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존의 신체 기형 원인은?

 

트레브스 박사가 존의 사례를 들어 발표한 ‘유두종(Papilloma)’이란 사마귀 피부병 같이 피부가 브로콜리 모양으로 이상 증식을 하는 것으로, 겉으로 보면 젖꼭지처럼 튀어나와서 ‘유두’라는 이름이 붙여진 피부질환이다. 하지만 최근에 과학자들이 박물관에 조셉 메릭을 기념하기 위해서 전시한 뼈를 분석해보고는 ‘신경섬유종’이라고 밝혀냈다. 트레브스 박사가 발표한 것처럼 유두종이 아니었던 것.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이것을 밝히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신경섬유종(Neurofibromatosis)은 독일의 의사이면서 병리학자인 폰 레클링하우젠(Friedrich Daniel von Recklinghausen, 1833~1910)이 1882년에 처음 보고해서 과거에는 ‘폰 레클링하우젠 신드롬(von Recklinghausen syndrome)’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트레브스 박사는 아마도 그 이전에 발표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신경섬유종(Neurofibromatosis)은 유전(상염색체 우성)되기도 하고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는데, 몸에 커피색 반점을 보이거나 작은 돌기들이 몸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존 메릭의 경우처럼 심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얼굴이나 몸의 피부가 늘어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하고, 뼈에도 변형이 와서 (척추 측만증) 등 다양한 증상들을 일으키지만 지능은 정상이다.

 

아직까지 효과 있는 치료법은 없다. 피부 문제가 생기면 수술을 하거나 척추옆굽음증이 생기면 교정을 하는 정도가 유일한 대책이다.

 

처음으로 맞는 인간다운 대접

 

트레브스 박사가 존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 박사의 부인은 그를 보고 눈물을 지으며 친절하게 대해준다. 자신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 존은 감격을 하고, 박사는 그런 광경에 마음이 움직인다. 박사는 자신의 행동이 선인지, 악인지 혼란스러워 하던 중, 그를 단순히 연구 대상이 아닌 존엄성 있는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커스단에 거액을 주고 병원에 장기 입원 환자로 등록해서 지내게 해준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이 무서워 말을 안 하던 존은 성서 구절도 줄줄 외우고, 세익스피어의 글도 인용하는 등 똑똑하고 섬세한 감정을 보여준다. 조금씩 사람들은 짐승의 탈을 쓴 악마에서 자신들과 같은 인간으로 보고 그를 존중해주기 시작한다. 유명 배우와 당시 빅토리아 여왕까지 후원을 해주면서 존은 런던 병원에서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어느 날 병원 침실로 돌아온 존은 오랜만에 평온함을 느낀다. 어머니의 사진도 보고, 자기가 만든 성당 모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베개도 치우고는 처음으로 등을 침대에 붙이고 누워본다. 그는 등에 난 혹들 때문에 제대로 누워서 잠을 잔 적이 없고 꼭 베개를 여러 겹 대고 기대어 자야 했다.

 

고생했던 지난 시절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 인간답게 지내게 된 지금 이 순간까지의 짧지 않은 시간들을 침대에 누워 되돌아본다. 이 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된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곡인, 사무엘 바버가 작곡한 ‘현을 위한 아다지오(Adagio for strings)’의 잔잔한 선율이 흐른다.

 

존 메릭, 아니 조셉 메릭은 입원해 있던 런던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나오는데, 기록으로는 1890년 4월, 27세 나이로 되어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까, 추정했으나 훗날 그의 뼈대와 상태를 분석한 결과 신체구조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한다.

 

“난 코끼리가 아니야. 사람이란 말이야.” 그의 외침을 영화로 표현하고자 했던 이는 바로 난해한 영화로 유명한 데이빗 린치 감독이다. 평소 그의 작품과는 다르게 이해하기 쉬운 영화로 만든 이유는 장애, 인권, 사랑을 전달하기에는 비유나 암시로 비틀어서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1800년대 산업화와 빈곤, 인권에 대한 비판 시각을 조금씩 화면에 비추곤 했다. 감독은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나 싶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흑백 영상으로 상영되었는데, 이는 강조와 절제를 통해 컬러 보다 더 깊은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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