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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34) 신경성 식욕부진증 ... 가족·주변의 지지가 치료요소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한 개인 병원에 온 엘렌(릴리 콜린스)은 새로운 의사 윌리엄 베컴 박사(키아누 리브스)와 면담을 하지만 여기라고 별거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신체검사를 하는데 엘렌의 몸은 뼈에 가죽만 씌운 듯이 앙상하고, 생리한 지도 꽤 됐다고 한다. 소매를 걷어보니 팔에는 여성임에도 털이 많이 나 있다. 엘렌은 “털 난 여성도 꽤 있잖아요”하면서 자기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대꾸하며 베컴 박사에게 쏘아댄다. 그러자 박사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네가 몸에 털이 많이 난 것은 지방이 없어서 체온을 높이려는 신체 현상이란다"하면서도 더 말을 잇지 않는다. 이런 환자들을 많이 겪어봤듯이 설명을 해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투 더 본(To The Bone, 2017)’은 이렇게 전개된다. 섭식장애를 가진 7명의 젊은이들과 그 부모, 그리고 다소 독특한 치료법을 사용하는 베컴 박사..... 영화는 이들을 중심으로 섭식장애가 어떤 건지, 그 괴로움, 쉽게 치료되지 않는 이유까지 보여주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을 시작한다. 영어 제목 ‘To the bone’은 해석하면 ‘뼈를 위하여’가 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의 구호답게 가죽이 뼈에 달라붙을 때까지 안 먹겠다는 뜻인가?

 

신경성 식욕부진증

 

정신의학 영역에서 섭식장애(Eating disorders)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현대인들에게는 생각보다 많고 잘 치료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질환은 보통 잘 안 먹으려고 하는 병과 너무 많이 먹는 병으로 나뉜다.

 

전자를 과거에는 ‘거식증(拒食症)’이라고 했으나 잘못 이해하면 ‘거식증(巨食症)’, 즉 지나치게 많이 먹는 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원인을 드러내는 명칭으로 바꾸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해서 최근에는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으로 부르고 있다. 후자는 반대로 ‘신경성 폭식증(Bulimia nervosa)’라고 한다.

 

‘카펜터스(Carpenters)’라는 오래 전 유명한 듀엣 가수 중 한 명인 캐런 카펜터가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사망하였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이다. 1970년대 전후 ‘Top of the world’ 등을 히트시키며 감미로운 팝송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과 만났던 카펜터스는 남매로 이루어졌고, 캐런은 여동생이다.

 

1960년대 경쾌한 팝송을 불렀던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and the Papas)’는 남성 둘, 여성 둘로 이루어진 4인조 보컬이다. 그들은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을 세계적인 반열로 올려놓았고, 린친샤(임청하),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주연한 ‘중경삼림Chungking Express, 1994)’에 나오는 음악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을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여성 보컬인 캐스 엘리엇은 고도비만으로, 33세의 한창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다. 전문가들은 아마 신경성 폭식증이 있었을 것이고 비만, 동맥경화로 진행되면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본다.

 

유명한 가수였던 카펜터스의 캐런과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캐스는 정반대의 섭식장애를 가졌던 것이다.

 

배가 고프거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먹는 게 정상인데 왜 이들은 안 먹으려고 할까?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앓는 사람들의 세계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은 몸무게가 느는 것을 죽음 보다 더 싫어한다. 조금이라도 먹게 되면 금방 손을 넣어서라도 토해버리고, 설사제나 이뇨제를 자주 사용해서라도 체중을 줄이려고 한다.

 

영화에서는 바싹 마른 엘렌의 몸 상태나 살이 얼마나 빠졌나 하면서 자꾸 손으로 팔뚝을 쥐어보는 버릇, 심하게 윗몸 일으키기를 해서 등에 멍이 든 것 등을 통해 이들의 특징들을 일부 보여준다.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숙소에서 엘렌과 한 방을 쓰는 친구가 몰래 음식을 토하고는 침대 밑에 숨기는 것도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가진 사람들의 흔한 모습이다. 그들은 영양 결핍으로 피부가 건조하고, 뼈는 약해져 젊어서 골다공증에 걸리기 쉽고, 가늘어지는 털과 잘 부서지는 손톱‧발톱을 가지게 된다. 또한 추위를 잘 타는 것은 지방이 적기 때문에 체온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양 부족으로 인한 문제들은 그 외 수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어 절반에서는 일찍 사망하고, 그 나머지도 그다지 좋은 경과를 갖지 못한다.

 

자신을 인식하며 돌아오는 섭식장애

 

영화에서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나 신경성 과식증을 가진 7명의 환자들은 병실이라고는 너무 편한 가정집 형태의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힘든 경우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서로들 체중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하며, 심지어는 서로 비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7명의 일원들 중에는 신경성 폭식증 환자로 보이는 흑인 소녀도 있다. 엘렌은 자기는 괜찮은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치료 환경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어느 날 베컴 박사는 숙소에 있는 일행들과 함께 견학을 간다. 아마도 세상은 살만하고,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만들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마치 빗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영상 속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비를 맞는 모습을 하며 즐거워하는 장면은 특이한 느낌을 준다.

 

엘렌은 일행들과 친해지고 어느 정도 생활에 익숙해지지만,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모르다가 이혼하고 떠난 엄마를 만나고, 품에 안겨서 아기처럼 젖병을 물고 잠들거나 산에 올라 죽을 것 같은 고통 등의 경험을 하며 깨닫는다. 언니가 죽으면 가만 안 있겠다는 여동생, 어떻게 해서라도 치료하고자 하는 부모처럼 주변의 지지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치료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산에서 고통 속에서 뭔지 모를 느낌을 받는 것들은 그만큼 자신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여러 대중 매체들에서 날씬한 아이돌 그룹이나 연예인들을 자주 보여주게 되면서 청소년 혹은 젊은 사람들이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은 강박으로 이어져서 신경성 식욕부진증 같은 질환을 생기게 하는 중요 이유가 된다.

 

영화는 섭식장애를 가진 이들의 모습들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면서 그 해결 방법도 드러내려고 하였다. 많은 질환들이 그렇듯 가족이나 주변의 지지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베컴 박사가 숙소 일행들이 모였을 때 어느 작가의 글을 읽게 하는데, 그것은 엘렌이 나중에 고통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용기를 내는 것은 석탄을 삼키는 것만큼 힘들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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