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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28) '인썸니아' ... 백야 현상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초창기 작품인 ‘인썸니아(Insomnia, 2002)’는 알 파치노가 경험 많은 형사 윌 도너로 나오는 영화이다.

 

그는 수사 결과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내사과의 조사를 받던 중 알래스카에서 케이 코넬이라는 17세 소녀의 살인사건 수사 의뢰를 받고 도망치듯 떠난 것이다.

 

LA 경찰청에서도 경험 많고 실력 있다는 얘기를 듣던 그는 동료 햅(마틴 도노반) 형사를 데리고 알래스카에 도착한다. 죽은 케이 주변을 조사하면서 그가 다니던 학교로 가자고 하자, 현지 경찰들이 웃는다. “지금 밤 10시예요.” 알래스카의 백야 현상 때문에 낮처럼 밝았던 것. 몇 달 동안 이대로 지속된다고 한다.

 

두 명의 파견 형사와 현지 경찰들이 탐문 수사를 벌이면서 숲속에서 용의자로 보이는 놈을 쫓고 있는데, 안개가 너무 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윌은 바로 앞에 용의자의 모습이 보이자 총을 겨누고 쐈지만, 쓰러져 있던 건 동료 형사 햅이었다.

 

경찰서로 돌아가서는 용의자가 햅을 쏘고 도망갔다고 속이고, 부검실을 찾아가서 햅의 몸속에 있는 총알과 자기가 찾아낸 용의자의 총알을 바꿔치기 한다. 그는 호텔 숙소로 돌아오지만 백야 현상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윌은 수사 중에 마을 변두리에 살고 있는 월터 핀치(로빈 윌리암스)라는 소설가가 의심스러워 그가 사는 집을 몰래 찾아간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월터는 도망을 가버리고, 어디에선가 전화를 걸어와 윌에게 모든 걸 알고 있다며 오히려 협박을 한다. 이러는 가운데 함께 수사하던 지역 경찰관 엘리 버(힐러리 스웽크)가 며칠 계속 잠을 못 잤다는 윌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윌 도너 형사가 비리로 조사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훌륭한 경찰은 수사 때문에 못 자고, 나쁜 경찰은 가책 때문에 못 잔다, 는 말이 있죠.”

 

인썸니아(Insomnia)는 정신의학에서 ‘불면증’이란 뜻을 갖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전체 내용과 불면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처럼 아무런 연관성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중의 의미로 이용하면서 영화의 줄거리에 깊은 느낌을 더했다.

 

내사를 받으면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상황에 실수로 동료 햅 형사를 쏘게 되어 괴로운 심정을 백야 현상으로 현장에 도착한 이후 계속 잠을 못 자는 것과 겹치게 한 것이다. 영화는 격렬한 추격 장면이나 반전을 거듭하는 범인과 형사의 두뇌 싸움도 없다. 단순하게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도너 형사의 거듭 되는 죄의식을 따라 가는 게 중요했다.

 

도주하던 핀치에게 총상을 당한 윌이 엘리 버 경찰관에게 남기는 말... 

“경찰은 절대 판단력을 잃으면 안 되네.....”

윌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후배 경찰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비로소 얻은 편안함에 만족한다. “이제, 잠 좀 잘게.”

 

잠은 또 다른 활동 시간

 

안개가 짙어서라기보다는 윌 도너 형사가 잠을 너무 못 자서 햅을 쏜 건 아닐까? 영화 중간에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잠이란 것은 피로가 해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손상된 뼈나 근육의 회복을 돕고, 면역력을 높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키가 크려면 잠을 푹 자는 습관을 들여야 좋다.

 

그리고 감정을 순화시키며 기억력을 보존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는데, 잠이 부족하게 되면 반대로 졸리고, 집중력 떨어지고, 결국 기억력도 감퇴된다.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도 격해지기 쉬우며,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게 오래 지속되면 협심증 등 심혈관 질환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는 잠이란 시간을 죽여 버리는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 생존에 꼭 필요한 행위로 얘기한다.

 

의학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기능을 하는 잠을 36.5℃로 체온이 일정한 것처럼 우리 몸이 안정성을 가지도록 유지하는 항상성(Homeostasis)의 하나로 이해한다. 인체의 여러 항상성을 조절하는 곳은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라는 곳이다. 여기에서 자율신경계와 호르몬 등을 조절하여 에너지 대사 수준이나 체온, 혈압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한다. 수면 주기를 조절하며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시상하부에 있는 교차위핵(Suprachiasmatic nucleus)이 시간과 빛이라는 두 가지 자극을 감지하며 일어난다.

 

잠을 자기 위해서는 졸려야 하는데, 그 졸림(수면 욕구)이라는 신호는 배고프면 생기는 식욕과 같은 것으로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생긴다. 빛은 낮에는 깨어 있게 하고, 밤에는 자게 만드는 시계와 같은 리듬(Diurnal rhythm)을 조절하는 자극이다. 이러한 기전을 통해 잠을 자게 되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가뿐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잠을 자게 될 때 우리가 낮 동안 보고 느끼는 것들은 신경세포의 시냅스 강화를 통해 ‘기억’이라는 추상 형태로 뇌에 저장된다. 잠을 잘 때는 새로 저장된 기억을 담는 신경세포들과 그에 달려있는 시냅스들이 다시 활성화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면서 다른 형식의 복습을 하는 것이다. 다시 활성화된 시냅스들은 장기 기억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험적으로, 쥐에게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자는 동안 뇌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했더니 전날 습득한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 실험 결과를 보였다.

 

잠의 중요한 원리, 렘 수면

 

잠은 낮 동안 열심히 일한 몸과 그들을 움직인 뇌를 쉬게 하면서, 교대로 야간작업에 들어가는 상황과 같다. 새로이 공장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한데, 깨는 듯하다가 깊이 잠 속에 빠졌다가 반복하는 것이 그것이다. 잠을 자는 동안 90~120분씩 유지되는 주기가 4~5회 반복하고, 각 주기마다 5단계로 깊이가 조절된다. 크게는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 또는 ‘급속 안구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렘(NREM, Non-REM) 수면’으로 나눈다.

 

렘 수면은 처음 잠들었다가 얕은 잠을 자는 단계로, 짧게는 10분에서 새벽으로 갈수록 길어지며 30분가량 계속되기도 한다. 1~2시간 안팎의 수면 한 주기 중 짧은 시간이지만 두뇌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때이므로 육체의 치유와 심리 상태의 회복, 기억 향상에 중요하다. 이때 모든 감각기관과 골격근은 활동을 안 하고 쉬기 때문에, 몸은 잠을 자고 있으나 뇌의 활동이 왕성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렘 수면 시기에 꿈을 꾸게 되고, 몸은 안 움직여도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가위눌림(수면 마비, Sleep paralysis)은 자는 중에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이다. 꿈을 꾸는 렘 수면 단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근육은 이완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지만, 의식만 깨어 있게 된다. 각성이 완전하지 않아서 깨어있다는 생각만 들고 감각이 불완전하다. 방의 창문을 넘어 누가 들어오려고 한다는 환시, 누가 귓속말을 한다고 느끼는 환청, 누가 자기의 목을 조르고 있다거나 자기를 만진다는 느낌을 갖는 환촉 등의 불완전한 감각을 경험한다.

 

비렘 수면은 깊이 잠들면서 나타나는 단계로, 새벽이 될수록 짧아지며, 수면의 깊이에 따라 1, 2, 3, 4단계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뇌파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때 뇌의 기능은 깨어 있을 때 여러 자극으로 많아진 정보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쓸모없는 시냅스들을 없애면서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기억 저장 과정과 이후 학습에도 문제가 생긴다.

 

사람은 8시간 잠을 자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고 그 사람의 습관에 따라 수면 시간이 정해진다. 적게 자든 많이 자든 일상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된다. 나무늘보 20시간, 개나 고양이 15시간, 침팬지는 12시간, 사람은 8시간, 코끼리 같은 초원의 초식동물들은 3~4시간을 잔다고 하는데, 사람은 원시인이었으면 더 잤을 텐데 활동하느라고 덜 자는 듯하다. 물고기도 잠을 잔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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