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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21)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 '리슨'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이번에도 청각장애를 그린 영화를 소개한다.

 

런던에 사는 포르투갈 이민자 가족인 벨라(루치아 모니즈)네는 가난하고 먹을 게 없어서 편의점에서 빵을 훔쳐 먹어야 하는 날도 있지만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오늘은 사회복지국에서 아이들이 잘 있는지 살피러 방문하는 날이다. 남편은 실직한 상태라 둘째딸 루(메이지 슬라이)의 보청기가 고장 났어도 고칠 돈도 없다.

 

학교에 보내고 데리고 올 때 선생님이 루의 등에 멍이 있다고 얘기를 한다. 아동 학대가 아닌가, 의심을 하는 선생님의 표정. 결국 벨라네 집에 경찰과 함께 들이닥친 사회복지국 사람들은 아이들 학대 정황이 있다며 긴급보호명령을 앞세워 아이들 셋을 데려가 버린다.

 

'리슨'(Listen, 2020)이라는 영화의 시작 부분이다. 이민자들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지 않으면 취업이나 활동에 제약을 받지만, 임시 거주는 가능하고 소아들은 학교나 병원의 혜택을 받게 된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관리는 사회복지국에서 담당한다.

 

영화에서는 학대 정황 때문에 아이들을 키울 자격이 없다고 데려간 후 입양 절차를 밟게 되지만, 둘째 루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데려가는 집이 없다. 벨라와 남편은 겨우 아이들을 면회하게 되어 루와 소통하려면 수어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상한 얘기를 할까봐 수어를 사용하지 말고 영어만 사용하라는 관리자.

“영어만 쓰세요! (English only!)”

 

선천성 청각장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바깥귀(외이), 가운뎃귀(중이), 속귀(내이) 중 주로 속귀와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속귀신경의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그나마 신경의 기능이 남아있게 되면 루처럼 보청기를 이용해서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소리 전달 기능이 아주 고장나면 보청기를 껴도 소리를 듣기 힘들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말까지 못하게 된 이유는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없어서이다. 헬렌 켈러는 2돌이 안 되었을 때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설리번 선생의 힘으로 어느 정도 말하기를 익혔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힘든 과정이다. 대신 ‘수어(手語)’라는 것을 배우고 소통하게 된다. 이 단어는 수화(手話)보다 공식 용어로 쓰인다.

 

사회복지국 면회실에서 루에게 수어로 얘기하다가 혼난 루의 부모는 거세게 항의하며 따진다. 도대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영어로 얘기하란 말이냐고. 그러다가 1시간의 면회시간조차 뺏겨 버리고 만다.

 

이민자들을 돕는 앤(소피아 마일즈)을 만나고 나서 결국 답은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이 문제는 법원으로까지 가게 된다. 발달한 복지국가로 알고 있는 영국의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슬프고 동정심이 가기보다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이 영화는 복지제도는 잘 정착되어 있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문제를 꼬집으면서 정작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불합리함을 고발한다. 그래서 제목이 ‘들어라(Listen)’이다. 그리고 루 역의 메이지 슬라이는 다코타 패닝 어릴 때 얼굴과 너무 닮아서 놀랄 정도이다. 머리 색깔, 피부, 커다란 눈.....

 

사회복지국에 맡겨진 루는 거기에서도 멍이 더 생긴다. 영화에서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을지, 뺏기게 될지를 결정하게 될 재판에서 아이들의 엄마 벨라가 둘째 루가 원래 ‘자반증(Purpura)’ 관련 병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든 거라고 호소하면서 자신들은 아이를 학대한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자반증은 질환 이름이 아니라 몸에 멍이 잘 들고 출혈 경향이 있다는 증상 표현이다. 이러한 원인은 혈소판 질환부터 혈액응고 장애 등 다양하다.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이 가족은 다시 합쳐질 수 있을까?

 

영화 초반에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화상 통화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복지 사각지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전화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을 복지국에서 안 도와주냐고 물었을 때 벨라는 쉽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정답이다.

 

“사람 돕는 데가 복지국이잖아?”

이것저것 따지면서 할 거면 왜 복지행정 공무들이 존재하느냐는 말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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