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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22) 누가 옳은 것일까?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맥 머피(잭 니콜슨)는 도박, 폭행,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교도소로 가게 되어 있으나 그보다는 정신병원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정신 감정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있는 것으로 하고 들어온 병원은 무료하기 짝이 없다. 말을 걸어도 대꾸 도 안 하고, 재미있게 지내려고 해도 도저히 상대할만한 사람을 못 찾겠다.

 

모두들 시키는 대로만 하고, 정해진 일과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고 있는 이곳. 앞으로 긴 시간을 이렇게 지내긴 싫은데, 어떻게 하지?

 

우리에게는 ‘아마데우스(Amadeus, 1984)’,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 1996)’, ‘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으로 알려진 밀로스 포만 감독이 1975년에 연출한 작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정신병동이라는 공간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맥 머피, 그리고 책임간호사 간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정신병원의 변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시기의 정신병동 모습은 어떨까, 관심 가지면서 볼만 하다. 그 외 통제 안 되는 환자를 묶어놓은 모습이라든지,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 전기 치료나 뇌절제술에 대한 이야기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인간성을 박탈한 1970년대까지의 정신병동

 

며칠 지내면서 보니 정신질환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각기 개성이 있고 자기 요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책임간호사 래취드(루이스 플래처)는 원칙과 규율을 앞세워서 억지로 통제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맥은 항상 그와 부딪히게 된다.

 

야구 중계를 보고 싶어 했지만 다른 환자들이 동조를 안 해줘서(안 했다기보다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인지할 상태가 아니어서) 꺼져있는 TV를 보면서 야구 중계하듯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랬더니 병동에 있는 사람들도 뭔지 모르지만 덩달아 신나라, 하면서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른다. 래취드 간호사는 이런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약을 잘 먹으면서 얌전히 있는 것이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철조망을 넘어가서 병원 문을 열고는 밖에 세워둔 학교 버스에 환자들을 태워 시내로 나간다. 밖으로 나왔다는 게 그저 신나서 웃음이 활짝 핀 사람들. 중간에 태운 맥의 여자 친구가 “여러분들이 다 미친 사람들이야(You are all crazy)?” 물으니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방긋이 웃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맥은 배를 빌려서 그들에게 낚시를 가르쳐준다. 힘들게 하면서도 처음 해보는 낚시질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 한 친구에게 맥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만큼은 얼빠진 얼간이가 아니라 넌 낚시꾼이야.” 돌아와서는 경찰과 병원 직원들에게 붙들려 가게 된 맥. 경찰들과 논의하면서 그를 다시 교도소에 수감하자는 의견이 있으나 반대하는 래취드 간호사. 병원 측에 책임이 있으니 자기네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말은 가만 안 놔두겠다는 뜻일까?

 

다시 평온을 찾은 병원 운동장. 맥은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는 큰 덩치의 브롬든(윌 샘슨)에게 농구를 가르치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인디언 추장이라고 부르는데, 귀도 멀고 말도 못 하기 때문에 농구를 가르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맥이 끈질기게 농구를 가르쳐 준 효과가 있었는지 큰 키라서 방어도 훌륭하고, 슛도 쉽게 해서 직원팀과 시합을 하던 중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추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신명나서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강압과 권리의 충돌

 

병동의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 간다. 조별 단체 상담 시간에 자기주장이나 요구도 많아졌다.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해보라고 하자, “담배는 뺏어가서 왜 안 줘요?”, “혼자 있고 싶은데, 왜 안 돼요? 혼자 있게 놔두는 것도 병이예요?” 래취드 간호사가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안 된다고 하자, 맥은 유리창을 부수고 보관하고 있는 담배를 꺼내서 준다. 관리인들이 와서 맥을 붙잡고 때리자 추장이 와서 그들을 물리친다. 이렇게 점점 친해진 맥에게 추장은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듣기도 하고 말도 할 줄 알고 있었던 것.

 

모두를 데리고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가 맥은 그 친구들과 함께 술에 취해서 잠이 들어버린다. 다음 날 아침에 래취드 간호사가 출근해보니 병원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는데다가 말을 더듬는, 소심한 빌리(브래드 도리프)는 어떤 여성과 잠을 자고 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래취드 간호사는 이런 행위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이른다고 마음 약한 빌리를 몰아붙인다. 얼마 후, 유리 조각으로 목을 그어 자살해버린 빌리.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한 맥이 래취드 간호사에게 폭력을 쓰게 되고, 붙들려서 수술장으로 옮겨진 후 그는 결국 이마앞엽(전전두엽) 절개 수술을 받게 된다.

 

뇌 수술

 

인간의 대뇌는 해부학에서 크게 이마엽, 마루엽, 관자엽, 뒤통수엽으로 나뉜다. 대뇌를 둘러싸고 있는 대뇌겉질은 회백색을 띠고, 신경세포체들이 모여 있는 중요한 곳이다. 뇌 안쪽의 대뇌속질은 흰색을 띠면서 뇌의 여러 곳을 연결하는 신경 줄기들이 분포한다. 이마엽은 대뇌의 앞쪽에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기억력·사고력·감정 등에 관여하고, 고등한 정신작용을 담당한다.

 

영화에서 맥 머피가 받은 수술은 흔히 ‘이마 절제술(전두엽 절제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의학용어로는 ‘이마앞 절개술(전전두엽 절개술, Prefrontal lobotomy)’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절제술이란 잘라서 없앤다는 뜻인 반면, 절개술은 단순히 자르거나 부순다는 의미만 지니고 있으며, 수술 범위도 이마엽 전체가 아니라 이마의 앞부분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뇌수술은 원시 시대나 고대로부터 있어 왔지만, 정신질환에 현대적인 이마앞 절개술을 도입한 사람은 포루투갈의 안토니오 에가스 모니스(1874~1955)라는 의사이다. 그는 혈관 속으로 염색 물질을 집어넣어 처음으로 뇌혈관을 보게 해서 모야모야병 같은 혈관기형이나 뇌동맥류, 뇌종양 등의 진단을 용이하게 한 것으로도 유명할 정도로 실험정신이 뛰어난 사람이다.

 

1935년에 모니스는 심한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뇌뼈에 구멍을 뚫어 이마 앞부분에 에탄올을 주입해서 대뇌속질의 일부를 녹여냈다. 그 부분은 대뇌피질과 시상이나 시상하부와 연결되는 곳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감정이나 사고에 관한 정보를 연결하는 곳이다. 이듬해에 미국에서는 뇌를 건들지 않고 눈 윗꺼풀 안으로 집어넣는 방법을 이용해서 좋은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방법들이 이마앞 절개술이다. 전신마취도 필요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어서 이 방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수십 만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게 되었다.

 

모니스 박사는 1949년에 노벨생리의학상까지 받게 되었으니 누구나 그 치료 효과를 의심하지 않았다. 공격성을 띠거나 잘 조절되지 않는 조현병, 우울증, 강박장애 등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최소의 부위만 수술하도록 하였지만, 그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수술 후의 결과는 죽든지, 바보가 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좋은 효과라는 것은 감정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지며, 지능이 감소해서 얌전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 수술은 약물이 발달하지 않는 시대에, 그저 시설에 두면서 환자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진정한 치료법은 아니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다

 

영화의 원작을 쓴 소설가 켄 키시가 1962년 소설을 출간하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정신병원의 비인간적인 처우와 이마앞 절개술 같은 것을 없애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그 영향인지, 이후 발달한 약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1930년대부터 사용되던 이 수술 방법은 인권과 효용성을 문제 삼아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에서 금지되었다. ‘혹성탈출, 1968’에서는 비행선을 타고 온 동료가 유인원들에게 붙들려서 이 수술을 받게 되고, ‘셔터 아일랜드, 2010’에서는 주인공이 수술을 받느냐, 마느냐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수술을 받은 맥은 침실로 돌아오지만 잠만 자게 되고, 추장이 들어와서 함께 도망가자며 “이젠 같이 가면 돼. 난, 정말 자신이 있어”라고 말해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맥의 눈을 바라보던 추장은 그를 베개로 눌러서 질식사시킨다. 그리고는 창문을 부수고 천천히 숲을 지나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 떠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의미하고, 날아간다는 건 주인공 맥 머피가 죽음으로써 영혼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아니면 추장인 브롬든이 결국 탈출한 것을 의미한다 등 여러 해석이 있지만 작가의 생각이야 어떻든 책을 읽는 이나 영화를 본 사람들의 몫이니까 어느 하나로 규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영화를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정신병원이라는 억압된 환경과 개성이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부딪히는 것처럼 보기만 할 필요도 없다. 영화를 보면서 그래, 정신질환자들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것이 옳은 거야, 반인권은 안돼, 하고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작품이 가지는 은유를 놓칠 수도 있다.

 

사실 이야기의 뒷면에는 정치권력을 얘기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맥 머피가 입원한 정신병원은 통제되고 질서 있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권력 집단과 그것에 대항하며 깨부수려는 몸부림이 충돌하는 곳이고, 래취드 간호사는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을 대변한다.

 

그는 자신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맥과 부딪힌다. 누가 옳은 것일까? 알제리 독립전쟁, 베트남전 등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과 당시에 불붙은 흑인민권운동과 같은 인권 의식은 억압과 구질서와 부딪혔던 것처럼 맥과 래취드 간호사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에 권위적으로 통제하려는 역할을 정말 잘 해낸 래취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래처는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병동에서 환자로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은 실제 정신병원 환자들이 참여했다고 하고, 그들 속에서 느끼하고 거리낌 없이 웃어대는 맥 머피 역의 잭 니콜슨은 ‘배트맨, 1989’의 조커를 닮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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