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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16) 생존 벼랑 끝 세계에서 드러난 인간의 본질과 폭력

한 일본인이 미국의 도로 한복판에서 파란 신호등이 켜져도 차를 운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차문을 열게 하고 들여다보니 그 사람은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부르짖는다.

 

겨우 안과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는다. 의사(마크 러팔로)는 혈액검사나 눈 검사를 모두 해봐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신경 이상으로 인한 실인증(Agnosia)이라고 추측할 뿐.

 

그 사람을 진료한 안과 의사도, 처음 일본인과 접촉한 사람들도 하나둘씩 같은 증상으로 시야가 '우윳빛'으로 하얘지면서 눈이 멀어져간다.

 

전염병처럼 번지는 ‘백색 질병(White diseases)’은 삽시간에 도시 전체를 뒤덮어버리고, 정부는 무기력하게 대응하다 강제 수용을 결정한다. 환자들을 잡아다가 과거 병동으로 쓰던 건물을 수용소로 쓰면서 가두고는 방치해버린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딱히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장 군인들로 하여금 봉쇄를 하고 통제권을 벗어나면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수용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혼자 다닐 수 없어서 앞 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다녀야만 한다. 이런 모습은 1, 2차 세계대전 당시 포탄 파편이나 화학전 때문에 눈을 다쳐서 앞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집단 이동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혹은 16세기 벨기에 화가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의 ‘장님을 이끄는 장님’이라는 그림을 떠오르게 하게도 한다.

 

모두 눈이 멀게 된 도시

 

도시는 약탈과 방치로 황폐화되고, 며칠이 지나면서는 아예 차를 운전하는 사람조차 사라진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바깥 소식을 듣기 위해 한 노인(대니 글로버)이 가지고 온, 손바닥만한 라디오에 귀를 모으거나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에 다소 평온을 찾는다. 그 순간 수용소 안의 작은 라디오 주변은 눈먼 자들의 평온한 왕국처럼 느껴진다.

 

2008년에 제작한 ‘눈먼 자들의 도시(Blindness)’ 초반부 내용이다. 실제로는 영화보다 소설로 더 유명한데, 포루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1922~2010)의 1995년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라마구는 199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는 돈키호테의 작가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100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G. 마르께스를 잇는 작가로, 풍자와 시사성을 바탕으로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 ‘Blindness’는 단순한 ‘눈 멂(실명)’이라는 뜻만 말해주기 때문에 원래 소설 작가의 작품 의도를 살리지 못했다. 포루투갈어로 된 원 제목 ‘Ensaio sobre a cegueira’을 직역하면 ‘실명(失明)에 대한 에세이’ 혹은 ‘무지(無知)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포루투갈어 ‘Cegueira’ 눈이 멀었다는 뜻 외에도 맹목적인, 혹은 무지라는 의미도 담겨 있어서 소설 속 내용을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이라고 보인다. 사라마구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는 2004년의 ‘Ensaio sobre a lucidez’는 출간되면서 우리 말로 ‘눈 뜬 자들의 도시’라고 번역했지만 ‘lucidez’가 ‘명료함, 명석함’이라는 뜻이고 보면 앞 선 소설 작품도 시각을 잃는 것을 소재로 했어도 오히려 실명보다는 무지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영어 제목에 ‘도시’라는 것을 더 넣어서 ‘눈먼 자들의 도시’라 한 것은 실명과 무지를 적절히 합쳐놓은 비유적인 표현인 듯해서 영어 번역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또 하나의 사회

 

안과 의사는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가는데, 그의 부인(줄리안 무어)은 시력을 잃지 않았음에도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이 먼 것처럼 속여서 수용소로 함께 들어간다. 수용소 안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 군상들이 보인다. 한 녀석이 몰래 가지고 들어온 총으로 수용자들의 보급품을 차지하고 처음에는 돈이나 보석을 갈취하다가 나중에는 여성들의 성상납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여성들을 보내야 하는 남성들, 식량을 얻기 위해서 가야만 하는 부인들을 말리지도 못하는 남편들..... 이전에는 정치나 사회 일반에서 주류를 형성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남성들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는 왜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지 명확한 설명이나 과학적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원작을 쓴 사라마구의 특유한 수법이다. 그러면서 눈이 멀고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된 사람들과 총을 무기로 위협을 가하는 권력 세계를 드러내면서 인간의 본질과 폭력을 고발한다.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저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수용소를 탈출해서 안과의사의 집에 함께 살게 된 사람들은 이제 더 없이 안도하게 된다. 행복이란 이렇게 단순한 것을..... 긴장이 풀리게 되자 누군가 수용소에서 라디오를 가지고 있던 노인에게 지금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니 “우리가 이렇게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를 가진 데다 가난한 흑인으로서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한 지난 세월을 암시하는 말이고, 그처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울려 지내는 삶이 행복했던 것이다.

 

시각 장애는 완전히 시력을 잃는 경우나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저시력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시력을 잃는 것에는 백내장, 녹내장 혹은 망막 손상에 의해서나 뇌 손상, 중추신경계 감염 혹은 종양에 의해 눈신경이 눌리는 상황에서 생길 수 있다.

 

영화와 같이 전염병처럼 번지는 경우는 사실 전혀 없을 것이다. 이것 또한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신비주의적 글쓰기에서 나왔다. 영화는 이런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보면 더 느낌이 다를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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