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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8) 자극적 뉴스에 목마른 이들
정치인은 소문 확대재생산 ... 누군가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 아일랜드 출신 맥도나 감독이 철저하게 아일랜드 출신 배우를 동원해 가장 ‘아일랜드스러운’ 모습을 그려낸 영화가 ‘이니셰린의 밴시’다. 그 ‘아일랜드스러움’의 하나가 가십(gossip)이다.

# 아일랜드 사람들은 ‘허물없는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따뜻하고 친근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가십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엔 아일랜드 사람들의 조금은 특별한 인사말이 자주 등장한다. 바로 “What's the craic?”이다. 우리가 “안녕하세요?”라고 하듯 이 사람들은  “What’s the craic?”이라고 한다. 영어로 치면  “What’s up?”에 해당할 텐데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아일랜드어인 craic은 영어의 크랙(crack)이다. 균열이라는 의미도 있고, 총소리 빵!으로도 사용하고, 폭탄의 의미도 있다. 마약의 은어로도 쓰이고, 메시나 네이마르같이 화끈하게 한방에 승부를 결정짓는 축구선수를 지칭하기도 한다. 

“What’s the craic?”라는 인사말은 결국 “뭐 좀 화끈하고 뿅가는 소식 없냐?”쯤 된다. 화끈하고 뿅가는 뉴스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 가십이다.

한적한 이니셰린 섬에 그나마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은 남정네들이 모이는 허름한 펍(Pub)과 주로 아낙네들이 들락거리는 동네 잡화점이다. 동네 펍에서 남정네들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지인이나 바텐더에게 “what’s the craic?”이라며 말을 붙인다. 

잡화점에 드나드는 아낙네들의 인사말도 “what’s the craic?”이다. 그런데 이 동네 잡화점 풍경이 조금은 예사롭지 않다. 그저 생필품 사러 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네마트의 풍경이 아니다. 설탕 한 봉지 사고 족히 1시간은 머물면서 수다를 떤다. 아낙네들의 목적은 생필품 구입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옛날 동네 우물가나 빨래터 분위기다. 

어쩌면 설탕 한 봉지는 ‘동네 수다방 입장권’쯤으로 보인다. 한손에 설탕 한 봉지 들고 마냥 수다를 떤다. 우리나라 카페 사장님들은 아메리카노 1잔 시켜놓고 몇시간씩 죽치는 고객들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하는데, 이 잡화점 주인 오리올단(O’Riordan) 부인은 쇼핑은 하지 않고 좁아터진 잡화점에서 수다 떨면서 죽치는 고객들에게 절대 눈치 주지 않는다. 눈치는커녕 오히려 대환영이다. 그 수다들에서 얻는 소문들이 모두 돈이 된다.

이 잡화점에서 사고파는 것은 일용품만이 아니라 온갖 가십과 craic이 주종목에 가깝다. 동네 주민들도 꼭 필요한 물건이 있지 않아도 ‘짜릿한 craic’을 기대하고 이 잡화점을 찾는다. 
 

 

당연히 여주인은 ‘멤버 유지’를 위해 항상 ‘짜릿하고 따끈따끈한 craic’을 준비해둬야 한다. 심지어 새롭고 자극적인 craic이 될 만한 가십을 물고 오는 고객에게는 할인 혜택이나 사은품을 얹어주기도 한다. 

순박한 파우릭도 사은품을 노리고 가끔 잡화점에 들러 여주인에게 동네 가십을 전하지만, 여주인의 반응은 영 신통치 못하다. 영양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마치 동네 꼬마가 엿 바꿔 먹으려고 들고 온 고물을 보고 뜨악한 반응을 보이는 엿장수 표정이다. 

파우릭은 어떤 소문이 ‘craic이 될 만한 것’인지 분간을 못 하는 인물이다. 잡화점 여주인 오리올단 부인은 이니셰린의 우체국장까지 겸임하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주고받는 우편물을 훤히 꿰고 있다. 

그렇게 오리올단 부인은 아낙네들이 물고 온 소문들을 선별한 다음 우체국장이라는 ‘공무상’ 취득한 정보까지 총동원해 온갖 양념을 치고 잘 버무려 craic에 굶주린 고객들에게 뿌린다. 

고객들은 열광한다. 그렇게 이 잡화점은 불황을 모르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그러는 가운데 이니셰린 섬의 폐쇄된 작은 마을은 조금씩 분열하고, 몇몇 사람은 이니셰린 섬을 버리고 타지로 떠나간다.

잡화점 주인 오리올단 부인의 상술은 구독자 몇만 몇십만을 거느렸다는 정치 유튜버들의 상술을 닮았다. 여기저기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들을 모아 사람들 구미에 맞게 양념 치고 잘 버무려서 ‘craic(자극적인 뉴스ㆍ한방ㆍ마약)’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공교롭게도 그 무료제공품은 모두 수익으로 돌아온다. 어디 유튜버뿐이겠는가. 가끔은 버젓한 언론사들까지 ‘craic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힘든 모양이다. 

많은 정치인도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확대재생산해서 craic 제조에 골몰하는데, 모두 표로 바뀌어 돌아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몇몇 사람이 이니셰린 섬의 잡화점 주인 오리올단 부인처럼 craic 장사로 재미 보는 사이에 우리 사회도 이니셰린 섬처럼 분열하고 멍들어간다. 
 

한국에선 이 영화의 제목을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라고 했는데, 영어 제목처럼 ‘이니셰린의 밴시들’이라고 표기하는 게 맞을 듯하다. 감독은 왜 굳이 밴시를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기했을까. 
 

 

얼핏 밴시는 마녀의 행색을 하고 뜬금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하고 다니는 매코믹 부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니셰린 섬에 저주를 몰고 오는 진정한 밴시는 매코믹 부인이 아니라 잡화점의 오리올단 부인이다. 아무리 죽음을 예언해도 아무도 죽지 않는 매코믹 부인이 밴시일 리는 없다. 

맥도나 감독이 제목에 밴시를 굳이 복수로 표기한 것을 보면 어쩌면 이니셰린 섬의 밴시는 오리올단 부인을 비롯해서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도 있는 craic을 전파하는 모두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의 ‘밴시들’은 누구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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