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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3) ‘사건’ 자체 끝나더라도
‘기억의 전쟁’ 끝나지 않아 ... 집권 누가 하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 달라져서야 ... 기억의 공간은 국민의 몫

이니셰린의 ‘절친’ 콜름이 파우릭에게 느닷없이 절교를 선언하고 파우릭이 나타나면 자리를 피하고 멀리하자 파우릭은 무언가 가벼운 오해 때문에 콜름이 삐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오해가 있었다면 풀어줘야겠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콜름의 집을 찾아가지만 집은 비어 있다.

 

 

파우릭은 콜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빈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둘러본다. 무료하게 콜름의 빈집을 둘러보던 파우릭의 표정이 차츰 묘해진다. 콜름의 집은 파우릭의 집과 다름없는 시골의 평범한 농가인데, 그 안에 채워진 물건들은 파우릭의 그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경한 것들이다.

축음기가 있고, 세계지도도 있고, 이국적인 가면과 꼭두각시 인형도 놓여있다. ‘절친’이라고 생각해왔던 콜름에게 낯섦을 느끼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 물건들은 콜름의 ‘기억’들이다. 파우릭에게는 없는, 파우릭과는 너무나 다른 가치들에 관한 ‘기억’들이다. 서로 공유하는 기억이 없다는 것은 공유하는 가치가 없다는 것과 같다.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파우릭과 콜름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어쩌면 콜름은 그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파우릭과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을 뿐, 파우릭을 친구나 우리로 대해왔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파우릭이 콜름의 집에서 가면 하나를 집어들고 묘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콜름은 가면 속에 자기의 본래 기억을 감추고 파우릭을 대해왔을 뿐이다. 공동의 기억이 없는 그들이 어떻게 친구가 되고 우리가 되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환상일 뿐이다.

모든 나라가 그렇듯이, 우리도 ‘우리(we)’가 되기 위해서 함께 기억(commemorate)하고, 기억해야 할 수많은 기념일들을 가지고 있다. 3ㆍ1절, 광복절, 개천절, 제헌절, 그리고 한국전쟁, 4ㆍ19 등에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가치들을 담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we)’가 된다.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주도하에 120명의 프랑스 역사학자들이 참여해 1984년부터 거의 10년에 걸쳐 펼쳐낸 감탄할 만한 방대한 역사서 「기억의 장소(Les lieux de memoire)」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억으로서의 역사의 차이를 다룬다.
 

 

누가 어떻게 어떤 특정한 기억을 하고 혹은 어떤 특정한 기억을 지워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가 하는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사회ㆍ정치적으로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가 된다. 누군가와 ‘우리(we)’가 되는 문제다. 파우릭은 콜름의 ‘기억의 장소’에서 비로소 자신과 콜름이 ‘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크게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서부터, 제주 4ㆍ3 항쟁, 5ㆍ16, 광주 민주화 운동, 작게는 천안함과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기억의 전쟁’이 치열하다. 모두 ‘사건’ 자체는 끝났지만 그 사건들을 떠올리는 ‘기억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 사건들을 같은 방식으로 기억하지 못하면 진정한 ‘우리’가 되기 어렵다.

그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고, 누구를 어떻게 기억해야 마땅한지를 둘러싸고 기억의 전쟁 중이다. 5ㆍ16은 구국의 혁명이었다가 군사 쿠데타가 됐는가 싶더니 다시 혁명으로 기억하자고 들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이 100년이 걸릴지 1000년이 걸릴지 기약이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고구려 연개소문을 둘러싼 ‘기억의 전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9년은 현재 거의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정립한 인류사적인 사건인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발생한 지 200주년 되는 해였다. 당연히 혁명의 발상지 프랑스는 거국적으로 이날을 ‘기념(commemorate)’하면서 르몽드(Le Monde)지紙 세계특파원들이 아직 생존해 있는 전세계 혁명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이 혁명가들에게 ‘프랑스 대혁명’의 의미를 묻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에서 당시 생존하던 ‘중국 혁명(1911~1949년)’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빠질 수 없다.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를 묻는 르몽드 기자에게 던진 등소평의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대답이 명언으로 남아있다. “프랑스 혁명? 그거 겨우 200년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평가하겠는가?”
 

 

며칠 사이 조금은 난데없는 새로운 ‘기억의 전쟁’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동상 철거 문제를 둘러싸고 시끄럽다. 홍범도 장군의 항일 독립투쟁의 혁혁한 공로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소련 공산당과 협력했다는 불그죽죽한 얼룩이 못내 찝찝하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찝찝한 사람을 기억하지 말고 백선엽 장군과 같이 친일부역은 했지만 다부동 전투에서 공산당을 물리친 사람을 기억하자고 한다. 혼란스럽다. 

위정자들이 벌이는 ‘기억의 전쟁’은 왜 그런지 항상 조악하다. 중국 동북지역 변방의 역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짜맞추기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닮은 ‘기억공정’이라고 할 만하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가 말하는 ‘기억의 장소’는 국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위정자들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기억공정’은 조지 오웰의 암울한 미래 소설 「1984」에서 국민들의 기억까지 통제하는 독재자 ‘빅 브라더(big brother)’나 하는 작업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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