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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4)
합계출산율 0.78명에 머물면 ... 2750년에 국가 소멸한단 전망
지도자들 지켜지지 않는 약속에 ... 결혼과 출산 포기하는 청년 증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이니셰린’ 섬 일상의 모습은 묘하다. 일견 목가적이고 평화스러워 보이면서도 왠지 절망적인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차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이니셰린이라는 섬에 젊은이도 안 보이고 동네에 아이들도 안 보인다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에도 아이들 손님은 없다.

 

 

영화 속 ‘이니셰린’ 섬에 사는 인물들은 모두 혼자 산다. 중년의 파우릭은 중년의 노처녀 여동생 시오반과 살면서, 아이 대신 ‘반려 당나귀’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중늙은이 콜름도 반려견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마을의 경찰서장 역시 정신이 조금은 온전치 못한 10대 아들을 ‘성추행’해가면서 혼자 산다. 틈만 나면 아무나 붙잡고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해대는 마을의 노파(밴시ㆍBanshee)도 당연히 혼자 산다.

그렇게 모두 혼자 사는데 아무도 ‘짝짓기’를 희망하지 않고,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모두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난 한적한 섬마을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마을 주민들 모두 작정하고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섬이다. 

오직 정신 발육이 상당히 지체된 경찰서장의 10대 아들만이 파우릭의 노처녀 여동생 시오반을 향해 가당치 않은 연심(戀心)을 품을 뿐이다. 시오반이 그나마 마을 여자 중 가장 젊다는 이유밖에는 없는 듯하다. 주민 중 그나마 젊은 시오반이 섬을 떠나자 이니셰린의 마지막 젊은이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기껏해야 30~40대로 보이는 ‘젊은’ 파우릭도 ‘또래’가 없어서인지 족히 50~60대 삼촌뻘로 보이는 콜름과 ‘친구 먹고’ 지낸다. 젊은이가 사라져버린 이니셰린 섬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젊은이가 사라진 이니셰린 섬은 이미 ‘망조(亡兆)’가 들어 임종을 앞두고 있는 섬이다. 문득 이니셰린 섬의 모습이 그다지 멀지 않은 우리나라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해서 왠지 마음이 무겁다. 

얼마 전 여성과 노동, 계급 문제 전문연구자인 조앤 윌리엄스(Joan Williams)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지난해 한국의 여성 1명이 평생 0.78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보고를 접하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니셰린 섬처럼 망조가 들었다는 말인가 보다.

지금처럼 계속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머문다면 70년 후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990만명으로 줄고, 77세 국민이 최대 인구집단이 된다고 하니 대강 영화 속 이니셰린 섬의 모습이다. 심지어 2750년엔 마침내 국가가 소멸해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유난히 1등을 좋아하더니 인구소멸도 1등을 기록할 모양이다. 인구소멸 2호 국가 후보는 3000년의 일본이다.[※참고: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2분기 0.70명으로 더 떨어졌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10여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이니셰린 섬처럼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나라가 될지 모르겠다. 1970년대 ‘무턱대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는 구호를 외쳐야 할 만큼 인구폭발을 걱정했던 우리가 왜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까.

이니셰린의 사람들이 얼마나 살기가 팍팍했기에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 우리 젊은이들도 참으로 저 혼자 살기만도 힘겹고, 이 고달픈 세상을 굳이 자식들에게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소위 ‘반(反)출생주의(anti-natalism)’가 점차 확산하는 모양이다. ‘반출생주의’는 어제오늘의 신념은 아니다.
 

 

석가모니가 삶은 ‘고해(苦海)’라고 정의한 이래, 18세기 프랑스 법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그의 풍자소설 「페르시아인의 편지(Letters Persanes(1721)」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이 아니라 그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애통해해야 한다”고 적었다. 프랑스 대혁명 직전 평민들의 삶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자신의 생일이야말로 1년 중 가장 슬퍼해야 할 날인 셈이다. 동 시대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태어남이란 비존재의 축복받은 고요함을 방해하는 아무런 이로울 것 없는 불행한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급기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윤리철학자 데이비드 베나타(David Benatar)는 2006년 ‘반출생주의’를 총정리하고 윤리철학적으로 정교하게 풀어낸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존재하게 된다는 것의 해악(Better Never to Have Been: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이라는 도발적인 철학서를 출간한다. 이 도발적인 철학서가 곧바로 번역돼 한국에 소개된 것을 보면 우리도 어지간히 삶과 ‘태어남’에 회의적이 됐나 보다.

21세기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왜 이토록 염세적으로 변하고, 아이들은 사라진 걸까. 그림(Grimm) 형제의 ‘잔혹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가 문득 떠오른다. 

1284년 6월 26일 독일 하멜른(Hamel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30명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희대의 미스터리 실화를 소재로 삼은 이 ‘잔혹 동화’에서 그림 형제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하멜른의 지도자들 때문에 도시의 ‘미래’인 아이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으로 그린다. 쥐를 모두 잡아주면 금화 1000개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사라진다.

아마 우리도 그런 모양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도 생기고, 열심히 일하면 집도 장만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우리 지도자들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우리 젊은이들이 아이들을 모두 사라지게 한 모양이다. 우리가 마주한 인구절벽의 문제는 외국 전문가가 ‘이제 한국 망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망국의 전조’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모든 집단과 세력이야말로 망국을 재촉하는 반국가 세력임이 분명하다. 그보다 심각한 반국가 행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은 이 망국의 반국가 주범을 제쳐두고 난데없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세력을 ‘반일(反日)을 선동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설득도 건너뛰고 대뜸 ‘싸우자’고 팔을 걷어붙이니 어리둥절해진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는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반일(反日)’이 곧 ‘반(反)국가’가 되는 논리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재림(再臨) 같아 참으로 난감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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