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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5) 내로라하는 정치인의 예언
별 근거 없는 말들의 향연 ... 정치인의 예언 누가 믿을까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는 매코믹 부인(Mrs. McCormic)이라는 노파가 등장한다. 핼러윈에 등장하는 ‘마귀할멈’과 같은 형상이다. 불쑥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뜬금없이 가족 누군가의 죽음을 예언한다. 이니셰린 섬의 ‘예언자’이다. 영화 제목 속의 ‘밴시(banshee)’가 바로 이분이다.
 

 

‘밴시’라는 말은 아일랜드 민담(民譚)에 전해져 내려오는 죽음을 예고하는 마녀다. 우리로 치면 신내림 받은 무당과 같은 존재인가 보다. 아일랜드의 ‘밴시’는 마을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알고 동구 밖 언덕에서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로 꺼이꺼이 운다고 한다.

그 흐느낌 소리가 얼마나 높고 날카로운지 그릇이 깨질 정도라고 전해진다. 엄청난 데시벨로 징징대는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도 그 울음소리에 죽어 나가 죽음의 예언이 실현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니셰린 섬의 ‘밴시’인 매코믹 부인은 마을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그 집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한다. 파우릭의 집에 와서 파우릭의 여동생 시오반에게 따뜻한 우유 한 잔 잘 얻어 마시고 식구라곤 파우릭과 시오반 2명인 이 집구석에서 2명이 죽어 나갈 것이라고 예고한다.

우유를 대접받고 덕담 대신 악담을 퍼부은 셈인데, 시오반은 놀라지도 않고 불쾌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매코믹 부인이 던지는 무수한 죽음의 예고가 맞아떨어진 일이 없는 모양이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파우릭의 ‘반려 당나귀’가 죽음을 맞이할 뿐 파우릭과 시오반은 멀쩡하게 살아있다. 파우릭과 시오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고 인디언 기우제 같은 논리를 들이대면 할 말은 없다.

그 예언이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서, 매코믹 부인의 예언은 그 형식이 조금 고약하다. 통상 예언자나 선지자의 ‘말씀’들은 예언의 원인을 분명하게 밝힌다.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다면 최소한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정도는 짚어준다.

아무런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예언은 ‘저주’이거나 아니면 ‘점성술(占星術)’과 다르지 않다. 이니셰린 섬의 밴시인 매코믹 부인은 예언가나 선지자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무당에 가깝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예언자와 선지자의 일갈 중에서도 미가(Micha)의 그것이 가장 준엄하고 논리적이다. 미가서 2장에서 예언자 미가가 타락한 유대왕국에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 

“망할 것들아! 권력을 쥐었다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못된 짓만 궁리하다가 날이 밝기가 무섭게 해치우고 마는 악당들은 들어라. 탐나는 밭이 있으면 빼앗고 탐나는 집을 만나면 제 것으로 만들어 그 집과 함께 임자도 종으로 삼아 부려먹는구나.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내 이제 이런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거기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마라. 머리를 들고 다니지도 못하리라.” 

또한 야훼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참을성이 대단한 분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도 일러준다.

보통 선지자들의 예언을 광야에서 외치는 사자후(獅子吼)라고 한다. 사자후란 본래 부처님의 설법(說法)을 일컫는다. 부처님이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설법을 해서가 아니라 사자의 포효처럼 감히 반박할 수 없는 설득력과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예언하고 그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다. 미가의 예언을 사자후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처님이나 미가와는 다른 사자후도 있다. 중국 송(宋)나라 황주에 유명한 선비 진계상(陳季常)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진계상은 마침 그곳으로 귀양살이하러 온 소동파(蘇東坡)와 말벗이 되어 밤낮으로 어울렸다. 진계상의 아내는 중국 역사상 5대 악처(惡妻) 중 하나로 이름을 남긴 하동(河東) 유씨다.

밤낮으로 소동파를 비롯한 벗들과 살림에 보탬 안 되는 소리로 날을 지새우는 남편의 꼴이 못마땅했던 유씨 부인은 남편의 벗들이 모이기만 하면 벽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로 남편을 향한 악담과 저주를 퍼부어댔다. ‘이대로 살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예언도 당연히 포함된다.

근거 없는 예언은 저주에 불과하다. 몇번 이 꼴을 당한 불교 신자이기도 했던 소동파가 유씨 부인에게 부처님의 사자후에 빗대어 ‘하동사후(河東獅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하동 땅의 사자후’라는 뜻인가 보다. 

꼭 유씨 부인만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온갖 잡설(雜說)은 기본이고, 근거도 없는 비난과 악담, 그리고 저주성 예언으로 일관하는 타락한 선비들을 지칭한 말이기도 하다.
 

 

어제도 오늘도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예언의 사자후를 토해낸다. 누군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눈떠보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끝장나게 생겼고, 곧 후진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사자후처럼 토해낸다.

누구의 예언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근거가 부실하다 보니 이니셰린의 ‘밴시 노파’가 늘어놓는 점쟁이 같은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소동파가 질색하는 ‘하동사후’ 같은 앙칼진 악담과 저주로 들리기도 한다. 

밴시 노파는 열심히 시오반 가족의 죽음을 예언하는데 시오반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그냥 자기 할 일만 한다. 시오반이 현명하다. ‘밴시 노파’나 ‘하동사후’가 별다른 근거 없이 내뱉는 말들은 귀 기울여 듣고 흥분하거나 마음에 담아둘 만한 것들이 못 된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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