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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6)
신통치 않은 대통령 지지율 ... 야당, 전 정부, 특정 언론 탓
야당은 정치적 탄압 주장만 ... 부족함이나 잘못 과연 없을까

지난해가 올해 같고, 어제가 마치 오늘인 것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니셰린’ 섬. 조용한 마을에서 경천동지할 변고가 발생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똑같을 것만 같았던 ‘절친’ 파우릭과 콜름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다.

 

 

콜름이 어느 날 ‘절친’ 파우릭에게 던진 절교 선언은 황당할 정도로 극단적인 갈등으로 치닫는다. 황당하긴 하지만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자동차끼리 충돌하면 대개는 ‘쌍방 과실’이지만, 운전자들은 결코 자기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당사자끼리 해결하라고 내버려둔다면 몸싸움까지 벌어질지 모르겠다. 파우릭과 콜름은 모두 ‘자신의 잘못은 1도 없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이다.

피해의식이란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부정적인 언행을 했을 때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억울한 피해자로 인식하는 심리를 말한다. 한마디로 ‘남 탓 정신’이다.

콜름의 마음속에선 아무것도 이룬 일 없이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게 파우릭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이 고개를 든다. 파우릭은 가해자, 자신은 피해자다. 어제까지의 친구 파우릭에게 느닷없이 분노하고 절교 선언과 함께 접근금지를 통고한다. 

당연히 콜름이 보낸 허송세월은 파우릭의 책임이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모욕적으로 절교를 통고받은 파우릭은 상처받는다. 그에게 콜름은 가해자이고, 자신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요구를 순순히 따를 리 없다. 절교 선언을 무시하고 계속 접근하고 말을 붙인다.  

절교를 선언한 콜름은 가해자 파우릭의 그런 태도가 ‘2차 가해’로 느껴진다. “한 번만 더 말을 걸면 내 손가락을 자르겠다”면서 으르렁댄다. ‘피해자’ 파우릭이 보기에 ‘가해자’ 콜름의 분노가 적반하장도 유만부동이다. 파우릭도 ‘2차 가해’를 당했다고 느낀다. 파우릭은 콜름의 경고를 또 무시하고 말을 붙인다. 콜름은 ‘3차 가해’를 당했다고 치를 떨면서 결국 자기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현관문에 패대기친다. 엽기적인 급발진이다. 

 

 

명색이 바이올리니스트인 콜름이 손가락까지 자른 덴 분명 파우릭의 책임도 있을  텐데, 파우릭은 자기 잘못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자기는 아무 잘못 없다고 생각하는 파우릭은 자신이 콜름에게 어처구니없고 끔찍한 ‘3차 가해’를 당했다고만 생각한다.

또 쫓아가서 항의한다. 쫓아온 파우릭에게 ‘4차 가해’를 당했다고 생각한 콜름은 기어이 나머지 네 손가락까지 잘라 또다시 파우릭의 현관문에 패대기치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파우릭과 콜름이 보여주는 막장으로 치닫는 갈등은 국제분쟁과 갈등의 권위자인 루돌프 러멀(Rudolf Rummel) 교수가 명명한 ‘나선(螺線) 갈등(Conflict Helix)’의 실사판이다. 나사못은 못에 새겨진 나선을 따라 한 바퀴 돌 때마다 점점 깊이 파고든다.

서로 만나서 대화해도 갈등이 완화하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갈등이 심화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갈등의 당사자 모두가 자신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허물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의 모든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고 그곳에 화풀이를 해대면 갈등은 ‘나선’처럼 끊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로마시대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존경할 만한 역사가인 타키투스(Tacitus)는 그의 역작  「연대기(Annales)」에서 “지금 정말 너에게 문제가 되는 사람을 알고 싶다면, 지금 네가 비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라”고 말한다. 그 ‘다른 사람’의 범주엔 자신도 포함된다.  

파우릭과 콜름이 벌이는 증폭하기만 하는 갈등처럼, 요즘 우리네 여야의 갈등도 나선처럼 제자리를 맴돌면서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마치 파우릭과 콜름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은 상대방에게 있고 자신은 무고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신통치 않은 지지율이 반국가세력과 같은 야당, 전前 정부, 혹은 특정 언론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하는지 이들과 싸워 물리쳐야 한다고 선언한다. 과연 대통령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일까.
 

 

야당 대표도 다르지 않다. 자신이 처한 곤경과 고난이 오직 정권의 정치적 탄압 때문이라고 분노하는 듯하면서 단식투쟁을 진행했다. 문득 콜름이 자기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의 집 현관에 패대기치는 ‘급발진’ 장면이 오버랩된다. 그 또한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일까. 모두 피해의식을 지나 거의 ‘피해망상(paranoid)’에 빠진 듯한 갈등이다. 파우릭과 콜름과 같은 막장으로 치닫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 사이에 생긴 갈등의 종착역을 보여준다. 파우릭이 콜름에게 자못 비장하게 선언한다. “이 문제는 네가 죽어야 끝난다.” 분명 이럴 일이 아닌데 이런 걸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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