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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이니셰린의 밴시 (7)
역사상 끔찍했던 모든 전쟁 ... 권력자 망상에서 싹튼 결과
망상 실현하는 과정에서 ... 많은 백성 고통 받고 희생

콜름의 ‘절교 선언’으로 시작한 두 절친의 갈등은 예측가능한 궤도를 벗어난다. 가히 안드로메다급이다. 콜름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 듯한데, 아무런 설명이나 양해도 구하지 않고 파우릭에게 일방적으로 절교를 선언한다.

 

 

파우릭은 콜름의 ‘선언’을 무시하고 계속 접근하고 말을 건넨다. 콜름은 그것을 파우릭의 ‘도발’로 받아들인다. 급기야 파우릭이 말을 걸 때마다 자기 손가락 한개씩 잘라버리겠다고 선언한다. 파우릭은 콜름이 자신을 그토록 미워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분노한다. 복수의 방법은 계속 말을 거는 것이다. 

결국 콜름은 자기 손가락 5개를 모두 잘라 파우릭의 현관문에 패대기친다. 그 손가락을 먹은 파우릭의 ‘반려 당나귀’는 어처구니없게도 그 손가락이 목에 걸려 죽는다. 파우릭은 당나귀의 복수에 나서면서 “당나귀 복수를 위해 내가 ○○일 ○○시 정각에 너의 집에 불을 지를 거다, 그 시각에 꼭 집 안에 있다가 타 죽어야 한다”고 통보한다. 파우릭은 콜름이 집 안에 앉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콜름의 집에 불을 지른다.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 따라 두 사람이 내놓는 해법들은 ‘헐~’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황당한 것들이지만 본인들은 ‘신의 한 수’ 놓듯 진지하고 결연하다. 그렇게 아이들의 괜한 심통같았던 ‘절교 선언’이 손가락 절단과 살인방화로 치닫는다.

이렇게 서로를 향해 황당무계하고 불가사의한 보복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파우릭이나 콜름은 감정적으로 격하거나 흥분하지도 않고 너무나 차분하다. 그 모습이 되레 인상적이다. 아마 본인들은 자신들이 동원하는 수단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전형적인 ‘망상(妄想)’에 사로잡힌 상태를 보여준다.

망상이란 ‘객관적으로 불합리하고 잘못된 주관적 신념’이다. 실현 가능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상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상을 현실과 혼동하거나 그것을 실천하려 들면 망상이 된다.

망상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어찌 보면 망상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얼굴 없는 길거리 낙서(graffiti) 예술가 뱅크시(Banksy) 본인이 직접 출간한 작품집 제목이 ‘벽돌담 머리로 들이받기(Banging Your Head Against a Brick Wall)’이다. 우리말로 하면 ‘맨땅에 헤딩하기’가 될 듯하다. 뱅크시다운 제목이다.

예술가는 머리로 벽돌담을 들이받으면 벽돌담이 무너지리라는 망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책자에서 뱅크시는 예술가의 망상을 찬양한다. “우리가 망상에 빠질 때 비로소 우리의 생각은 최고로 활성화한다. 망상에 빠지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방법들이 순식간에 환하게 보인다.”
 

 

존 레넌(John Lennon) 역시 망상을 예찬한다. “망상이란 바로 우리의 의식이 가장 명료해졌을 때 느끼는 감각이다(paranoiais just a heightened sense of awareness).” 

예술가라는 특수직종에 한해 간혹 ‘망상’이 도움을 주긴 주는 모양이지만, 일반인도 아닌 나라의 권력자가 망상에 빠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틀러의 망상은 유태인 700만명을 학살하고 전세계를 전쟁통으로 몰아간다.

히틀러는 16살 무렵 화가의 꿈을 안고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2년간 지원했지만 낙방한 인물이다. 어쩌면 예술에 녹였어야 할 망상을 정치와 권력으로 잘못 풀어냈는지도 모르겠다. 

명곡 이매진(Imagine)의 노랫말처럼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고, 소유라는 것도 없는 세상’을 그리던 존 레넌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그의 망상을 예술이 아닌 실전(實戰)정치에서 실현하려 들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다. 히틀러의 광기쯤은 가볍게 뛰어넘었을 듯하다. 

역사상 끔찍했던 모든 전쟁은 권력자의 망상에서 싹트곤 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파라오들의 무덤이라는 피라미드나 진시황릉이라는 병마용갱(兵馬俑坑) 등등 모두 권력자들의 영원불멸이라는 망상이 만들어낸 끔찍한 구조물들이다. 그 망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백성이 고통받고 죽어갔을지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예술가들의 ‘망상’은 신선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권력자들의 ‘망상’은 항상 두렵다. 문득 히틀러나 진시황 타령할 때가 아니라 혹시 지금 우리의 권력자들도 ‘예술가적 망상’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개운치 못하다. 
 

 

북한을 친구처럼 대화로 잘 타일러서 그들이 핵무기를 폐기하고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확고하고 명료한 신념이 어쩌면 망상이었다면 온 국민을 철 지난 ‘반공’으로 재무장시키고, 역사까지 ‘반공’을 중심으로 다시 가지런히 해서 평화를 지키겠다는 신념도 혹시 망상이 아닌지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예술가가 아닌 이상 뱅크시나 존 레넌의 말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 확실하고 명료하게 느껴진다면 혹시 내가 지금 ‘망상회로’를 돌리고 있는 게 아닌지 멈춰 생각해봄 직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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