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근민 도정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자고 일어나면 메가톤급 사안을 만들고 파문으로 번져 연일 제주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두 번의 관선지사와 세 번의 민선지사도 모자라 우근민 지사의 민선 6기 도전이 기정사실화 된 가운데 공직사회가 선거 6개월을 앞두고 전형적인 ‘줄서기’판을 드러내고 있다. 5월부터 ‘4·3폭도’·‘간첩기자’ 망언 퍼레이드를 이어간 우 지사는 재선충 방제 작업 중 숨진 희생자의 영결식 날 골프를 쳤고, 그가 임명한 서귀포시장은 서귀고 동문의 선거동원 전선에 나섰다.
제주사회가 추잡한 선거판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우 도정이 연일 그 중심행보를 걷고 있다. '파국열차'의 종착지가 의문부호로 떠오르고 있다.
◆예견된 가신정치 말로··· “한 시장은 서귀고 선거조직 수장?”=2010년 7월 우 도정이 등장하자 제주·서귀포시장은 예상대로 그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공모는 말 그대로 요식절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언제나 언론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 중에서도 지난 8월 중순 임명된 한동주 서귀포시장은 하이라이트인 케이스였다. 한 시장은 사실 임명 전부터 공직사회에서 수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인물이다. 우 도정의 반대측만이 아니라 우 도정 측근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인물’로 분류됐던 인사이기 때문이다.
한 시장은 7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제주도 공보계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1998년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당시 자원봉사자의 점심식대를 횡령했다가 검찰수사를 받았다. 횡령액 변제 등으로 겨우 사법처리를 모면했다. 2000년엔 제주도 투자진흥관으로 재직하며 ‘사이버 여론조작 사건’을 주도, 언론에 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송악산 개발사업의 문제를 보도한 언론사 기자와 환경단체를 거명, 제주도청 인터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명예훼손·비방의 글을 수십차례 올렸다가 사법처리됐다. 언론과 환경단체에 민사상 손해배상금까지 물었던 이가 바로 그다. 모두 우 지사가 과거 재임하던 시절의 일이다.
그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록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김태환 도정 당시 문화예술과장으로 재직했을 땐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에게 전수되는 보조금을 착복한 혐의로 또 검찰수사를 받았다. 공직사회에선 현재도 그를 의심, “애꿎은 하급직원만 당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이런 이유로 그는 김태환 도정시절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제주발전연구원의 한직에 밀리는 등 사실상 무보직이나 다름 없는 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10년 우 지사가 당선하자 그는 화려하게 복귀했다. 문화관광교통국장을 맡아 요직의 실세 역을 자임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8월7일 서귀포시장에 단독 응모, 공직사회에에선 “짜고 치는 고돌이”란 말이 나돌았고 예상대로 그는 우 지사의 낙점을 받았다. 그는 취임식 당일 취임사를 빌어 우 지사에 대한 한 없는 충성과 존경의 뜻을 표해 또 논란을 낳았다.
그렇기에 그가 이번 재경서귀고동문회에 참석, 파문을 몰고 온 발언에 대해선 그를 아는 대부분은 “터질게 터졌다”며 오히려 예상대로란 분위기다. 심지어 우 지사의 측근 중 한명도 “애초 문제가 있었던 인물인데다 서귀포시장감은 더더욱 아니었다”며 그를 힐난했다. 한 시장은 자신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고 난 직후에도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나중에 제주에 내려간 후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해명'이 아닌 '대응'수위를 검토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사건이 터진 당일 오후 한 시장은 직위해제됐다. 그러나 도민사회에선 '꼬리자르기'로 그칠 일이 아니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주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다. 도민과 공직사회를 고교동문 그룹으로 나눠 인사문제와 사업계약 문제를 미끼로 선거판에 동원하는 분열주의적 책동이다. 철저히 배후와 연결고리, 거래관계를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시장의 발언처럼 선거판과 시장 직을 놓고 '지사와 내밀한 거래'가 있었다면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란 판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4·3폭도→간첩기자→조배죽 망언 퍼레이드=우 도정의 ‘파국열차’는 한 시장의 충격적 발언만을 내용으로 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 5월 말 우 지사는 출입기자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4·3폭도’ 망언을 늘어놓아 전국뉴스에 화제의 인물로 등장했다. <제이누리>의 현장 녹음·녹취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검색어 주요인물이 우 지사 본인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선 멕시코 출신 세계적 건축가 리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의 보전문제를 취재한 기자를 ‘간첩기자’로 매도하는 폭언까지 나와 우 지사 본인이 명예훼손으로 기자에게 피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시점에서 본지가 칼럼으로 지적한 ‘조배죽 무리의 폐해’는 제주사회를 온통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조배죽’은 ‘조직을 배신하면 죽음이다’란 지사와 간부 공무원 간 건배사 구호다.
‘4·3폭도’ 발언을 녹취 보도한 <제이누리>에 대해 당시 제주도청은 “강력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본지를 명예훼손·모욕한 부분에 대해 본지가 강력히 법적 맞대응에 나설 방침임을 밝히자 본사에 실무 공무원을 보내 사과하는 선으로 마무리를 청했다.
이번 한 시장의 사건처럼 녹음·녹취 등 명백한 증거가 없을 경우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언론을 매도, 진실을 호도했을 개연성이 높은 게 우 지사 측의 행태다.
◆영결식 골프 이어 “소송걸라” 부도덕 극치=도저히 상식으론 납득할 수 없는 우 도정의 행각은 또 문제가 됐다.
소나무 재선충 방제작업 현장에서 전 애월리장이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숨져 결국 16일 오전 영결식이 진행됐지만 정작 우 지사 본인은 당일 오전 제주시 오라골프장에서 골프라운딩에 나선 사실이 <제이누리>의 단독보도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민생활체육회 회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중진 국회의원을 영접, 세계대회 유치건을 조율하는 자리였다는 군색한 변명이 나왔다.
토요일 라운딩 소식이 불거지자 전 언론이 그의 ‘부도덕’ 행보를 비판했지만 ‘오비이락’ 격이듯 그는 그동안 질질 끌던 새누리당 입당문제를 마무리 짓고 이틀 뒤인 18일 새누리당 입당을 승인받았다.
우 지사는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특별법'상 지역 방제대책 본부장이다. 그는 지난 9월23일 부하 공무원에게 “재선충병 방제에 직을 걸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한달 뒤인 10월23일엔 ‘소나무 재선충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온 도민의 간곡한 참여를 호소한다”고 총동원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대해 도민들은 분노하는 분위기다. 물론 시민·환경단체는 지금도 “너무도 기가 차고 어이 없는 도정을 목도하고 있다”며 연일 맹비난하고 있다.
‘영결식 골프’ 건은 후속조치 과정에서도 또 문제를 낳았다. 숨진 애월리장의 유족들이 김상오 제주시장을 방문, 후속대책을 호소했지만 면담결과가 알려지며 또 파문이 불거졌다. “행정에선 해줄 게 없으니 아쉬우면 행정소송을 걸라”고 김 시장이 발언했다고 유족이 폭로, 도의회 예산심사 과정에서도 비판이 줄을 이었다.
◆관선 2번, 민선 3번...도백만 5번, 또 ‘선거올인’? =우 지사는 22년 전인 1991년 관선 지사로 제주도에 부임, 1993년 말까지 두 번 관선 지사로 일했다. 그리고 1995년 6·27 민선 1기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이자 당시 집권여당인 민자당 후보로 나와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1998년 다시 집권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말을 갈아 타고 당선됐다.
2002년에도 역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와 재선에 성공했다.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고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도중이던 2004년 그는 다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으로 직행했다.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면서 그는 “정치는 타이밍이다”란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해 4월 선거법 위반이 대법원에서 확정, 지사직에서 낙마했다. 그리고 6년 뒤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로 놓고 보면 그는 여당을 선택해야 하지만 이미 한나라당은 현명관 후보를 확정지었고, 그는 “나의 정치적 뿌리는 민주당”이라면서 민주당에 복당, 민주당 후보로 나서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성희롱 전력이 문제가 돼 ‘공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결국 탈당, 무소속으로 나와 역시 금품살포 사건으로 공천이 취소되자 탈당, 무소속으로 나온 현명관 후보에 맞서 승리했다. 그 시절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18일 새누리당 입당을 승인받았다. 그 이전 1만7000여명에 이르는 당원도 사전 입당시켰다. 외압과 동원의혹을 받았지만 새누리당 도당의 전산등재 과정에서 신원불분명·본인거부, 주소·주민번호 불일치 등의 사유로 3400명의 허수가 발견됐을 뿐 1만4000명의 우군을 새누리당에 안착시켰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도민 고모(51)씨는 "그의 노욕의 끝은 어디인지 묻고 싶다. 그의 권력, 그들만의 권력을 위해 우리 제주도가 도탄나고 도민이 내팽겨치는 현실이 몹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서정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다양한 문화, 계층, 세력이 민주사회의 작동방식과 운영원리를 거쳐 마치 비빔밥처럼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등장하는 것이 선거일 수 있다. 그런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된 아군, 적군 식 ‘편가르기’만 횡행한다면 우리 사회는 공존이 아닌 공멸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향식 공천이란 바람직한 정당정치의 의사결정 방식을 조직적 동원과 ‘갑’의 횡포로 변질시키는 건 그 자체로 민주적 시스템을 붕괴하려는 시도”라며 “자율적 참여가 아닌 강제적 동원과 압박은 이미 그 자체로 민주성을 상실한 후보란 걸 자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한국지방정치학회 회장인 박재욱 신라대(행정학)교수는 “민주주의 사회를 결정하는 선거는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의 의식에 성패가 달려 있다. 선거가 정책과 공약을 논의하는 공간이 아니라 고작 혈연·학연·지연 등의 1차 집단 간 세싸움의 공간으로 변질된다면 그로부터 얻은 결과의 폐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부머랭이 돼 돌아간다. 그게 민주사회 선거제도의 정당한 결론”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