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졌다. 한동안 '한국관광의 1번지' 제주도를 뜨겁게 달궜던 고래상어는 그런 존재였다. 한마리는 어이없게 비명횡사했고, 한마리는 다시 드넓은 자연으로 돌아갔다.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 수족관에 전시됐던 고래상어 얘기다. 그나마 남은 한마리가 두달 만에 고향인 드넓은 바다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조금은 '찝찝한' 해핀엔딩이 됐다.
우연찮게 한 지역 어민의 정치망에 걸려 한때 ‘10억짜리 기적’으로 불리던 고래상어는 40여일 만에 비극으로 변했다. 남은 고래상어는 두달 만에 풀려났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기적에서 고래상어 방사까지 일련의 사건은 무엇을 남겼을까?
한화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7월14일 개관에 맞춰 중국으로부터 고래상어를 들여오기로 했다. 그러나 한중어업 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반출금지 통보가 왔다. 수족관의 고래상어 도입·전시가 불투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적적인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개관을 1주일 앞둔 7월7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2리 한 어민이 쳐 놓은 정치망에 고래상어 1마리가 걸려들었다. 이틀 뒤 9일에도 또 다른 고래상어 1마리가 들어왔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이 어민은 고래상어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아쿠아플라넷에 전했다. 아쿠아플라넷 측은 어민에게 휴업 손실 보상과 정치망 파손 복구비 등의 명복으로 1억원을 전달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과 국회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포획된 고래상어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즉각 방사돼야 한다며 아쿠아플라넷을 압박했다. 반면 아쿠아플라넷은 방생하더라도 또 다른 정치망에 걸려 죽을 것이라며 전시를 강행했다.
밀수 의혹도 제기됐다. 중국으로부터 들어오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던 아쿠아플라넷이 밀수해 보관했다가 기증받은 형식을 빌려 반입한 것처럼 꾸몄다는 것이다.
의혹이 일자 해경은 수사에 착수했다. 해경은 포획·기증한 어민 등 10여 명을 상대로 포획 및 유통, 기증 등 전반적인 과정을 확인한 결과 별다른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큰 몸집 때문에 이동 과정이 쉽지 않고 3~4일이 소요되다 보면 폐사 확률이 높아 밀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법적 문제점도 없다고 했다.
아쿠아플라넷도 “고래상어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은 항공운송으로 인한 고액의 운송비용과 숨길 수 없는 큰 몸집 때문에 이동 과정이 노출되기 마련”이라며 밀반입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18일 새벽 고래상어 2마리 중 1마리가 숨진 사실이 <제이누리>에 의해 단독보도됐다. 나머지 언론들도 잇따라 이 사실을 보도했고, 각 포털사이트의 메인기사를 장식했다. 결국 남은 고래상어를 방사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아쿠아플라넷은 죽은 고래상어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제주대 수의학과에 부검과 정밀조직검사를 의뢰했다. 스트레스와 수질이상, 외부에서의 질병 때문이라는 추측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검과 정밀조직검사 결과 제주대 수의학과는 만성 신부전증이 사인이라고 결론지었다. 수의학과 김재훈 교수는 병리소견서에서 “신장의 심한 괴사와 미네랄 침착, 만성적인 염증으로 인한 신장 기능 소실로 인해 폐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방사
고래상어의 죽음에 따른 여론 악화에 결국 아쿠아플라넷은 남은 고래상어를 방사하기로 결정했다.
아쿠아플라넷은 “고래상어의 폐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염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며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멸종위기 생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또 “생태칩을 달고 방사해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었지만 방사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라고 방사이유를 설명했다.
방사를 준비하던 중 <제이누리>는 아쿠아플라넷이 해외 다른 수족관을 통해 고래상어를 재도입할 것이라고 단독 보도했다. 핵심간부가 인터뷰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다. 논란은 사그라들다 다시 불붙었다. 결국 한화는 "결정된 바 없는 사실"이라고 서둘러 진화했다.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면서 지난 6일 오전 고래상어는 고향인 드넓은 바다로 돌아갔다.
#남은 것은?
아직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고래상어 논란에 대해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우리사회에 멸종위기종 포획과 전시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련법 정비가 시급하다”며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그 동안 제주도 근해에서 서식하지 않았던 희귀동식물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법 정비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자연생태에 대한 연구를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처럼 상업적 목적으로 포획·전시하는 행위는 전면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상배 박사(습지생태·제주자연학교장)는 “살아 있는 생물을 수족관에 가둬서 관광자원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후진적 행태”라며 “동물학대 논란을 자초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나 미국 등 선진국들의 생태관광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먼발치서 자연을 호흡하며 그저 관찰하는 수준”이라며 “고래문제로 다른 국가로부터 비난받는 일본의 관광형태를 답습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법적문제는 전문가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우리나라 법체계가 일본을 따라가다 보니 보호종에 대한 법 체계가 취약하다. 선진국에 맞게 강화된 정책이 나올 때가 됐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