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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9) 대리인에게 지배당하는 주인공
주권자인 우리도 마찬가지 … 나라살림 맡기고 권력 위임했더니
국민의 주인 노릇하는 권력자들 ... 위임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
전세계 창궐하는 선거독재국가 ... 권력자 스스로 권한 행사 자제해야

‘파이트 클럽’의 사실상 주인은 주인공인 ‘화자(話者)’지만, 주인공이 직접 클럽을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상상 속에서 창조한 카리스마 넘치는 테일러 더든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운영한다. 화자가 더든에게 파이트 클럽 운영을 위임했듯, 주권자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권력을 위임하고 나라살림을 맡긴다.

 

 

주인공이 만들어 낸 더든은 주인공을 대리해 도시의 소외된 남자들을 끌어들인다. 주인공을 포함한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더든이 술집 지하공간을 무단점거해 마련한 아지트에서 더든의 주재하에 그동안 저마다 켜켜이 쌓여왔던 울분과 좌절을 맨주먹 격투로 해소하면서 비로소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희열을 맛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때까지 주인공에게 나이스했던 더든이 주인공을 조롱하고 가르치려들기 시작한다. 클럽의 ‘대리인’ 더든은 클럽의 주요 프로그램을 ‘맨주먹 격투’에서 비만환자들의 지방흡입 폐기물을 훔쳐서 만드는 ‘폭탄제조’로, 한발 더 나아가 그 폭탄을 이용한 ‘도시테러’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자신의 ‘주인’인 주인공과 의논하거나 허락을 구하지도 않는다. 파이트 클럽 운영을 위임받은 이상 파이트 클럽에서 진행할 모든 프로그램의 개발과 수행을 모두 위임받은 것처럼 행동한다. 위임자인 주인공의 의사와는 상관없다.

더든을 창조한 주인인 주인공은 차츰 자신의 대리인인 더든은 물론 자신이 아니라 더든을 따르는 클럽 회원들과도 멀어진다. 당연히 주인공은 폭탄제조나 도시테러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주인은 소외되고 대리인이 조직을 장악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들어낸 괴물도 차츰 자신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모습을 재현한다. 급기야 더든은 ‘자본주의 시스템 작동불능’ 프로젝트(Project Mayhem)를 파이트 클럽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한다. 주인공은 이제 자신도 더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주인공과 더든의 충돌이 발생한다. 그 장면이 조금 묘하다. 대리인인 더든이 주인인 주인공에게 항명하는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이 대리인의 명령에 항명하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다.

주인공이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에서 만났던 로버트 폴슨이란 고환 제거의 부작용으로 거대한 유방을 갖게 된 비대한 사내도 파이트 클럽에 가입해서 주인공과 재회한다. 이 비대한 사내는 도시테러에 나선 첫날 머리에 경찰관의 총을 맞고 즉사해 동료들에 의해 아지트로 돌아온다.

다른 회원들처럼 날렵하지 못하고 온몸이 출렁대는 이 사내는 경찰의 추격을 피하기에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파이트 클럽에 가입한 회원들은 입회와 동시에 ‘이름’이 사라지고 번호로만 통한다.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을 포함해 모두 ‘실명(失名)’하고 오직 타일러 더든의 이름만 존재한다.
 

 

이름이 사라진 클럽 회원 모두 인간의 인격과 정체성이 말살되거나 오직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된다. 개도 반려견은 이름이 있지만 식용견에는 이름이 없다. 로버트 폴슨이라는 그의 이름을 알 길 없는 동료들이 그의 ‘번호’를 부르며 애도한다. 그 순간 자신을 비롯한 클럽 회원들의 ‘실명’에 분노한 주인공이 소리친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폴슨이야!(His name is Robert Paulson!)”

그는 타일러 더든 프로젝트의 이름 없는 도구가 아니라 엄연히 가족도 있고 살아온 자기만의 역사도 있고 자기만의 이름도 가진 ‘인간’이었음을 알려준다. 그 순간 어리둥절하던 파이트 클럽 회원들 모두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폴슨,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폴슨”이라고 합창한다.

그렇게 대중을 도구화하는 타일러 더든의 ‘독재’에 항거한다. 2022년 문득 접한 로버트 폴슨 역을 맡았던 배우의 부고 기사에 수많은 팬들이 “그의 이름은 로버트 폴슨”이라는 이 장면의 대사로 그를 추모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만큼 이 장면이 영화 팬들에게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주인인 주인공은 ‘프로젝트 메이헴(Project Mayhem)’을 당장 멈추라고 하지만 대리인 더든은 멈추지 않는다. 주인의 반대에도 대리인은 ‘My Way’를 외친다. 주인공은 전국의 파이트 클럽 지부를 뛰어다니며 더든의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하지만 회원들은 주인의 말 대신 대리인인 더든의 지시만 따른다.

결국 주인은 직접 자기 손으로 대리인인 더든을 제거하러 나선다. 결국 주인공은 더든을 제거하지만 더든에 의해 이미 작동된 시한폭탄은 멈출 수 없다. 파이트 클럽에서 벌어지는 주인공과 더든의 묘한 관계와 충돌은 왠지 낯설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엄연히 주권자인 우리도 영화 속 주인공이 더든에게 파이트 클럽 운영을 위임하듯, 누군가에게 자신을 대신해 나라살림을 해달라고 권력을 위임한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은 권력자는 대개 주권자의 뜻과 요구와는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 나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새 나의 주인이 돼 있곤 한다. 

아르헨티나의 정치학자 기예르모 오도넬(Gillermo O’Donnell)이 지적한 현대 민주주의의 파행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난감하고 고약한 소위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함정이다.

최고 권력자는 분명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지만, 일단 선출만 되면 모든 권력이 통치자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왜곡되고, 통치자는 마음만 먹으면 의회나 정당, 법원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우회해 얼마든지 권력을 사유화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다. 2023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3개월에 걸쳐 전 세계 24개국 3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위임 민주주의’의 함정에 빠져 민주주의가 허우적대면서 이러느니 차라리 강력한 지도자가 의회ㆍ법원 등의 견제를 거치지 않고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체제가 낫겠다는 응답이 2017년 조사에 비해 거의 모든 나라에서 10%포인트 이상씩 상승했다. 

우리나라도 2017년 23.0%에서 2023년 35. 0%로 높아진 것으로 조사된다. 형식적으로 선거는 치르지만 실제로는 독재국가인 ‘선거독재국가(electoral autocracies)’가 전세계에 창궐하고 있다는 거다. 

불과 몇 년 전인 2017년 3월 10일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 주문 한마디가 낭독되기까지,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일련의 혼란과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 최후의 보루는 헌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상호관용과 권력자가 법적 권한 행사를 자제하는 규범밖에는 없을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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