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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2) 인간 본성에 잠재한 불편한 본성
부러움 · 질투 당연한 감정이지만 ... 타인의 불행에 기쁨 느끼는 사람도
‘샤덴프로이데’ 한국 사회서 심각 ... 너 죽고 나 죽자만은 되지 말아야

영화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은 이름도 없는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그는 자동차 리콜 전문가로 일한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1년 중 족히 300일쯤은 비행기를 타고 전국의 사고현장을 찾아 자동차 결함을 조사한다. 어쩌면 최악의 직업이다. 태평양을 건너 아예 낮과 밤이 통째 바뀌는 게 차라리 낫다. 서너 시간의 시차 변화는 정말 고약하다. 주인공은 당연히 만성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의사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수면제 처방을 부탁한다. 의사는 불면증 정도의 고통은 약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고통은 아니라면서 비협조적이다.

수면제 처방전을 써주는 대신 ‘(고환암으로) 고환을 제거한 남자들의 모임’이라는 묘한 곳에 한번 가보라고 권한다. 그 사람들을 보면 진짜 못 견딜 고통이란 어떤 건지 알게 될 거라고 한다.

주인공은 잠도 안 오는 밤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고환 제거남’들의 모임에 간다. 다행히 모임 관계자가 ‘고환 제거’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고환을 제거당한 사내들의 좌절감과 고통의 생생한 현장을 목격한다.

고환을 제거하고 거대한 유방을 가진 한 사내가 주인공을 부둥켜안고 고통에 오열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화자는 연민을 느끼기는커녕, 그 사내의 거대한 유방에 얼굴을 묻고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날 밤 주인공은 실로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다. 

그날 이후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 말기 암 환자들의 모임 등등 닥치는 대로 ‘타인의 고통 쇼핑’에 나선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의 고통을 잊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불면증도 조금씩 털어낸다. 주인공에게 ‘고통의 메카 순례’을 권한 의사야말로 명의(名醫)와 신의(神醫)를 뛰어넘는 심의(心醫)였는지도 모르겠다.

여과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흔히 포르노(porno)라고 한다면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잊고 불면증에서 벗어나는 인간 심리의 포르노를 보여준다.

포르노는 대개 민망하고 추악해서 시선을 돌리고 싶지만 분명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들이다. 그나마 영화 속 화자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작은 위안을 받을 뿐이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더 적극적으로 기쁨과 희열까지 느끼는 경우도 있다.
 

 

독일어 중에 대단히 기묘한 단어가 하나 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대조적인 뜻의 독일어 단어 Schaden(손실·고통·불행)과 Freude(기쁨·환희·행복)가 합쳐진 기묘한 합성어다. 영어로는 ‘고통의 기쁨(joy of pain)’으로밖에 번역할 도리가 없는 이 독일어는 우리말로는 한 단어로 옮길 수 있다. 남의 불행을 고소해 하는 ‘쌤통’이다. 

인간 감성의 역사를 추적하는 문화역사학자 티파니 와트 스미스(Tiffany Watt Smith)가 이같은 인간 심리의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샤덴프로이데: 남의 불행이 주는 기쁨(Schadenfreude: The Joy of Another’s Misfortune·2017년)」이다. 제목 자체부터 불편하기는 한데 마냥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어서 읽기에 더욱 불편해지는 책이다. 

‘부러움’ ‘질투’ 등 인간 본성에 잠재한 불편한 본성을 꿰뚫어 보는 도발적인 심리학자 리처드 스미스(Richard H. Smith)가 펴낸 「고통의 기쁨: 인간본성의 어두운 그림자(The Joy of Pain: The Dark Side of Hum an Nature·2016년)」도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쌤통의 어두운 심리를 파고든다.

이 책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까지 등장한다. 타인의 고통에서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뒤집으면 ‘타인의 기쁨’에서 고통을 느끼는 심리가 된다.

티파니 스미스의 책 제목 「The Joy of Another’s Misfortune」에서 Other가 아니라 Another인 이유가 있다. Other는 ‘내가 전혀 모르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이고 Another는 ‘내가 아는 누구, 나와 비슷한 누구’를 의미한다. 생판 모르는 누군가가 로또 복권 당첨됐다는 기사에는 덤덤하지만 그것이 내가 잘 아는 누군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심한 복통을 느낀다.

오래전 한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제시했던 문제가 화제를 불러온 적이 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에게 100억원이 생기고 나에게는 1억원이 생기는 것과, 둘 다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 것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질문받은 유명 연예인 모두 “차라리 둘 다 아무것도 안 생기는 게 속 편하겠다”는 답했다.
 

 

어쩌면 너무 솔직해서 민망했던 답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상당한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 이쯤 되면 쌤통보다 더 심각한 ‘너 죽고 나 죽고 같이 죽자’의 심통이 된다.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너의 슬픔이 나의 기쁨이 되고, 너의 기쁨이 나의 슬픔이 되는 ‘샤덴프로이데’ 현상도 유난한 모양이다. 특히나 이런저런 선거만 돌아오면 샤덴프로이데의 큰 장이 선다.

그 난장(亂場)에서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샤덴프로이데를 봐야 하니 고역이다. 그것까지도 봐줄 수 있지만, 네가 잘되는 꼴은 차마 볼 수 없으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너 죽고 나 죽고 다 같이 죽어 버리자’는 최악의 샤덴프로이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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