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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8) 진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
하찮은 교양 앞세워 ‘옳음’ 거부 ... 니체, 문제의식 없는 안일 비판
총선에서 드러난 사나운 민심 ... 여전히 듣지 않는 집권층

 

영화 ‘파이트 클럽’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다소 난해한 이 ‘컬트 무비’는 원작자 폴라닉이 독일 철학자 니체에게 심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한결 이해하기 편하다. 그는 니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한 설명 없이 잠언(箴言, 교훈이 되는 짧은 말)처럼 던진다. 주제 역시 니체가 상정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의 분위기를 풍긴다.

영화 속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다중인격체인 주인공이 자신의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다른 인격체이자 ‘선지자(자라투스트라)’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인 화자는 자신이 만들어낸 ‘선지자’인 더든의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과 너무나 이질적인 더든에게 심한 거부감까지 느낀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모두 더든의 가르침에 따라 도시 테러에 나서지만, 주인공은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파이트 클럽 회원들과 폐가에서 동거동숙하면서도 그들을 경멸하고, 동떨어진 채 여전히 갑갑한 회사생활을 계속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더든과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영구 불구 계획(Project Mayhem)’을 들고 나오자 목숨을 걸고 그들을 막아선다.

니체가 그의 불후의 명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만들어낸 자라투스트라는 10년간 입산수도 끝에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자 산에서 내려온다. 하지만 시장에서 진리를 설파하는 자라투스트라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자라투스트라는 한탄한다. “난 이 같은 자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닌가 보다.” 

자라투스트라는 그들이 왜 진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지 분석한다. “저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질 만한 어떤 것을 갖고 있다. 저들은 그것을 교양이라고 부른다. 그런 것이 있기에 저들은 스스로 자신이 염소 치는 자들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나 자라투스트라는 저들의 자부심에 대고 말해주겠다. 나는 저들에게 더없이 경멸스러운 것에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 The last man)’이 그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무지몽매한 염소치기가 ‘인간말종’이 아니라 오히려 하찮은 ‘교양’으로 무장한 채 ‘옳음’을 거부하는 인간들이야말로 인간말종이다. 영화 속의 차라투스트라인 더든이 보기에도 ‘이케아’ 가구로 꾸민 안락한 아파트 한채에 안주하는 ‘교양인’인 주인공이 가장 문제적인 인간말종인 셈이다.

니체를 격분시키는 인간말종이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일상의 안일(安逸)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난 일이나 다가올 일에는 아무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인간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한다. 

니체는 인간말종은 자신을 경멸할 줄 모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멸당해 마땅하다고 믿는다. 자신을 경멸할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볼 만큼만이라도 높이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니체는 그의 철학의 핵심이라 할 수도 있는 ‘위버멘쉬(Übermensch·초인)’의 출현을 위해 인간말종들이 스스로 몰락하고 파멸하기를 소망한다. 니체가 보기에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이 있다면 다른 끝에는 ‘초인(Übermen sch)’이 있다. 

영화 속 더든도 니체처럼 주인공과 같은 치열한 문제의식 없는 인간말종들의 파멸과 몰락을 강조한다. 그들이 몰락해야 그들을 딛고 위버멘쉬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몰락의 의지야말로 ‘인간을 넘어서서 위대한 위버멘쉬로 가고자 하는 의지’다.
 

 

주인공은 결국 니체와 더든의 소망대로 스스로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몰락하고 파멸’한다.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의 인간말종을 파괴하고 자기 안에 봉인돼 왔던 자신의 위버멘쉬를 끌어올린다.

그 순간 창밖에서 모순에 가득찬 자본주의 사회를 상징하는 모든 거대한 빌딩들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니체를 사랑하는 원작자 팔라닉과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모든 메시지를 이 한 장면에 압축한 듯하다.

콜로세움 10만 관중 앞에서 벌어지는 최고의 검투사들이 겨루는 한바탕 검투경기와 같은 총선이 끝났다. 많은 사람이 집권당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한 결과를 놓고 대통령과 집권당의 ‘귀틀막’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대통령과 집권당의 귀에는 여전히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 많은 국민들이 자라투스트라처럼 탄식할 듯하다. “나 이같은 자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닌가 보다.” 당연히 그들 속에서 메시아와 같은 초인의 탄생도 기대난망(期待難忘)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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