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에서 전해졌다고도 하고,남부 아시아에서 전파됐다고도 하는 감귤-. 멀리 삼국시대 이전까지 유래가 거슬러 올라가는 감귤은 이제 제주도·제주도민의 생존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과수작목이란 건 제주도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그 감귤은 한 겨울인 설 차례상에 어김 없이 올라가는, 한때는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잠시 옛 기록을 본다. 조선실록(朝鮮實錄)은 "태조(太祖)원년인 1392년 10월 고려시대로부터 내려오던 공부제도(貢賦制度)를 채택, 공부상정도감(貢賦詳定都監)을 신설해 귤․유자 등은 별공(別貢)으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전회통(大典會統) 6권은 "제주3읍에 감귤나무를 심고 장려하며, 그 관리상태에 따라 상벌을 받도록"하였다.
모두 제주감귤의 가치를 인정했고,관료들의 독려에 의해 재배돼 조정으로 진상된 과일이었다는 소리다.사실 도민들의 소득증대와는 무관했던 과일인 셈이다.
재래종이 아닌, 소득작목으로 지금 제주도내 농가 대다수가 재배하고 있는 온주감귤은 엄탁가(Esmile J. Taquet)신부에 의해 일본에서 도입됐다. 일제시대인 1911년의 일이다. 서귀포시 서홍동 천주교 복자수도원에 심은 나무가운데 한 그루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도입품종 중 가장 오래된 품종이다.
1950년대 말부터 '온주감귤'(Mandarine Orange)은 재일동포에 의해 제주도내로 대량 유입됐다. 과정이야 어떠튼 제주도가 본산지 일본보다 결과적으로 여러 면에서 경쟁력을 더 챙겼다는 소리가 된다.
장황하게 옛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현실이 좀 답답해서다.
지난해 기준 제주의 감귤농가는 3만797 가구에 이른다. 58만 인구의 상당수가 감귤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재배면적도 2만608ha나 된다. 그 감귤은 2010년 제주도내에서 64만9000t이 생산됐다. 그리고 한해동안의 유통처리결과 7065억원이라는 소득으로 돌아왔다.
'제주의 쌀산업'으로 불렸던 감귤은 관광과 더불어 제주산업의 양대 축이자 두 수레바퀴였다. 변변한 제조업체도 없고, 2차 산업이 자랄 토양이 아니었던 제주의 상징적 1차 산업의 선두주자가 바로 '감귤'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갈수록 어이없고, 초라한 감귤의 실태를 알아채게 된다. 1990년대 초에도 감귤생산으로 벌어들인 소득은 6000억~7000억원을 오락가락 했다. 감귤값이 대폭락할 때는 고작 1년간 제주도내 전 감귤농가의 총수입이 3000억여원에 불과하던 때도 있었다. 그 시절 관광수입 역시 감귤수입과 맞먹는 6000억~7000억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주행 관광객은 연간 1000만명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고, 지난해 기준 연간 관광 총수입은 4조5052억원이나 된다.
세월이 흐를 수록 제주도내 농가에는 탄식의 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분노에서 체념으로, 이젠 아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농가들이 부지기수다.
왜 이리 됐을까? <제이누리>에 연재 중인 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의 회고록 <격동의 현장-남기고싶은 이야기> 가운데 2월5일 소개된 회고를 읽었다. 답답한 마음이 가슴을 옥죄어 왔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상대방과 ‘감귤 매립 공방’을 벌였던 비통한 심정을 고백한 내용이다. ‘감귤을 땅에 파묻었다’란 상대방의 공박으로 그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썼다”고 적었다. 물론 그 시절 선거는 미래로 가는 감귤정책의 핵심과 맥은 짚어보지도 못하고 그 ‘황당한’ 논란으로 종결됐다. 그저 득표만을 위한 ‘정치작목’으로 변질된 현장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도 제주도 자치경찰단에 의해 대도시 농산물공판장에서 유통되는 비상품(非商品) 감귤 사례가 적지 않게 적발된다. 제주의 감귤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듯이 과잉생산은 가격폭락으로 귀결된다. 품질향상은 말할 것도 없고, 적정생산으로 가격을 지지하기 위해선 과잉생산된 일부 물량은 시장에서 격리시켜야 되는 게 사실 맞는 정책이다. 감귤을 파묻었는지, 안 그랬는지는 사실 중요이슈가 아니다. 제주농가의 소득을 보장해야 할 지도자로선 가격 대폭락으로 농가가 파탄날 지경이라면 일부 물량을 태평양 바닷속에 버려서라도 적정 시장가격 회복을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야 ‘감귤밭을 갈아 엎겠다’며 울부짖는 농가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도정(道政)만이 능사가 아니다. 물론 제주도내 감귤농민들도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한 ‘특단의 자구책’을 써야 한다. 딸기농가가 온실재배에 집중, 연중출하 시스템으로 시장에서 감귤을 상대하고 있고, 대형할인매장에서는 1인 가구시대에 걸맞은 소포장단위 상품출하로 소비자를 상대하는 과일이 널려있다는 사실은 눈 여겨 볼 대목이다.
"1970년대 본격 재배에 들어갔다면 벌써 그 나무가 40년이 넘는 노령 수목인데 이제 단물도 빠질 만큼 빠졌겠죠." 감귤분야 전문가인 강경선 전 제주대 교수는 과거 그렇게 말했다.
나이든 나무도 새 나무로 바꾸는 수종(樹種) 갱신이 필요하다. 천혜향·레드향 등 신품종이 시장에서 먹히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불로초'․'귤림원' 등 브랜드 감귤이 인기를 끄는 사례도 주목, 품종갱신도 서둘러야 할 때다. 벼랑끝까지 몰렸다는 사실을 안다면 '회생'의 길은 찾은 셈이다. 물론 여러 감귤농가들에 의해 이제 그런 노력들은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어떨 땐 그동안 감귤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는 외지출신 귀농인들이 제주에 정착, 새로운 승부수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주도정에서 내놓는 어떤 정책에서도 이런 변화에 조응하는, 눈에 띄는 감귤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해군기지 논란’과 ‘7대 자연경관’의 환호·잡음에 묻혀선지, 제주의 생명산업을 다루는 정책적 접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러다 2014년 맞이할 지방선거에서도 ‘황당한’ 감귤 이야기가 선거판을 들쑤실 지 우려스럽다. 그 정도 재미 봤으면 이젠 ‘감귤살리기’에 힘쓸 때도 됐다. 그 정도 단맛을 봤으면 이제 그 단맛을 온당히 농민들에게 되돌려줄 때도 됐다. 감귤농민들 역시 더 이상 ‘선거판의 노예’가 된다면 감귤의 회생도 사실 불가능하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머릿속에는 노랗게 물든 감귤밭이 펼치는 소담스런 정경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제주의 이미지는 그렇게 ‘정치작목’으로 변질·전락될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물론 선거판 ‘쇼’로 사리사욕만 채우고 난 뒤 표를 준 농민들을 토사구팽((兎死狗烹)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란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